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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Apr 21. 2023

[서평]여행블로거의 혼삶가이드, 한유화 작가

이리도 알차고 따듯한 혼삶이라면

"결혼은 하셨나요?"


이와 같은 질문에 이제는 선뜻 뭐라고 대답하기가 어려워졌다. '결혼을 한적이 있어요'라고 답해야 할지, '지금은 결혼한 상태는 아니에요'라고 답을 해야할지. 그러고보니 세상의 사람들을 '미혼' 또는 '기혼'이라는 보편화된 범주안에 나누고 있었고, 나역시 누군가에 대한 궁금증이 일때면, "결혼은 했대?"라는 질문을 빼먹지 않고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결혼'의 유무가 한 사람에 대한 개괄적 판단에 이리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에 새삼 놀라웠다.


나의 '미혼 → 기혼 → 미혼 → ????' 사이클이 향하는 곳이 어디일지 나조차 알수없는 요즘이기에, 두루뭉술한 의문이 마음속에서 뭉개뭉개 피어나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기혼도 미혼도 아닌 '비혼'이라는 주제를 담은 한유화 작가의 '여행 블로거의 혼삶 가이드'라는 책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미혼이냐 기혼이냐가 아니라 '자발적 미혼 상태'인 비혼의 삶이란 어떤 모양일지 호기심이 일었다.






(P.42)

"결혼 안 하는 삶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배우자도 부모도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자신이 '대체 그 무엇이 되어 살아야 할지'그 자체를 준비한다."



결혼을 하면 자연스럽게 '배우자'가 생기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배우자가 되고, 아이를 낳게 되면 '부모'가 되는 삶을 살게된다. 결혼과 출산이라는 관문을 지나치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무엇'이 되었고, 그 무엇으로 살아야 하기에 부여되는 역할을 해내기에도 빽빽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책의 저자가 말한 '대체 그 무엇이 되어야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이에 대한 답을 해보려는 노력을 시작했을 때, 그제서야 나의 삶에서 '아내', '엄마'를 떠나서 오로지 '나'이기에 될 수 있었던 삶에 대해 궁금해할 수 있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난 후에 이런 고민을 시작했다면, 책의 저자는 '결혼'이라는 선택지를 놓고, 자기 자신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이해를 구했던 것 같다. 그리고 '결혼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였고, 우리는 그런 삶의 형태를 '비혼주의자'라고 부르고 있었다. 신기해 하면서!



결혼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그러했듯,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약속 하기에 더이상의 외로움이 나의 삶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 삶의 거친 순간이 왔을 때 한마음으로 헤쳐나가며 인생길을 같이 걸어줄 누군가가 생긴다는 건 분명하고도 선명한 황홀함이다. 평생의 동반자가 존재할 수 없는 '결혼하지 않는 삶'이 가장 무섭게(?) 다가올 때는 언제일까.


(P.123)

"우리의 언어는 현명하게도 혼자 있음의 두 측면에 대해 각기 다른 단어를 남겼다. 혼자 있음의 고통에 대해서는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혼자 있음의 영광에 대해선 고독이란 단어를." - 폴 틸리히


'혼삶'의 핵심은 '혼자'였다. 그렇기에 혼자의 상태는 맹렬한 외로움과 가까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누군가와 같이 하면 아무렇지 않을 일들을 혼자하기에 별일 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나는 정작 고독을 즐기며 있는데 누군가는 외로워보인다고 하면 달리 받아칠 말도 없을것 같고. 결혼을 안하고 사는 삶과 외로움은 마치 세트같이 느껴지는 걸까. 책의 저자는 '비혼의 삶'을 살기로 선택하면서 숱하게 이런 질문들과 만났던 것인지, '혼삶'에서 다루어야할 감정인 외로움과 고독에 대하여 책의 상당부분을 할애했다.



(P.135)

"나는 내가 꿈꾸는 혼삶의 모습을 위해 꾸준히 훈련한다. 훈련의 목적은 '나 자신을 나와 가장 친한, 가장 재밋게 놀 수 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 나랑 놀다가 지겨워지는 순간은 어떨 때인지 경험해보고, 나 자신이 별로 마음에 차지 않을 때에는 또 어떻게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서 사이좋게 놀아야 하는지 배워간다."


'혼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혼자 잘 놀아야'했다! 혼자 잘 놀기 위해 자신의 취향을 알아야 하고, 슬픈날에는 마음껏 슬퍼할 수 있도록 셀프로 판도 깔아주고, 기쁜날에는 자축할 수 있는 자신만의 파티도 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같이 하면 좋을 것들을 혼자해도 취향껏 더 좋을 수 있는 라이프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자기 자신에 대해서 세심히 알아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함을 배웠다. 또한 '혼삶'을 살기로 결심하는 데에는 일종의 ‘외로운 자기확신’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지겹도록 따라다니는 고독과 외로움이라는 감정들을 스스로 다룰 수 있어야 '혼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P.243)

“타의와 대의에 앞서는 ‘내’의(my 義)가 있다. 남을 구하지도, 나라도 세상도 구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나만은 내가 구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내가 꿈꾸는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1인 가정이고, 내게는 남들보다 내 가정을 먼저 지키고 가꾸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나 자신을 구하고 지키는 것보다 뾰족한 개인의 사명은 없다.”


책을 읽는 내내 드는 생각은 어쩜 이렇게도 야무지게 살뜰히 자신을 돌봤을까, 기혼과 미혼으로 나뉘는 이 세상에서 당당히 비혼의 길을 가겠다는 결심의 중심이 이리도 따듯한 스스로에 대한 애정에 기반할 수 있었을까였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가정의 형태를 진지하게 그려보는 것, 사회적 편견과 시선을 넘어 숙고한 삶의 모습을 실행으로 옮기는 저자의 당찬 용기는 분명 그녀를 구하고 그녀를 지켜주리라는 확신이 들게 했다.



(P.236)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은 어쩌면 나 자신을 자식처럼 예뻐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만약에 내 아이라면, 나는 강한 채찍질보다는 포용으로 아이를 대하고 싶겠지. 실수나 실패를 해도 함께 고민하고 응원해주겠지.(물론 답답해서 꿀밤 때리고 싶은 순간도 종종 오겠지만)”


스스로를 아무리 애정한다 한들, 365일 매일 내가 마음에 드는 날은 없을 것이다. 종종 어쩌면 자주 스스로를 책망하거나, 남들과는 달리 살아지는 삶의 곡선에서 마치 이탈이라도 한듯한 소외감을 맛볼 수도 있을것이다. 그럴때마다 저자가 말하듯,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부족한 나라도, 어설픈 나라도 어여삐 바라봐 줄 수 있는 그런 마음이면 충분하지 않나 생각한다.






‘화려한 싱글’, ‘골드미스’라는 보편화된 명칭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묻어있다. 혼자이기에 할 수 있는 것들의 범주가 넓고, 혼자이기에 삶의 제약도 현저히 적은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삶의 편의성과 삶의 질이 비례하지 않듯이, 혼자하는 삶이나 함께하는 삶이나 무엇을 추구하며 살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이 삶의 질적 수준을 결정할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나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리딩하고 내 삶을 경영해서 성장하고 성취하는 것이 탄탄한 혼삶이다."라고 말하는 저자의 혼삶 스타일링을 읽고있노라면, 지극히 한 개인적인 관점에서 이보다 자기자신에게 충실한 삶의 형태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 있어야만 한다'는 주의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여도 즐거울 수 있고, 혼자여도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이는 누가봐도 매력적이기에 오히려 혼자 살아가기가 더 힘들지 않을까도 싶다.


저자가 비혼을 선포하였다 하여 죽을때까지 '당신은 비혼주의자로 살아야해!'라는 시선이 아니라, 비혼의 삶을 살아가면서 또 다른 형태의 삶을 그려볼 수도 있을거라는 유연한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비혼'은 삶의 한 형태이지, 한 개인의 '타이틀'은 아니지 않은가. 무엇이든 반드시 언제까지나 그래야만 하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래도 확실한건, 자기존중이라는 기반 위에서 펼쳐지는 '혼삶'의 하루하루가 엮어나가는 인생의 모습은 한 개인의 삶의 모양을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기로 선택한 삶을 살아가는 당차고, 야무지고, 내실있고 무엇보다도 넘치게 사랑스러운 누군가의 혼삶 이야기가 들어보고 싶다면, 엄지척 올리고 추천 해보고 싶다.


그래서 나는 미혼이 될건지, 기혼이 될건지 아니면 비혼이 될건지 여전히 알수 없지만, 한동안은 지속될 나의 '혼삶'의 스타일링에 각이 섰달까? 나도 살아보고 싶은 혼삶 라이프를 조물조물 만들어보려 한다. 덕분에 가이드 제대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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