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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May 04. 2022

아홉번째. 행복과 불행을 넘어선 곳에 평화가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방법 배우기

우리는 행복과 불행의 정의를 어떻게 내릴까요? 누군가의 행복의 요소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행의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 둘을 가르는 것의 주체는 누구이며 절대적인 긍정과 부정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나에게는 옳은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옳지 않은 일이 되어 갈등을 빚어내기도 합니다. 삶을 구성하는 많은, 어쩌면 대부분의 요소들은 '그 순간에 그러함'으로 우리들에게 행복과 불행, 옳고 그름, 긍정과 부정의 형태로 인식됩니다. 중요한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절대적 상태란 존재하지 않기에, 삶에서 벌어지는 상황들 속에서 '그 순간에 그러함'을 바라볼 줄 알고 한걸음 물러나서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크하르트 톨레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아홉번째장에서는 행복과 불행의 속성을 살펴보고 이 둘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평화라는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삶의 태도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행복을 넘어 닿을 수 있는 평화의 상태, 불행을 넘어 닿을 수 있는 평화의 상태를 함께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글을 읽으시며 자기 스스로 가지고 있는 행복과 불행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보시는 시간을 가져보신다면 더욱 의미 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홉번째장. 행복과 불행을 넘어선 곳에 평화가 있다



"높은 전망대에서 보면 모든 조건은 항상 긍정적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떠한 조건도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일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있는 그대로를 완전히 받아들이고 산다면, 당신의 삶에는 더 이상 선이나 악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현명한 삶의 길입니다."



이 글을 읽었을 때, 찰리 채플린이 말했던 '삶은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고통만 있었던 것 같은 그 순간들이 인생의 한 점을 찍고, 그러한 점들이 모여 만들어진 인생길을 걷다 보면 그 고통의 순간들이 나에게 의미 있었구나... 하는 순간과 만나곤 했습니다. 이 순간이 멀리서 바라본 제 인생의 희극의 한 장면이 되어준 것이었구나 알게 됩니다.


영원한 행복도 영원한 불행도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행복과 불행을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하게 될까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속에는 행복과 불행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일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행복의 순간에도 이 또한 지나갈 하나의 순간으로, 불행을 겪는 그 순간에도 이 또한 지나갈 삶의 한 장면으로 바라본다면 삶에 집착적인 요소와 '마땅히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될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그 집착과 당위가 '나에게 옳음'으로 있을 뿐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면 어느 누구에게도 강요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기를 돌아보는 동시에 타인을 존중할 수 있는 자세를 배울 수 있는 삶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삶의 상황이 너무나 크나큰 고통으로 뒤범벅되어있고, 살아야 할 의미조차 상실한 그때에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와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당시에는 알지 못한다고 해도 부정적인 일 속에는 의미심장한 교훈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잠시 동안 겪게 되는 질병이나 사고는 당신의 삶에서 무엇이 실재하고 무엇이 허구인지, 궁극적으로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고통과 시련 속에서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그때, 내면에 억눌려 있던 의식 하지도 못했던 감정이 자극되어 올라올 때, 사랑하는 이와 이별했을 때 등등 처절한 슬픔 속에서 내면의 소리를 들을 기회를 얻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어떤 기준으로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나라는 사람은 무엇을 향해 사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게 됩니다.


고통이라는 '체'가 자신을 통과하고 나면 삶에서 자잘하게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요소들을 떨어 버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책의 저자는 행복과 불행은 궁극적으로 동일하다고 말합니다. 이를 통해 행복과 불행 모두 부질없다고 생각하자는 것이 아닌, 행복과 불행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 삶의 태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행복과 불행에 의존하지 않게 되면 이를 잃을까 봐, 혹은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까 하는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삶에서 만난 고통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귀 기울일 수 있어야겠습니다. 이유 없이 벌어지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내가 현재 겪고 있는 고통 또한 지나갈 텐데, 이 고통은 나에게 무엇을 말하기 위해 나의 삶에서 벌어진 것일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게 된다면, 다른 각도로 삶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일상생활을 돌아보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주로 긍정적일까 부정적일까 살펴보았습니다.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부정적인 생각의 범위가 넓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책의 저자는 '부정적 감정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며 그것은 정신의 오염물'이라고 말합니다.


어느 누구도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피할 수 없는 이러한 부정적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외부적인 요인이나 생각에 의해서 또는 자신도 모르게 특별한 이유 없이 내면에서 부정적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느낄 때마다 그것을 '주목하라, 지금 여기를. 깨어나라'라고 말하는 목소리로 여기고 자기 마음을 잘 들여다보십시오 … 소음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모든 것이 당신을 그저 통과하게 하십시오."



에크하르트 톨레는 부정적 감정을 일상에서 수행할 수 있는 영적 수행의 도구로 사용하라고 말합니다. 부정적 감정은 마음의 저항을 만들어내고, 이 저항은 삶의 부정적 요소를 통제하고 해소할 수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믿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합니다.


부정적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자신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지금 현재에 벌어진 삶의 상황인 것인지 아니면 과거를 소환하여 현재로 투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식적 흐름에 의한 생각인지 자동반사적인 무의식적인 생각인지를 점검한다면 삶의 많은 부분이 달라지게 될 것 같습니다.


삶에서 마주하는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의식'을 인식하는 것을 통해, 매 순간 벌어지는 삶의 요소로부터 굳건히 의식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의 본연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아무리 외부의 상황이 시끌벅적하고 소란스럽다 할지라도, 내면에 뿌리내린 나의 의식은 이를 고요히 바라볼 뿐입니다.


고요히 바라보는 그 의식은 오로지 '지금 여기'에서만 시선을 내어줍니다.






"자비심은 당신 자신과 모든 창조물 사이의 깊은 연대를 깨닫는 데서 옵니다. 자비심은 일종의 심오한 느낌으로 당신 자신의 불멸뿐 아니라 다른 창조물의 불멸까지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숭고한 느낌이며, 위대한 치유와 변화를 가져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고통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 고통이 아니었음을, 그저 그 고통은 삶의 한 상황이었음을 깨닫게 된다면 그 사람은 이제 자기 자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게 될지 궁금해졌습니다. 책을 찬찬히 살펴보니, 자기 자신을 어떠한 무엇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존재로서의 존재', 즉 보이지 않는 세계에 깊이 뿌리내린 의식으로서 그저 존재하는 것이므로 자기 자신을 무엇으로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오류임을 깨닫습니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자기 본연의 존재를 자각하게 되고 깨어나게 되면서 세상 만물과 우리 자신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 자비심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모두 나와 연결되어 있기에 있는 그대로를 그대로 바라보고 존중해 줄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성과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무언가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방황을 하지 않아도 되며,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착과 갈망 또한 버리게 됩니다.


이러한 상태에 다다르게 되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다른 질서의 현실을 창조하는 일에 진정으로 기여'할 수 있다고 책의 저자는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근본적인 차원에서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궁극적으로 불행이 이끌어 도달하고자 하는 곳은 '자비'라는 평화의 지점이었던 것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홉번째장의 마지막은 다음의 문구로 마무리됩니다.



"결과에 집착하면 그 속에서 당신 자신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깨어 있으면서 깊이 현존하십시오.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왔습니까? 무엇보다 먼저 거기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에 온 것은 깨달음을 펴기 위함이 아닌가요? 당신이 세상에 주는 가장 소중한 선물은 평화 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서로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 이 세상에 왔나 봅니다. 그 깨달음의 형태가 행복일지라도, 불행일지라도 그 너머를 바라보는 눈을 깨워 평화를 향해가야 함을 배웁니다.


우리는 서로 돕고 있다는 연대감이 어렴풋이 스칩니다. 내게 고통을 주었던 이도, 내게 행복을 주었던 이도 그리고 내가 고통을 주었던 이도, 행복을 주었던 이도 우린 그렇게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스스로의 존재를 자각하도록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결국에 우리 모두 평화로운 그 상태에 함께 머물기 위해 이리도 다채로운 삶 속으로 자청하여 왔나 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새 마지막 장만을 남겨두고 있네요.

우리 모두의 내면에 평화가 깃들길 소망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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