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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다 Sep 13. 2020

빗이여, 다시 빛나라

무쓸모에서 유쓸모로 



2020년 7월 19일. 지긋지긋했던 올여름의 첫 장맛비가 내렸고, 우리는 양평으로 이사했다. 비 오는 날 이사하면 잘살더라는 덕담도 소용없는 폭우였다. 게다가 이사는 우리 부부와 아기까지 셋이 살던 집과, 친정엄마와 남동생이 살던 또 다른 한 집이 합가 하는 대공사. 덕분에 종일 이삿짐센터 직원분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하도 곁눈질을 해서 나중에는 눈알이 제자리를 찾지 못할 정도였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방문객> 中-

한 사람의 일생뿐 아니라 '일생의 짐'이 오는 일. 이사(移徙) 두 집이 살림을 합친다는 것은 내 예상보다 더 골치 아픈 일이었다. 특히 십수 년째 똑같은 짐을 이고 지고 다닌 사람이 친정 엄마일 경우 더더욱. 다 버리라고 다그치던 내게 다 버렸노라고 화답한 엄마였는데, 당일 부려놓은 짐들을 보고 기가 막혔다. 무엇으로 담갔는지도 모를 저 화려하고 무식한 담금주 병들은 대체 왜 여기 와있는 거죠? 다 버린 줄 알았던 25사이즈부터 32사이즈 까지 다채로운 제 바지는요?(20대 때부터 고무줄 몸무게였다) 그렇게 엄마와 입 시름을 하며 방 정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비타민C가 들어있던 철제 케이스에서 한 묶음의 머리띠와 빗들이 쏟아졌다.

 "에이씨, 이 쓸모없는 걸 뭘 이렇게 싸들고 왔대."

 엄마는 빗 꾸러미를 내동댕이 치며 화를 냈고, 우린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우리는 이 빗을 세상에서 가장 웃픈 빗이라고 불렀다. 색들도 참 곱네.

국어사전에서 쓸모를 '쓰이게 될 분야나 부분'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니, 이 빗들은 쓸모없음이 분명하다. 현재 엄마에게는 빗으로 쓸어낼 만한 머리카락이 없기 때문이다. 암투병 4년 차. 면역 항암부터 임상까지 굽이진 길을 돌고 돌아 결국 화학 항암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항암제란 게 얼마나 고약한지 인터넷으로 어울릴 만한 모자를 고를 새도 없이 일주일도 안되어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 엄마는 꽤 속상해했다. 한 여름에 집에서도 모자를 쓰고 있길래 벗으라는 내 성화에 쑥스럽게 모자를 벗던 엄마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처음에는 애초에 본인을 꾸미는데 전혀 관심이 없던 엄마가 예상보다 더 속상해하는 게 의아했는데 생각해보니 머리카락이란 게 참 묘한 것이다. 우리가 군입대 전에도 머리카락을 밀고, 이별을 하거나 큰 결심을 했을 때도 머리카락을 자르는 걸 보면, 머리카락이 없어진다는 것은 이전 세계와 단절되거나 지금까지의 나와 해체되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는 어떻게든 발붙여보려 했던 정상적인 삶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된 일이었겠구나. 그걸 깨달은 날 나도 꽤 속상해졌다. 

민머리 할미와 그 시린 머리까지 좋아하는 편견 없는 손녀


도스토옙스키가 그랬던가.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우리 가족은 이제 민머리 엄마에게 완벽하게 적응했다. 본인도 너무나 적응이 되셨는지, 요즘은 모자 쓰는 것조차 잊어서 본의 아니게 택배 기사님과 음식 배달원 분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우리 집에서는 이 행위를 빡밍아웃, 빡빡이+커밍아웃 이라 부른다) 덧붙여 엄마가  민머리 보이기를 가장 염려했던 손녀딸은 할머니의 매끈한 머리를 보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지금은 할미 머리 쓰다듬기가 취미다. 역시 아이들은 편견이 없다. 


나는 믿는다. 빗은 곧 쓸모를 되찾을 것이고, 10년 뒤쯤 이 이야기는 추석 당일 술상의 안주거리가 될 것임을. 그러니 빗이여, 다시 빛나라! 비정규 가족 탄생 D+56일. 오늘도 우리 가족은 모두 안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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