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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글빛 May 12. 2022

마지막장. 내맡김의 지혜

지금 이 순간을 사는 방법 배우기

'내맡김'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숙고해본 적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대로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는 것, 그저 지켜보는 것과 같은 의미인 것인지 혼동이 되었습니다. 내맡긴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오히려 분주하게 움직이며 스스로 통제에 더욱 열을 올리곤 했습니다.


에크하르트 톨레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의 마지막 장을 통해 내맡김에 대한 의미를 새로이 알게 되면서, 내맡긴다는 것은 전혀 수동적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온전히 내맡기기 위해서는 명료한 내적 자각과 함께 삶에 대한 적극성이 선행되어야 내맡김을 실천할 수 있음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내맡김'을 실천하는 삶은 인간으로서 살아볼 수 있는 가장 진취적이고 의욕적인 삶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때에 내맡김이라는 지혜가 필요한 것일까요? 그저 받아들이는 무분별한 수용이 아닌, 나의 무엇을 내어주어 무엇을 맡긴다는 것인지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열 번째. 내맡김의 지혜



"내맡김은 삶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따른다는,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지혜입니다. 당신이 삶의 흐름을 경험하는 유일한 장소는 '지금'이므로, 내맡김이란 지금의 순간을 무조건적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에 대한 내면의 저항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책을 읽으며 내맡기는 것에 대한 개념이 혼동되었던 부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삶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하여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었던 부분을 이 책을 읽으며 수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항하지 않고 따라야 할 것은 개개의 상황이 아니라 '삶의 흐름'이었습니다.  또한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은 외적인 상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이었다는 것도요.


 내맡김을 위해 삶의 흐름을 따를 수 있으려면 그 흐름을 읽어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책의 저자는 말합니다.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관망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삶의 흐름 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맡김을 실천하는 삶의 자세라고 말합니다.


 삶에서 부딪히는 부정적인 요소들은 내면의 저항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그 내면의 저항들이 겨냥하는 지점은 지금이 아닌 지나간 과거와 다가올 미래입니다. 보통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과거의 고통과 현재의 아픔을 상쇄시켜줄 찬란한 미래가 지금의 내 삶을 움직이게 합니다.


내맡김의 자세란 과거와 미래로부터 지금을 떨어트려놓고 지금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나의 내면의 저항을 일으키는 요소들을 관찰하고 바라보아, 이 저항들이 끌고 가는 연결고리를 발견하고 이것들이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을 이용하여 자신의 삶을 쥐어 잡고 흔드는 패턴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자신의 삶에서 이러한 패턴들이 반복되었던 상황들을 되짚어 보면서 자기 자신의 마음이 어떤 식으로 삶의 상황에 반응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흐름'에는 방향성이 있습니다. 자신의 삶의 흐름이 가고자 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그 흐름으로 가기 위해 일어난 '지금'의 삶의 상황은 자신에게 어떤 방향을 보라고 가리키고 있는 것인지 우리는 삶이 던지는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삶에서 벌어지는 고통스러운 순간들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삶의 흐름을 돌아보라고 우리를 멈춰 세우기도 하고, 이별을 겪게 하기도 하고, 질병을 앓게 하기도 합니다. 삶에서 일어난 고통스러운 일들에 대하여 에크하르트 톨레는 두 가지 내맡김의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매 순간을 그 순간의 현실에 내맡기는 것으로, 지금 있는 것을 원상태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난 일로, 일어나지 않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일로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지금 여기'에서 외부에 있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내면에 있는 것을 받아들이고, 외부적인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내부적인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이 느끼는 고통에 저항하지 말라는 뜻으로 고통을 거기 있도록 허락하는 것입니다. 슬픔, 절망, 두려움, 외로움 등 어떤 형태의 고통이든 거기에 당신 자신을 내맡기고 거기에 이름표를 붙이지 말고 지켜보며 다정히 껴안도록 하십시오.



 삶에서 괴로움을 자아내는 요소는 '~했어야 했는데',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와 같은 지난 시간에 대한 탄식입니다. 일어난 일을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로 규정하게 되면 '지금'을 과거에 내어주게 됩니다.


내맡김의 첫 번째는 '지금' 내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과거를 되돌릴 수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기만하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분노하고 만회하기 위해 삶의 에너지를 쓰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부정하고 싶은 일의 일어남을 인정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 일로 인해 겪어야 할 고통, 슬픔, 우울, 분노 등 내면의 여러 감정들이 들고일어날 것입니다. 일이 일어남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에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감정들까지도 허용하고 받아들여 주도록 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빠져나갈 방법이 없을 때에도 뚫고 나갈 수 있는 하나의 길은 항상 있습니다. 고통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그것을 마주 보십시오. 그 고통을 완전하게 느끼십시오. 느끼되, 거기에 대해 생각하지 마십시오. 고통의 원인으로 보이는 사람이나 사건, 상황이 아니라 고통 자체에 주의를 집중하십시오. 마음이 그 고통을 이용해서 당신 자신을 희생자로 만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신세 한탄을 하고 넋두리를 늘어놓으면 계속해서 고통 속에 처박혀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느끼는 감정은 에너지입니다. 이미 느껴버린 감정은 어디로 가지 않습니다. 사라지지 않습니다. 부정한다고 하여 옅어지는 것도 아니고 고통이 덜해지는 것도 아니고 그대로 자신에게 남습니다. 저항하게 되면 더욱 고통은 커지게 되며, 그 고통을 바라보고 느껴주면 감정은 해소됩니다.


고통을 바라보고 완전히 느끼는 것과 자기 자신을 학대하는 것은 다릅니다. 고통을 완전하게 느끼는 것은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이지 새로운 고통을 창조하는 과정이 아닙니다.


아프면 아파해도 된다고, 힘들면 힘들어도 된다고, 슬프면 슬퍼도 되고,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허용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괜찮지 않은 자기 자신을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렇게 놓아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고, 그 일로 인해 상처받고 고통받은 내가 있습니다. 그 일은 다시 되돌릴 수도 없으며 다시 되돌린다 하여도 상처받고 고통받은 나는 그대로 여기 남아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일이 일어난 것을 일어난 일로 받아들이고, 고통을 느끼는 나를 거부하지 말고 충분히 아파하고 슬퍼할 수 있도록 스스로 허용해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지금 여기'에 있는 나를 온전히 받아들여주는 것입니다. 고통을 충분히 느껴주고 나면 감정은 해소가 되어 지나가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지금 내게 일어난 삶의 상황이 어떤 흐름을 타고 있는가, 그 흐름을 읽어보기 위해 내면을 들여다보고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기로 결정한 그 일에 최선을 다해 시도해본다면 그 고통스러운 삶의 상황을 '내맡김의 지혜'로 돌파한 것이 아닐까요?






저에게는 삶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지금의 힘듦에도 불구하고 나아지리라는, 나의 삶의 방향이 궁극적으로는 행복과 사랑의 실현을 향하고 있다는 믿음입니다. 책의 저자는 '고통을 깨달음의 기회'로 여기라고 말합니다. 고통을 느끼는 그 순간에는 모르지만, 시간이 흘러 지나고 보면 나에게 참 그 고통스러운 일은 하나의 기회가 되었다고 말하는 이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저 또한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전보다는 삶의 어려움과 만나게 되었을 때 조금 달리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통을 깨달음의 기회로 여겨 일부러 고통을 맞이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피할 수 있는 고통을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삶의 고통이 나에게 찾아온다면, 한번 그 고통에 나를 내맡겨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리고 그 고통을 안겨준 삶의 경험은 내 삶에 어떤 의미로 남게 될 것인지 찬찬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어떨까요.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내맡김'을 이야기한 이유에 대해서 알 것 같았습니다. 이 내맡김을 실천하기 위해서 우리는 마음과 우리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도록 내면을 지켜보는 의식의 눈을 뜨고, 우리라는 존재가 그저 하나의 몸에 국한된 존재가 아니며... 모두가 연결되어서 서로의 성장을 돕고 삶의 의미를 충만하게 할 수 있도록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써 이 삶을 내맡겨 볼 수 있는 거라고... 그래서 우리가 지금 여기에 이렇게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에는 우리 모두가 잘 되기를, 행복하기를,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 이 삶을 살아나가고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고통도 행복도 삶의 하나의 요소일 뿐, 삶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언제나 삶은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는 것을... 그걸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내면의 나를 만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10주 동안 이 책의 한 챕터씩 깊이 읽으며 글을 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실 책이 어려워서 중간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써 내려간 글도 있었습니다만... 끝까지 읽어내고 써 내려가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과연 얼마만큼 이해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이 책을 읽으면 아마도 다르게 읽힐 것 같지만, 지금의 제게 필요한 만큼 그리고 이해할 수 있는 만큼 전해졌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를 괴롭히고 있던 과거의 기억과 단절할 수 있는 힘을 이 책을 통해 얻었고 삶의 변화도 체험하였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제 자신을 피해자로 두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선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거든요. 아주아주 감사한 책이었습니다.



언제나 내가 있는 곳은 '지금'이라는 것.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은 '지금'뿐이라는 것.

모든 시간은 '지금'의 영원이라는 것.

그 '지금' 속에 나는 언제나 영원히 있다는 것.



감사하게 됩니다. 그저 '나'로서 괜찮은 '지금'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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