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 점심 메뉴 같은 작은 일부터 대학이나 회사처럼 중차대한 일까지 우리는 태어나 죽을 때까지 수많은 선택을 마주하게 된다. 인생의 선택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면 'TV 인생극장'이라는 예능 프로가 생각난다. 주인공 이휘재가 '그래, 결심했어!'를 외치며 두 개의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하면, 그 선택대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코믹하고 극적인 스토리와 당시 유명 배우의 출연으로 사랑을 받았더랬다. 영화 <미스터 노바디>가 좀 더 심각하고, SF 요소가 가미된 'TV 인생극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미스터 노바디>도 주인공 니모의 수많은 '그래, 결심했어!' 순간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9살의 어린 니모는 기차를 쫓아 달리고 있다. 이혼한 부모님 사이에서 니모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대로 달려 기차를 따라잡으면 엄마를 선택하는 것이고, 기차를 포기하고 뒤돌아 서면 아빠를 선택하는 것이다. 니모의 인생은 그때부터 각기 다른 선택의 결과에 따라 9가지로 나눠진다. 엄마를 따라가 안나와 사랑에 빠지고, 아빠를 따라가 앨리스와 사랑에 빠져 앨리스와 연인이 되기도 되지 않기도 하고, 앨리스가 아닌 진과 결혼하기도 한다. 마치 그 모든 선택이 실재하는 듯하다.
현재 시점으로 추정되는 2092년, 죽음을 눈앞에 둔 노인 니모를 중심으로 9개의 인생이 뒤죽박죽 제시된다. 각각의 인생 중 무엇이 진짜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니모의 인생을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의문점에 도달하게 된다. 니모의 선택은 합리적인가? 니모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을 하고, 어떤 이유로 선택을 후회하는 것일까? 영화의 첫 장면은 스토리와 아무 관련 없는 비둘기 실험으로 시작한다. 10초에 한 번씩 자동으로 모이가 나오지만 처음 모이가 나오는 순간 날갯짓을 했던 비둘기는 날개를 퍼덕여야 모이가 나온다고 착각한다. 그저 선후관계에 불과한 모이와 날갯짓의 관계를 인과관계로 오인한 것이다. 결과에 원인을 끼워 맞춘 셈이다.
니모의 선택도 그렇다. 원치 않은 결과가 나오면 니모는 그 원인을 선택의 순간에서 찾았다.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얻었다고 믿는다. 사실 모든 인생에서 니모는 죽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선택과 결과가 인과가 아닌 선후관계였기 때문이다. 니모의 선택은 어떤 이유도, 기준도 없는 비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더 나은 선택을 위한 몸부림이었지만, 더 나은 선택은 없었다.
죽음을 앞두고, 노인 니모는 선택하지 않았기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모든 것은 기차를 따라 달리던 9살 소년의 상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선택하지 않는 게 존재할까? 선택하지 않는 것조차 선택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 아닐까? 영화가 끝난 후에도 무엇이 진짜 선택이었는지는 관객의 선택으로 남는다. 기차역을 달리던 9살 소년의 상상일 수도 있고, 죽음을 앞둔 노인의 후회 어린 망상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확실한 건 무수한 선택의 가능성 속에서 그는 모두(everybody)가 되었지만, 결국 아무 선택도 하지 않았기에 아무도(nobody) 아니게 되었다는 점이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조커 역할로 유명한 자레드 레토가 원톱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9개의 서로 다른 인생을 보여주는 연기가 인상 깊다. 눈이 예쁘기로 유명한 배우인데, 커다랗고 맑은 눈동자가 영화의 미스테리하고 몽환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심오하고 어려운 스토리와 별개로 영화의 미장센과 연출, 특히 OST는 영화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신경 쓸 것도 생각할 것도 많은 날, 고민거리를 깔끔히 잊어 버리고 싶은 날, 복잡한 생각으로 복잡한 머리를 식히고 싶은 날 보면 좋을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