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위한 가장 커다란 촉매는 어떤 식으로든 상대방을 판단하거나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관계'에서 시작되어 '관계'로 끝맺음된다 말하여도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의 고민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되지 않나 싶습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과의 관계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관계 맺는 모든 것들에는 나 자신이 투영되어있다고들 하지요. 이번 여덟번째장에서는 나 자신과의 관계를 포함하여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면 성숙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알아보려 합니다.
성숙함을 기반으로 한 인간관계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리고 그 인간관계는 여태껏 자신이 유지해왔던 관계와 무엇이 다를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여덟번째장. 성숙한 인간관계
"'이런 것을 얻고 저런 것에서 자유로워질 때, 그때가 되면 나는 만족할 것'이라는 생각은 무의식적인 마음이 미래의 어딘가에 구원의 환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미래의 꿈을 그린다는 것, 그 꿈과 꼭 들어맞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설렙니다. 누구에게나 가슴 설레는 미래를 기다린다는 것은 오늘을 힘차게 살아볼 이유를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저 역시 지금과는 다른 미래의 그 언젠가의 행복한 순간을 꿈꾸며 오늘을 참으며 살았습니다. '언젠가는 나아질 거야', '언젠가는 내가 꿈에 그리던 사람과 만나게 될 거야'라는 희망은 오늘이라는 삶의 쓴맛을 희석시켜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 이 자체로는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쁠 것이 없습니다만,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이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집중해야 할 순간은 어디에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했습니다.
그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이라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 내게는 없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없는 것을 바라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내가 지금 느낄 수 있는 것은 언제나 무언가를 바라고 소망하는 마음 뿐이라는 생각이 드니 이게 맞는 건가? 싶었습니다.
과연 진정으로 내가 바라고 소망하는 바는 지금 내 삶에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미래에 내가 바라는 바를 성취하고 이뤄냈을 때, 그때의 나는 설렘이 가득했던 마음속 그 자리를 충만함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나 역시 또 다른 설레는 미래를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되더군요.
"당신은 스스로 아직 완전하지 못하고 자격이 없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그리로 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당신이 그곳에 갈 수 있는 지점은 '지금 여기'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제가 도달하고 싶었던 무수한 소망들이 가리키는 지점은 완전한 내가 되어있는 모습이 있는 그 어딘가의 삶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제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불완전한 내가 사는 지금 이 삶에는 내가 원하는 것이 없다.'
삶에서 공허함이 느껴졌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내면의 공허함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살아가면서 맺는 인간관계 중, 타인과의 관계 이전에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어떠한지 돌아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맺는 방식은, 삶과 자기 자신이 맺는 관계의 축소판이자 전부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지금'에 주의력을 집중함으로써 맨 처음 만나게 될 자신의 고통을 두려워하기에 자기 자신을 지금에 두지 못한다고 합니다. 해결되지 않는 고통이 여전히 존재한다면, 꿈꾸는 미래는 결국 고통을 외면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해지고 맙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심리적 차원에서는 불완전함이나 결핍감이 육체의 차원에서 느끼는 것보다 훨씬 큽니다. 마음과 동화되어 있는 한 당신은 외부에서 자의식을 끌어옵니다. 사회적 지위, 소유, 외모, 성공과 실패, 믿음 체계 등 궁극적으로는 당신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것들로부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자각을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마음이 만들어 내는 이러한 거짓 자아인 에고는 불안하고 상처받기 쉬우며, 존재하는 느낌을 갖기 위해 언제나 자신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는 뭔가를 찾아 헤맵니다."
우리가 삶에서 관계 맺는 요소들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으려 할까요? 흔히 '나를 채워주는', '나를 완전하게 느끼게 만들어주는'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살펴보면, 자기 자신 안에 비어있는 불완전함을 채워주는 어떤 누군가 또는 사회적 요소들, 소유물들을 통해 '완전한 존재'로서 살고 싶다는 소망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갈망하는 그 '완전함'이란 무엇일까요. 과연 채워질 수 있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완전함이란, 자기 자신으로서도 충분하다는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그래서 더 이상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고 확인받지 않아도 되는 상태일까요? 우리의 내면의 불안함은 자기 자신에 대한 완전함을 믿지 못하기에 그리도 끊임없이 외적인 것들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으려 하는 것일까요?
이렇게 존재의 완전함을 끊임없이 확인받고자 하는 마음을 책의 저자는 '중독'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모든 중독의 형태는 무의식적으로 고통을 직시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생긴다고 합니다.
완전함을 갈망하는 마음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생각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는 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생각과 행동을, 특히 에고에 의해 움직이는 반복되는 마음의 패턴을 조용히 지켜볼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당신 자신에 대한 판단을 중지하십시오. 그런 다음엔 당신의 파트너에 대한 판단을 중지하십시오. 변화를 위한 가장 커다란 촉매는 어떤 식으로든 상대방을 판단하거나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의 패턴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저의 경우에는 고통스러운 상황과 마주했을 때 그 상황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끌어내는 생각들을 살펴보면서 제 마음의 무늬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 패턴을 자각하지 못했을 때, 제 삶에서 같은 문제들이 다른 모습으로 끊임없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입에 달고 살듯 내뱉었던 말이 '왜 나에게는 매번 이렇게 힘든 일만 생기는 걸까'였습니다. 이런 생각은 자기 비난으로 이어졌고, 안 그대로 불완전함 자체라고 생각하던 나 자신을 더 가치 없는 존재로 내몰았습니다.
마음의 패턴을 알아차리는 것의 최대 장점은 바로 그 이후에 있었습니다. 매번 반복되는 문제들의 원인이 결국에는 같은 선택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이번에는 다른 선택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삶의 변화는 여기에서부터 조금씩 일어났습니다.
만약, 내가 어찌해볼 수 없을 것 같은 타인이 내게 고통을 준다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요? 내게 신체적 위해를 가하고 정신적 고통을 지속적으로 가하는 상대가 있다면...? 그 상대가 가까운 연인이나 배우자라면, 그들은 왜 내게 이러한 고통을 지속적으로 주는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찌 되었건 그들의 행동이 반복되는 이유는 그 행동을 어떤 식으로든 받아주는 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삶 속에 있는 나를 비난하거나 판단하지 않아도 됩니다. 또한 내게 고통을 주는 그 상대를 나는 변화시킬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방법은 기존과는 다른 선택을 하는 것뿐입니다. 더 이상 상대가 가하는 반복적인 고통을 스스로에게 허용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각자 하는 선택은 모두 각자에게 옳습니다. 그렇기에 누가 더 맞고 틀리고를 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옳음에 따라 삶을 살아갈 뿐입니다. 불안한 마음은 자신이 옳다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하려 들겠지만 결국에 우리는 모두 각자에게 가장 옳습니다. 각자의 옳음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관계가 어긋날 때, 상대에 대한 분노가 일어날 때, 상대로 인해 자기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면 우리는 그 순간을 반갑게 맞이하라고 책의 저자는 말합니다.
"질투, 자기 방어, 말다툼, 합리화, 사랑과 보호를 요구하는 아이 같은 마음, 어떤 감정적 고통이 일어나려고 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그 순간의 현실을 알아차리고, 알아차린 그 상태를 유지하십시오. 그때에야 비로소 그 관계는 영적 진화의 기회가 됩니다. 당신의 파트너가 무지의 어둠에 기인하는 행위를 하거든, 거기에 반응하지 말고 자신의 '앎'으로 그것을 다정히 껴안으십시오."
나의 감정을 고요한 의식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그 감정이 자기 자신이 아님을 명심하고 그 감정들이 나에게 지금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상대의 어떤 행동이 자극한 나의 감정은 상대가 나에게 던진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있던 것들이 상대로 인해 자극되어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 감정들이 내게 무엇을 보라고 말하는가 자신에게 물을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의 방식이 이전과는 상당히 달라질 것입니다.
"당신이 혼자 있을 때 편안하지 못하다면, 그러한 불안을 감싸줄 수 있는 어떤 관계를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할 일은 이 순간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여기가 편안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편안하신지 궁금합니다. 홀로 있을 때면 자기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하게 됩니다. 그 시간들은 내면에 풀어내야 할 감정과 생각들을 수면 위로 튀어 오르게 만듭니다. 어쩌면 이것들 자체가 '고통'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 시간들을 기회로 삼아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그 감정들은 분명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 말들을 들어주는 시간을 통해 홀로 있는 시간이 편안하지 못했던 시간에서 즐거운 시간으로 변화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관계'를 살펴보면서 결국 이 관계라는 것도 자기 자신의 반영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불완전함이 결코 외적인 것들로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애초에 채워질 필요가 없는 완전함으로써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완전함이라는 태생적인 고유함을 우리는 어찌하여 모두들 잊고 살아가게된 것일까요.
책의 저자는 "더 이상 보호하고 방어하거나 만족시켜야 할 '자신'이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그 만족시켜야 할 자신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요.
성숙한 인간관계로 도달하는 방법은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과 상대를 바라봐주고, 자신의 불안과 고통을 미래의 희망으로 덮어두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직면하는 것'이라 정리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