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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Mar 14. 2023

아직도 가야할 길_나를 키우는 여정

삶은 끊임없는 적응의 연속이라 하지만, 비로소 적응하여 안도하고 그 지점에 기대어 서 있을 수 있는 순간은 찰나와도 같이 짧게 느껴지곤 했다. 괜찮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이 앞으로도 지속될 거라는 기대감은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이내 곧, 극복해내야만 하는 삶의 과제라는 다른 얼굴이 되어 나타났기에 한동안의 삶을 나아가지도 멈추지도 못하는 서성거림으로 채워야 했다.


괜찮았던 그 찰나를 지나치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공포로 무장된 긴긴날을 걸어야 했다. 몇 번 겪어봐서 이제 알고 있다고 생각한 일들은 여전히 나의 삶에서 순환의 굴레를 돌며 여전히 내가 아는 것이 없다는 무지를 자각하도록 이끌었다. 언제까지나 지속되는 '지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또다시 잊고 있었고, 그 순간을 붙잡으려는 욕망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을 발견해야 했다.


부여잡고 싶은 삶을 놓아야 하는 그 삶의 순간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삶의 괴로움을 어떻게 딛고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유효한 답을 책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또다시 주저앉고 싶었던 나를 일으켜 세워서 나아가라고 북돋아 준 냉철 하면서도 다정한 책이었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삶의 순환에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과 스스로에게 북돋을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정직하기를, 스스로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서 바라볼 수 있기를, 자신의 삶에 온전히 책임질 수 있기를 말한다. 그래서일까, 책의 제목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이다. 지난날 그래왔듯이,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 걸어 나가야 하기에.




삶의 여정을 작가는 개개인의 내적 성장, 더 나아가 영적 성장으로 이르는 길이라 말한다. 그리고 그 성장에 이르는 길의 동력을 '사랑'이라고 한다.


"삶은 문제의 연속이다. 우리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저 불평하고 싶은 걸까?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도구는 훈육이다. 훈육 없이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부분적인 훈육으로는 일부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 온전한 훈육이 있어야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삶은 고통의 바다(고해, 苦海)라는 말로 책을 시작한 저자는 삶은 끊임없는 문제들을 배출하기에 삶은 항상 힘들고 기쁨과 동시에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잘 괴로워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는 '훈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훈육이란 문제 해결의 고통을 피하는 대신, 문제 해결의 고통을 건설적으로 취급하는 기술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즐거운 일을 미루는 것, 책임을 지는 것, 진리와 현실에 헌신하는 것 그리고 균형을 잡는 것이다."


고통에 내던져진 우리들은 잘 괴로워하는 방법을 배워본 적이 있던가? 고통이라는 필연적인 요소를 다룰 수 있는 방법도 없이 그저 맨몸으로 부딪혀가며 살고 있지 않았던가. 사는 건 원래 그렇다는 이유로, 다들 그렇게 산다는 이유로. 그래서 삶에 내던져진 존재들이라 부르는 것일까. 시인 폴 발레리의 "삶은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졌지만 모두가 바라는 것처럼 여겨진다. 삶을 원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라는 말처럼,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고통으로 점철되었다 하여도 우리는 끝끝내 삶을 원하는 속성을 지닌 존재들이기에 삶과 고통은 필연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다.


훈육을 '기술체계'라고 정의한 저자의 의도를 짐작해 보면, 훈육이란 단번에 성취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는 것, 상호유기적으로 작동해야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는 일련의 과정이 존재한다는 것, 기술적이라는 면에서는 연마할수록 능숙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취급해야 할 대상은 '고통'이며 우리가 그 고통을 피하지 않는 것이 훈육의 전제이다.


'훈육'의 대상은 자기 자신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게으름'이다. 훈육의 대상이 타인이 아닌 자신을 향한다는 관점도 새로웠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게으름'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였다.


"게으름의 주된 형태는 두려움이다. 모든 두려움이 다 게으름은 아니지만 두려움 가운데 상당 부분은 게으름이 원인이다. 즉, 현실을 변화시키는데 따른 두려움, 현재의 위치에서 더 나아가면 무언가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새로운 정보를 수용하는데 따르는 저항은 두려움 때문에 일어나지만 , 그 밑바닥에는 분명 게으름이 숨어있다. 그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일 앞에서의 두려움이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게으름이 아닌 스스로에게 허락하고, 외면하고, 묵인했던 내적 게으름이야 말로 하나의 삶을 가로막아 삶의 여정으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라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훈육해야 할 대상은 '반드시 해야 할 일 앞에서의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내적인 게으름에 대한 훈육은 이의 주체와 대상이 동일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우리는 도저히 숨어 피해 들어갈 곳이 없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훈육하기를 꺼려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신과 전문의이기도 한 저자는 "문제와 이에 따르는 고통의 감정을 피하려는 이러한 성향이 정신병의 근본원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든 작든 이러한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 대부분은 크든 작든 정신적으로 병들어있다."라고 말한다. 누구나 고통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당연하기에 우리는 고통을 피하지 않고 직면할 용기를 내야 한다. 그래야 그 '다음'이 올 수 있다.





삶의 거친 순간들이 왔을 때, 나는 어떠했던가 돌아보게 되었다. 회피였을까 극복이었을까, 회피였다면 무엇에 대한 회피였으며 여전히 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극복이었다면 내 삶은 한 발자국이라도 나아가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얻자면 지금의 나의 삶을 돌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삶에서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순간을 마주했을 때,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지는 절망적인 순간에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삶의 변곡점을 만들지 전환점을 만들지를 가른다. 거친 시간에 서 있을지라도 우리는 절대로 무력한 존재가 아니라고 저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가 자신의 삶에 책임을 놓지 않는 한, 외면하지 않는 한 말이다. 길들여진 게으름으로부터 벗어나 기꺼이 고통을 감수하겠다는 태도를 성취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마음먹는 일은 한 개인이 삶의 끝까지 가닿고 싶은 순간으로 데려다주는 그 한걸음이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무력감의 뿌리에는 자유의 고통에서 부분적으로나 완전히 도피하고 싶은 욕망과 부분적으로나 완전히 자신의 문제와 삶에 책임지지 못하는 패배감이 깔려 있다. 사실 자신의 권한을 버렸기 때문에 무력감을 느끼는 것이다. 언제가 됐든 치유가 되려면, 그들은 성인의 삶이란 온통 개인적인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완전히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자유로워진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그들은 영원히 자신을 희생자라고 느낄 것이다."


지금 겪는 삶의 고통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것도 게으름이라는 것을 아는 것, 삶의 어떤 일이든 자기 자신은 결코 무력할 수 없다는 것, 무력하다면 그 무력함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을 아는 것은 고통스럽다. 현재 자신의 삶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책임을 받아들이는 순간 도망갈 구석은 사라지고 만다. 피할 수 없다. 어쩌면 우리는 매 순간 내면에서 올라오는 나태와 권태를 딛고 삶을 지속시켜 나가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비본능적인 것이 제2의 본능이 될 때까지 스스로에게 비본능적인 것을 가르친다. 진정한 자기 훈육이란 비본능적으로 살아가도록 자신을 교육하는 것이라고 정의해도 좋을 것이다."


책에서 이 문구를 만났을 때 묘한 위로를 받았다. 나태함과 꾸물거림, 고통을 직면하기를 미루는 것 등의 벗어던지고 싶은 나의 모습들이 본능적인, 자연스러운 성향이라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비본능적인 덕목이 체화되도록 스스로를 가르치는 것이 왜 그리도 어려운 일인지, 그 어려움이 당연하게 느껴지기에 기꺼이 그 어려움을 맞이해 보고, 이겨내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가짐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피해자의 자리에 세워두지 못한다. 자신의 삶의 책임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살아간다는 것은 삶의 주체로서 바로 설 수 있는 첫 번째이자 유일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자기 훈육의 길은 편안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것도 상당한 내적 불편함과 불쾌감을 유발하는 '가고 싶지 않은 길'이다. 그러나 자기 훈육의 전제는 '자기 사랑'에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면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돌보게 된다. 자기 절제는 스스로 자신을 돌본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정직함을 심고 신뢰를 부여하는 일, 그리고 매 순간 진실 할 수밖에 없는 내면의 양심의 소리에 따라 그 정직함을 지켜나가는 일은 자신을 키워나간다. 내면을 살찌우고 힘을 북돋는다. 미약하지만, 나 자신에게 솔직해져서 나의 오늘을 책임지고 하루하루를 나아가는 것은 더 이상 나를 고통의 자리에 주저앉히지 못했다. 앞으로 가야 할 인생의 길을, 가닿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루하루가 부여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의 힘을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읽으며 얻었다.


아직도 가야할 길, M 스캇 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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