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으나 잠들어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눈을 말똥말똥 뜨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부디 눈뜬 채로 눈 감은 상태의 글을 쓰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함께 나눌 이야기는 '현존'입니다.
지금 깨어있다는 것은 어떤 상태일까요. 그리고 깨어있는 상태의 삶은 무엇이 다를까요?
에크하르트 톨레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다섯번째 장 '지금 여기에 깨어 있다는 것'을 통해서 그 의미를 알아보려 합니다.
다섯번째. 지금 여기에 깨어 있다는 것
'현존(現存)'이라는 말 들어보신 적 있으시지요? '지금에 존재함'을 이르는 말로, 이 책의 제목과도 뜻을 나란히 합니다. 우리는 표면적으로 모두 현재에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의 의식은 과거와 미래에 묶여 지금을 살아가기 쉽습니다.
빛났던 혹은 상처받았던 과거를 끌어와 지금을 사는 일,
행복할 것 같은 충만함을 가져올 미래를 바라보며 지금을 사는 일.
지금의 나를 직면하기보다는 과거와 미래에 존재하는 나를 바라보며 사는 일 속에서 삶의 불안을 녹이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그리 살아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무어라 대답할 수 있을까요. 어찌하여 그 행복을 '지금'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일까요. 지금을 사는 상태를 이르는 '현존'이란 무엇일까요?
에크하르트 톨레는 이 책에서 '현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 존재가 자신을 의식하게 되는 것
- 현존이란 자신을 의식하는 의식
- 생명이 자의식을 획득하는 것
요즘 많이 회자되고 있는 '메타인지'와도 그 의미가 비슷해 보입니다.
메타인지(metacognition) 또는 상위인지는 자신의 인지 과정에 대해 관찰 · 발견 · 통제 · 판단하는 정신 작용으로 "인식에 대한 인식", "생각에 대한 생각", "다른 사람의 의식에 대해 의식", 그리고 고차원의 생각하는 기술(higher-order thinking skills)이다.
출처 : 위키백과
자신의 생각을 자신이 관찰자로서 바라보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는 걸까요?
나의 생각을 내가 의식함은 나에게 어떤 유익을 가져다주며, 그 유익은 나의 삶에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기
"어떤 의미에서 현존 상태는 기다림에 비교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현존 상태를 부정하고, 늘 지루해하고 초조해하는 기다림이 아닙니다. 미래의 어느 지점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방해하는 장애물로서 현재를 인식하는 기다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완전한 의식을 필요로 하는 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기다림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현존'의 순간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나의 의식을 바라보며 기다림을 활용해봐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또는 내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지?라는 질문 뒤에 이를 알아차리기까지는 관찰하는 의식이 배경으로 물러나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미 튀어올랐던 생각과 감정들이 모습을 드러내어 그 형상에 대해 스스로 정의 내릴 수 있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조용히 침묵 속에서 기다려주는 일뿐이었습니다.
나의 의식의 '기다림'을 겪는 순간을 에크하르트 톨레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백일몽, 사고, 기억, 기대를 위한 자리는 없습니다. 그 속에는 긴장감도 두려움도 없으며 단지 활발한 현존만이 있습니다. 우리는 완전한 존재로 몸 구석구석까지 현존하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과거와 미래, 그리고 어떤 인격을 가진 '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소중한 것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본질적으로 우리 자신입니다. 사실, 그 어느 때보다 완전하게 자기 자신이 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신이 되는 것은 오로지 '지금'뿐입니다."
그 기다림의 순간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 완전한 자기 자신이라는 말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다만 기다림의 순간에 있을 때는 나 자신이 무언가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았고, 지나간 일과 나를 연관 지어 생각하지 못했으며, 미래의 내가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또한 정지해 있었습니다.
그저, 이 생각을 지켜보는 '나'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것이 '현존'의 상태일까요?
이러한 상태의 삶은 현존 상태에 있지 못할 때와 어떤 차이점이 있게 될지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 '현존' 하게 되면 무엇이 좋을까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 경탄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어제와 오늘의 하늘 빛깔은 어떠한지 설명할 수 있고, 며칠 전 지나치며 보았던 나무 끝의 꽃봉오리에서 어떤 꽃이 피었는지 조잘조잘 이야기도 해보고, 차갑던 바람 속에서 봄의 인사를 느껴보셨던 경험이 있다면 어쩌면 당신은 '현존의 달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자연의 웅장함, 아름다움, 신성함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현존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런 경탄의 경험들을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 중요성을 깨닫지도 못하면서 여러 번 경험했을 수도 있다고도 말합니다. 다만 그 순간의 틈새가 너무나 짧은 나머지 인식하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것들을 의식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정지해야 합니다. 잠시 개인적인 고민거리를 털어버리고, 과거와 미래, 그리고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보고 있어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합니다."
눈 뜨고도 보지 못하고, 들을 수 있어도 듣지 못하는 상태로 사는 게 어떤 건지 느낌이 확 왔습니다. 너무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종종종 거리며 살 때는 뒤돌아서면 계절이 바뀌어있고, 그러다 보면 한 해가 지나가 있더라고요. 바삐 달려 살았는데도 삶에 대한 기억이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나 봅니다.
"마음속에 갇혀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꽃이 정말 예쁘다'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단지 자동적인 정의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고요하지 않고 현존하지도 않으므로 꽃을 보고도 그 본질과 신성함을 진정으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자신을 모르고 있으며, 그들 자신의 본질과 신성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삶의 요소들의 '본질'을 바라볼 줄 아는 시선을 얻는 것이 '현존'의 유익성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생각의 생각을 바라봄으로써 감정과 생각을 자기 자신이라 동일시하지 않을 수 있고, '자기다움'에 위배되는 요소로부터 자유로워질 용기를 내어볼 수 있으며,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요소에 자주 감동받을 수 있는 귀한 사치를 스스로에게 허락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현존'이 펼쳐진 삶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엇이 되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덧씌우는 요소들을 과감히 떨어내어 자신의 알맹이만 남기는 일.
지나간 과거가 현재를 움켜쥐지 못하도록 나의 의식을 '지금'에 붙들어 놓는 방법.
미래의 내가 행복할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선택할 용기를 부여하는 방법.
나의 삶의 한걸음 한걸음을 자각할 수 있는 삶을 이어나가는 방법.
그리고, 이러한 삶의 태도를 흔들리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얻는 방법.
이것이 저에게 '현존'의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글을 쓰면서 모호했던 '현존'에 대한 생각이 제 나름대로 정리된 것 같습니다. 에크하르트 톨레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의 절반을 읽었는데요, 제가 크게 자각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과거에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지요. 그 속에서 도통 빠져나오기 싫어하는 저를 알아차리게 해 주었고, 그것이 무익하고 쓸모없을뿐더러 스스로를 괴로움 속으로 밀어 넣는 일이라는 것을 납득할 수 있게 되었지요.
그리고 오늘은 왜 '지금'을 살아야 하는지 한층 더 깊이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저를 둘러싸고 있는 삶의 수많은 요소들의 본모습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이래야 한다는 저래야 한다는 당위성을 떨쳐내고 있는 그대로 보아줄 수 있는 그런 삶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을 살자 하여 지나간 과거가 아무 의미 없는 것은 아니지요.
지금을 살자 하여 다가올 미래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없는 것도 아니지요.
다만, 지금에 집중하는 삶이 과거가 되고 미래가 될 테니 지금을 의미 있게 본질을 생각하며 살면 되겠다 싶습니다. 부디 '지금'에 제 자신을 놓아주는 게 쉬이 되는 제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