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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May 11. 2023

[북리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사랑이라는 이름의 자기기만에 대하여

통용될 수 있는 사랑의 정의는 어디까지일까. 사랑이라 부르는 것들에 대한 믿음은 오로지 두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정의는 서로에게 다르며 언제나 같은 의미로서 자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말하고, 사랑일 것이라 믿는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는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서 스스로에게 진실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두려움의 실체에 대해 맞닥뜨리게 될 현실을 외면하기 위한 자기기만적인 사랑의 모습에 대해서 섬세히 풀어낸다.



소설은 '폴'이라는 인물의 심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폴과 오랜 연인관계인 '로제'는 사십 대 중반의 나이지만, 소위 '청년'으로 보일법한 행동, 이를테면 차를 빠르게 몬다든지, 정열을 소진할 대상의 여자와 보내는 하룻밤이 그에게는 여전히 남자로서 건재함을 드러내는 자부심이다. 그는 속박하지 않은 형태 없는 제한에 대한 자유를 갈망한다. 그것이 두 사람사이에 허용된 자유는 로제만의 일방적인 자유일지라도.


폴은 로제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암묵적으로 강요된 자유에 지쳐감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자리에 세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로제뿐이다. 로제의 옛 연인이 폴의 고객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폴은 자랑이라는 듯 으스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의 '손등을 포크로 찍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완전히 로제에게 익숙해져 버린 자신의 모습에 서글픈 '행복'을 발견한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대상은 로제뿐이라고 스스로에게 재확인시킨다. 사랑, 증오, 체념 그리고 자기 연민은 폴이 로제를 사랑하기 위해 스스로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그녀는 그를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한다.



'시몽'은 로제가 흉내 내고자 하는 청년, 그것도 너무나 잘생겨서 옆에 두기에도 부담스러울 정도의 젊은 남자다. 14살의 연상인 폴에게 첫눈에 반한 매력적인 시몽은 불행한 연애를 하는 폴에게 열정적인 사랑을 쏟아붓는다. 시몽의 등장은 폴과 로제가 지속해 온 안정적인 형태의 불안정한 사랑이라는 관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의문의 시작은 책의 제목과 같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구절이 그녀를 미소 짓게 했다. 그것은 열일곱 살 무렵 남자아이들에게서 받곤 했던 그런 종류의 질문이었다.


책 제목이 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시몽이 폴에게 던진 질문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물음이자 자각의 계기이다. 소설에서 시몽은 사랑의 대상이 아닌, 물음을 던지는 자로서 자리하며 폴에게 잊고 있었던 내면의 망각과 억눌린 자기기만적인 사랑에 대한 의심을 깨우는 역할을 한다. 시몽은 폴과 대화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시몽의 질문을 시작으로 폴과 시몽은 연인관계로 발전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폴에게 시몽은 사랑을 하고자 노력하여야 할 대상이었지 끝내 사랑의 대상은 되지 못한 채로 관계는 끝이 나고 만다. 폴에게 사랑의 대상은 오로지, 유일한 로제뿐이었다. 또다시 폴은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하고, 자신의 행복을 소홀하게 하는 스스로에게 죄를 되풀이하였다. 그리하여 스스로에게 고독형을 선고하고야 말았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관계와 실제 사랑하는 관계의 차이를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폴과 로제, 그들은 서로에게 사랑의 자리에는 오로지 서로만이 유일하다 말하고,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서로는 유일한 사랑의 대상이라고 끝없이 주지 시켜야 하는 대상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이런 적나라한 사랑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사랑과 기만이라는 경계에서 그들은 부단히 노력해야만 했다. 서로에게 닿지 못하는 사랑의 의미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라고 정의된 관계는 무엇을 위함이며 무엇을 의미하는가 소설을 읽으며 몇 번이고 물어야 했다.


소설의 초입에서 로제는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주기를 바라는 폴을 외면하고, 그녀를 외로운 아파트에 남겨둔 채로 떠난다. 시몽에게서 폴을 되찾은 로제는 자신에게 유일하고도 유일한 사랑이라 말하는 폴을 또다시 외로운 아파트에 남겨둔 채 그럴싸하지 못한 비슷한 이유인, 그가 말하는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그녀를 남겨두고 아파트를 떠나며 소설은 끝이 난다. 그리고 이러한 소설의 끝은, 앞으로도 그들의 관계는 변함없이 이러한 모습일 것이라고 소설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아니 확신하게 만든다. 이러한 확신은 사랑이라 부르는 것에 대한 허탈함을 불러일으킨다.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랑이라는 의미로 읽히지 않는 사랑의 관계는 소설 속 폴과 로제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것일까. 상징으로서의 사랑이자 사랑이라는 상징으로 남겨두었을 뿐, 그들에게 사랑은 실체로서는 모호하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마침표 세 개가 연달아 달려있는 이 질문은 시몽이 폴에게 건넨 질문이 아니다. 폴이 스스로 내면에 던진 질문이었다. 열일곱 살쯤의 남자애들에게서나 들었을 법한, 순진함과 순수함이 묻어있는 그 질문을 받았을 때, 그녀는 어린 폴이 꿈꿨던 사랑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지금의 사랑이 어떠하냐고, 지금의 사랑이 어린 폴 자신이 그렸던 사랑의 모습과 닮아있느냐는 침묵 속 질문에 답하기를 끊임없이 요구받지 않았을까...


폴이 자기 자신을 사랑해보려 하는 노력을 했다면 어땠을까. 사랑이라는 상징의 자리에 로제 대신 자신을 먼저 세워둘 수는 없었던 걸까. 사랑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사랑이라 굳게 믿어야 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사랑에 대해 알고 싶어 책을 들었던 나의 마음에 물음표를 더해주고 말았다. 익숙한 불행에 대한 애착을 사랑이라고 말한다면 이 또한 우리가 말하는 통용되는 사랑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일까.


다시 그녀에게 누군가가 물어주었으면 좋겠다. 브람스를 좋아하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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