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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Nov 16. 2023

이름 없는 아이

이름없는 아이가 있었어요


희게 시린 겨울날,

눈이 내리는 아침이었다지요

이름을 갖지 못한 아이는

엄마의 바람과는 달리

딱 며칠을 참지 못하고

해를 넘기지 않고

기어이 나오고야 말았다고 해요

바깥 세상이 그리도 궁금했을까요

눈이 내리는 저녁이었다지요


낳지 말라고 한 아이를 낳았다고

결국 아들도 아닌 딸을 낳았다고

반기지 않을 자식을 기어이 낳았냐고

할머니는 엄마를 혼냈대요


해가 바뀌었는데도

아이를 낳은 어미가 몸을 푼다는

삼칠일도 지났다는데

아이는 이름이 없었대요


아기라고 불렀대요

둘째라고 불렀대요


아이의 어미는 밀린 숙제처럼

아무도 하지 않는 과제를 떠밀려 하듯

태어나지도 않은 날에

첫째 이름과 비슷한 것을 적어

이름 없는 아이를 세상에 등록시켰어요


이름이 생긴 날 태어난 날을 잃었대요

태어나지 않은 날에 받는 '생일 축하해'라는 말이

아이가 잘못 태어난게 맞다는 말처럼 들려

서글펐더래요


이름 없는 아이는 자라서, 자라서

자신에게 이름을 지어주어요

친구들이 발표시간에 말하던

곱고 귀하고 어여뻐 부러워했던

삶의 시작에 부여된

환영의 이름 같은 것으로


아이는 자라서, 자라서

자신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요

삶의 끝에서 탄생을 보았대요

죽지않고 살아야겠다 다짐했던 그 날

그날이 아이의 생일이 되었다지요


삶의 시작이라는 건

엄마의 뱃속에서 나왔을 때만

말하는건 아닌가봐요


이름없는 아이가 이렇게 있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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