늦지 않았다.
그냥 다시 가면 된다.
언제까지 힘들어 야해?
안 한 거니까
하면 된다
우는 게 어때서
울고 있는데 그 감정을 정돈된 언어로 말하지 않는 게 어때서
울잖아.
울어야 살지.
울음은 감정의 독소인데,
배출해야지
맞춤법 문법 다 무시하고 시간 약속 어겨져도
포기하지 말고 막회를 채우자는 마음으로 왔다.
쓰고 보니
그동안 얼마나 많이 쓸데없는 고민과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틀리고 엉망이면 어때
쓰는 게 중요하지.
세상엔 정돈될 수 없는 타인은 이해할 수 없는 고통도 있다.
이런 까끌까끌한 감정들도 누군가에겐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 자신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한참 후에 그 진가를 알아보고 빳빳했던 시선을 거두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런 나를 첫눈에 알아봐 준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어떤 눈과 마음을 가졌길래 나의 가능성과 가치를 단번에 알아봤을까
남이 먼저 알아봐 준 나의 가치를 스스로 평가 절하했다.
그래서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난 지금 그분들께 감사하다.
힘들 때 나를 버티게 한 건 스스로 뱉는 말 한마디였다.
너무 크게 될 거라 시련도 큰 사람. 그게 바로 나.
근데 너무 버티기만 했던 것 같다.
버티는 게 만성이 돼서 힘든 걸 당연하게 여기고
나에게는 영양분을 줄 줄 모르는...
전기가 나간 집에서 탈출하고 이사 온 집은 내게 천국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 집이 너무 감사하고 좋지만 안주하겠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자꾸 각성하려고 한다.
가난에 힘든 것에 익숙해져서 내게 동력이 되어 줄 것들을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오늘의 날씨는 매우 춥다.
아직 가을인데...
가스가 나가서 담요를 두르고 있다.
울퉁불퉁 불규칙한 글들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기생충 영화 속 장면과 저와 동네의 일부 에피소드들이
데칼코마니처럼 비슷한 면들이 있다고 생각되어
영화의 구성을 따라 이야기를 풀어 보고 싶었습니다.
의도처럼 되진 않았지만 '점'을 찍었다는 것에 힘을 얻어보려 합니다.
이 이야기는
한 때 봉준호 감독을 동경했던 작가 지망생인 제가
'기생충'이라는 영화를 보고 스스로의 현실을 깨닫게 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가난의 고난을 낭만으로 포장해서
그저 괜찮다며, 실없는 웃음으로 버텨내기 바빴습니다.
그러나 영화 속 배경지인 우리 동네를
'찌글찌글한~', '그런 동네 살긴 싫어요~'라는 말을
쉽게 양상하는 모습들을 보며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그 모멸은 탈출할 의지조차 가지지 못했던 스스로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현재 암전 된 집을 버리고 탈출했습니다.
다음은 탈출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 보려고 합니다.
저도 이제 부자가 되어보려고요~!
여러분도 부자 되세요~!
진심으로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