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주혜 Apr 11. 2022

여섯번째. 몸 안에 뿌리내리기

지금 이 순간을 사는 방법 배우기

"더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영역으로,

힘과 활기에 넘치는 삶의 영역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 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저는 고요와 평온 속에서도 활기가 넘치는 삶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제가 동경한 삶의 모습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삶이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자신의 몸 안에 스스로 뿌리내리기.


그리하여, 스스로 굳건해질 수 있고 흔들리지 않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내면 속으로 깊이 뿌리내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나누려 합니다.


삶의 흔들림이, 내면의 뿌리를 더욱 강하게 하고

삶의 흔들림을 통해서 자신이 누구인지 자각할 수 있게 하고

마침내, 오롯이 자신에게 뿌리내린 삶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






여섯번째. 몸 안에 뿌리내리기



에크하르트 톨레는 우리의 몸이 '존재'의 영역으로 접근하는 입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가 말하는 존재의 영역이란 다음과 같습니다.


"'존재'는 이름과 모습을 초월하여 영원히 '내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당신이 '있다'는 것을 알고, 거기에 깊이 뿌리내린 상태로 머무는 것이 바로 깨달음입니다."



'영원히 내가 있다'라는 말을 통해 삶의 유한함과 죽음, 그리고 그 너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 자신이 물질적인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존재에 불과하다는 '망상'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면 이러한 망상이 빚어내는 필연적인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누구나 태어나면 누구나 죽음을 경험한다는 것을요.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존재'는 단지 한번 태어나고 죽으면 그것으로 우리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언제나 '있음'으로 존재하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본질이라고 말합니다.


끝이 누구에게나 있으되 그것이 끝이 아님을 아는 것.

유한함을 경험하되 그것이 궁극의 유한함이 아니라는 것을 죽기 전에 아는 것.

궁극의 유한함이라는 울타리에 넣어둘 수 없는 무한함의 존재가 우리 자신임을 자각하는 것.


우리 삶의 진정한 생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유한함 속에서 무한함을 자각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하여 우리가 이 삶에서 느끼고 체험하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해집니다.






"당신이 '존재'와 연결되어 있는 본연의 상태에서는 보이지 않는 몸 안에서 활기찬 내면의 현존으로 매 순간 좀 더 깊은 실재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몸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안으로부터 몸을 느끼는 것이며, 몸 안의 생명을 느끼고 그로써 당신이 외적 형태를 초월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감각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오감을 통해서 세상을 인지하고 받아들입니다. 자극의 방향은 외부에서 내부를 향합니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여태까지 우리가 받아들인 삶의 인식 방법을 달리 해보자 합니다. 외부로부터 몸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서 부터 나의 생명을 느끼고 그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자 합니다. 몸 안으로 들어가서 바라보면 세상과 나는 어떻게 보일까요. 쉽게 와닿지는 않습니다.



조용히 눈을 감고 내 몸안을 느껴보는 시도를 해봅니다.


우선 깊이 호흡을 해보도록 합니다. 숨이 쉬어지는 느낌, 가슴과 배가 들숨에 따라 부풀어 오르고 줄어들기를 반복합니다.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는 탓에 어깨 근육이 올라가 있습니다. 근육이 올라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자 바짝 올라가 있던 어깨가 내려옵니다. 어깨뿐만 아니라 가슴 위에 무거운 무언가가 올려져 있는 듯 답답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날숨에 답답한 느낌과 초조함, 불안을 함께 날려 보내 봅니다.



내 몸안에 집중한다는 것은 나의 주의력을 온통 외부에 두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나의 주의력 전체를 '100'이라는 수치로 환산해본다면, 주의력의 일부인 '10'만큼을 내 몸안으로 두고 '90'을 외부에 사용해보면서 서서히 연습을 통해 내 몸안에 두고 있는 주의력의 수치를 올려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나의 주의력을 내면에 두는 것을 에크하르트 톨레는 '몸 안에 뿌리내리기'로 표현하였습니다.



"열쇠는 내면의 몸과 영원히 연결된 상태로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내면의 몸을 느끼십시오. 그러면 어느새 당신의 삶에 깊이가 더해지면서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당신이 최대한 내면의 몸에 계속 집중한다면 '지금'에 닻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 외부 세계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며, 마음속에서 당신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외부 세계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며, 마음속에서 당신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이 문장에서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안심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뭔가...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든든한 정신적 무기를 얻은 것 같아서 말입니다.



지난날, 나 자신으로 살고 싶은데 외부 세계에서는 휩쓸리기만 하는 나를 발견하며 실망하였고 내 안에 사는 너무도 많은 나를 보며 도대체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서 방황하고 좌절하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어느 곳도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지탱하고 지지해줄 어떠한 기둥도 없었기에 두려웠고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늘 무언가를 찾아 헤매었던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물론 그 방황의 시간들이 지금의 '나'와 만날 수 있는 길로 이끌어주긴 했지만, 자신에게 뿌리내리지 못했던 삶의 저변에는 늘 '두려움'이 따라다녔기에 괴롭고 불안한 방황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앞으로 내 몸안에 뿌리를 내리며 겪을 방황과 고통은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올라옵니다.






"몸에 거주하는 것은 언제나 현존의 본질적인 일부입니다. 당신이 현존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마음에 의해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 낡은 각본에 따라 당신의 사고와 행동을 지시할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과 동화된 의식 상태 밑에 깔려있는 기본적인 감정인 두려움에 의해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인 반응을 하게 됩니다."


현존의 최대 유익함을 꼽으라 한다면, 바로 '지금'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관성에 따라 낡은 각본을 들어 올릴 때 지금의 내가 해야 할 선택과 행동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힘은 '자신에게 내린 뿌리'였습니다.


자신의 의식을 외부에 온전히 두지 않고 내면에 뿌리내리게 되면, 두려움으로 인해 스스로를 고통 속으로 밀어 넣지 않아도 되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지금, 여기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하는 이유였습니다.






스스로에게 의식의 뿌리를 내린다는 말이 참 멋졌습니다.


그리고 그 뿌리가 내면에 자리 잡게 된다면, 나의 삶에도 중심이 서겠구나... 내가 뿌리내리고 단단히 딛고 싶은 그 땅이 생기겠구나... 많이 흔들려도 언제나 나는 그 자리에 있을 것이며, 흔들림 뒤에는 더욱 나 자신에게 깊이 뿌리내릴 수 있게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그루의 나무처럼, 나의 삶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나의 '존재'에 스스로 응원을 보내봅니다. 아직은 조금이라도 강한 바람에 곧잘 흔들리는 어린 묘목일지라도, 그 흔들림을 받아들이며 단단해지는 기회로 삼고자 합니다.


지금의 나의 삶을 진심으로 존중해주려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봄날이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다섯번째. 지금 여기에 깨어 있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