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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반 Aug 14. 2020

영화 <아비정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은 발 없는 새

나의 생은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왓챠 코멘트 중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코멘트로 기형도 시인의 시 '질투는 나의 힘'의 마지막 구절을 그대로 인용했다. 이 영화에 대해, 그리고 주인공 아비에 대해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왕가위 감독의 초기 작품이다. 작가주의 성향이 짙은 영화라 조금 지루할 수도 있다. 그래서 개봉 당시 홍콩 느와르를 기대한 관객들의 환불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고 한다. '아비정전(正傳)'이라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영화는 아비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일대기라고 해서 탄생부터 죽음까지 인생 전반을 다룬 것은 아니고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담고 있다. 하지만 아비라는 사람을 가장 잘 드러내는 순간들이다.




사랑 받지 못해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

아비는 친부모에게 버려진 후 양어머니와 함께 살아왔다.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친부모에게도 양모에게도 사랑받지는 못한 삶이었다. 최초의, 근원적인 사랑을 얻지 못한 아비는 그래서 그 누구도,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도 사랑하지 못한다. 수리진과 루루는 아비의 침대 위에 똑같은 표정으로 누워있다. 함께 있어도 외롭고 공허한 표정이다. 그 표정은 아비가 양모와 있을 때면 짓는 표정이고, 자신을 만나길 거부한 친부모의 집에서 떠나올 때 짓던 표정이다.



자신에게 지쳐 떠나려는 수리진과 루루에게 아비는 이곳을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경고한다. 그 경고는 돌고 돌아 결국 아비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친부모에게도, 양모에게도 아비는 다시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치 대물림되듯 친부모와 양모에게서 아비에게로, 아비에게서 다시 수리진과 루루에게로 외로움이 전염된다. 그들은 버리고 버림 받으며 서로의 뒷모습만 바라본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은 발 없는 새

한심하고 위험한 삶을 사는 아비지만, 수리진도 루루도 그의 친구도 모두 그의 자유로움에 홀려 그를 사랑하고 부러워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아비 같은 남자를 만난다면 도망치는 게 상책이다. 영화는 지금의 가치관에서 보았을 때 용납될 수 없는 지점이 많다. 아비가 친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점이 그의 여성 편력과 폭력성을 정당화해주지 못한다.) 쉴 때조차 바람 속에서 쉬는 발 없는 새는 꽤나 멋있어 보인다. 정해진 것, 주어진 것을 거부하고 떠도는 새의 삶은 누구나 한 번쯤 바라던 모습이다. 다들 꿈만 꿀 뿐이기에 그 꿈을 살아가는 아비는 동경과 질투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자유로워 보이는 아비는 외로움에 허덕이고 있었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던 발 없는 새는 기실 이미 죽어 있는 새였다. 아비는 그 사실을 모른 척 하다가 죽음의 순간에야 오롯이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래서일까? 죽어가는 아비의 표정은 허무하면서도 후련한 표정이다. 모두를 외롭게 했던 그지만 누구보다 외로웠던 건 아비 그 자신이었다.




거짓말처럼 떠난 장국영

아비는 장국영과 가장 닮은 인물이라고들 한다. 외롭고 공허해 보이지만, 그 쓸쓸함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사람이라 그런 듯 하다. 매일 3시마다 아비를 떠올렸던 수리진처럼 고독과 쓸쓸함이 사무치는 날이면 문득 이 영화를, 아비를, 거짓말처럼 떠난 장국영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 잊었다가도, 가끔씩은 다시금 생각나기도 할 것이다.



죽기 직전 아비의 표정이 이 영화를 관통하는 모든 것이다.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맸지만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던, 그래서 고독하고 쓸쓸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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