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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Nov 23. 2023

시집 한권_ 사는게 만약 뜨거운 연주라면(양윤미 시인)

오늘은 나의 노래가 되어가는 하루

책장에 시집이 꽂혀있다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마음이 사뿐해지곤 한다. 단 한 페이지의 짧은 시를 읽었을지라도 장편소설 마지막 페이지에서 느낄 수 있는 관통의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는 건 짜릿한 일이었다. '시'는 찰나의 문학이었다. 그런 시를 써 내려갈 수 있는 시인은 찰나를 포획하여 단어 안에 가두었다가 읽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풀어낼 수 있도록 돕는 고도로 숙련된 '쓰는 사람'이었다.


시를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일단, 어려웠다. 분명 끝까지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페이지 남짓한 짧을 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메시지를 읽어내지 못했다. 어떤 시는 맥락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시를 읽는 일은 종종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시인의 심연까지 내려가 시의 언어를 읽어내는 일은 성취감을 얻어내는 측면에서는 피하고 싶은 장르라고 해야 할까. 그러다 종종 '읽히는' 시를 만날 때면 경이로운 감탄이 나도 모르게 쏟아졌다. 시인의 언어가 건드려 끌어올린 단어와 문장이 주는 감동은 빈번한 절망감에도 불구하고 시를 계속 읽게 만들었다.


나의 책장에는 몇 안 되는 시집 중 한 작가님의 시집 두 권이 나란히 꽂혀있다. '오늘이라는 계절'과 '사는 게 만약 뜨거운 연주라면'이라는 시집을 쓰신 양윤미 작가님의 책이다.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평범한 일들에 대해서, 지극히 시인의 개인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내 가슴을 후비는 아린 것들에 대해서, 한껏 후벼 파고 나면 쓰릴지라도 뭔지 모를 후련함을 데려다주는 상처에 대해서 시인은 써 내려갔다. 그리고 이내 곧 뒤따르는 감정은 '위안'이었다. 그래서 나는 양윤미 작가님의 시가 좋다.


"우린 모두 허무의 바탕에 빛나는 별,

빛나는 선율이라네


다시 상처 입은 달세뇨로부터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피네를 향해 걷는다

사는 게 만약 뜨거운 연주라면 뜨거운 연주자로,

손과 발이 닿는 곳 어디에서든


유일한 노래가 되어 보려고"


- 사는 게 만약 뜨거운 연주라면, 양윤미


내가 너무 작아 보이는 어떤 날에, 공허함에 허덕여서 더 욱여넣을 공허함마저 소진해버린 그런 날에 만났던 양윤미 작가님의 시는 그날의 나를 위로해 주었다. 허무를 바탕으로 빛나는 별일지라도 그 자체로 빛나는 별일 수 있다는 말, 어디서든 나는 나의 유일한 노래가 되는 중이라는 메시지는 오늘의 나를 위로했다.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수없이 많은 활자들을 읽어 내려가고 쓰고, 그래서 결국에 나는 무엇을 쓰고 싶었던가 묻게 될 때면 그 끝은 언제나 위로와 치유에 맞닿아 있었다. 길게 말하지 않고, 오래 붙들고 있지 않아도 그렇게 한 페이지 남짓한 시가 전하려는 것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언제나, 쉽게, 빈번히 마주하는 것들로부터 얻은 사유가 결코 시시하지 않음을 시인은 시집 곳곳에서 말해준다. 때로는 다정하게 때로는 단호하게. 그렇게 우리의 일상의 가치로움에 대해 시인은 말한다.


폭폭 한 열기가 그리워지는 겨울의 초입에 시집을 한 권 들고 따듯한 커피 한잔을 마시는 오늘의 내가 무작정 행복하다.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는 위로가 등을 토닥여준다. 그렇게 나는 나의 노래가 되어가는가 보다.



▼ 양윤미 작가님의 브런치^^

양윤미의 브런치스토리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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