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떼는 한국에 가는 날 붙잡고 신신당부했다. 한국이 어떤지 너무너무 궁금하니까 꼭꼭 사진이랑 동영상을 많이 보내주기로. 자가격리가 끝나고 집 바깥을 나간 지 3시간도 안되어 광화문 돌담길에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마이떼, 여기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야. 강남 직장인이었지만 공공연하게 광화문을 동경해왔기에 여기가 얼마나 멋진 곳인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 동영상을 찍다가 일을 벌렸다. 뒷면만 박살 난 줄 알았는데 휴대폰 화면 상단에 녹색 줄이 쉴 새 없이 깜빡였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아예 켜지지 않겠구나. 그 예감은 적중했고 결국 예전에 쓰던 아이폰6s를 꺼냈다.
그렇게 이전 왓츠앱 문자 메시지가 살아났다. 지난해 9월 초까지 주고받았던 문자들이었다. 지금은 헤어진 에릭이랑 저렇게 부르기도 했었구나, 하는 감회와 함께 마이떼랑 나랑 오수랑 만들었던 그룹 채팅방도 살아났다. 그 당시 우리는 별 바보 같은 밈들을 보내기도 했고, 마이떼는 오수와 내 사진을 본따 이모티콘을 만들기도 했었다. 그게 그대로 저장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 당시 팬데믹이 끝나면 무얼 할지 말하는 데 집중했다. 쿠바는 무조건 가기로 했다. 쿠바 바다 앞에서 춤도 추고 맛있는 음식과 술도 잔뜩 즐기기로 했다. 나는 자동 운전면허만 있으니까 올드카 운전은 오수가 맡기로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진두지휘하는 마이떼는 면허가 없다.
우리가 공유했던 밈 중에는 집 안에서 향을 피워놓고 ‘여기가 칸쿤이다’ 명상하는 그림이 있었다. 그때는 까마득해 보였는데 마이떼와 나는 지난 5월에 같이 칸쿤에 다녀왔다. 그것도 차를 렌트해서 아주 신나게 다녀왔다. 마이떼는 처음엔 운전 얼마나 했냐고 묻더니, 곧 질문을 바꿔 한국에서 트럭 몰다가 왔냐고 물었다. 누구한테 운전을 배웠는지, 어떤 차를 몰았는지 등등을 묻다가 차선 바꿀 때 말해달라고 하더니 동영상을 찍었다. 네가 이렇게 운전하는 거 너네 부모님께 보내드려야겠어, 하고. 어쩜 저 멀리 사는 스페인 아이가 이렇게 한국인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말할 수 있는 거지? 순간 웃음이 터져 마이떼와 깔깔대며 웃었다.
일 때문에 멕시코시티를 벗어나 이사한 이후로, 쉬는 날이면 오수를 만나거나 매주 다른 지역을 여행한다. 혼자서 어디든 훌쩍 떠난다. 그럼 친구 만나기도 쉽고, 어느 정도 외로움을 상쇄할 수 있다. 그동안 아무런 위기의식 없이 잘 살 수 있었던 건 버스 시간이 다 돼서 발을 동동 구르는 와중에도, 작별 인사로 꼭 안아주고 가던 마이떼 덕분이었다. 마이떼는 성격 급한 내가 얼른 가! 하고 말하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힘껏 안아주고 간다.
그래서 지난주에는 우리 마이떼를 보러 멕시코시티에 다녀왔다. 마이떼와 나는 마사틀란 길에 있는 나무가 우거진 곳에 위치한 브런치 집에 만나서 계란요리를 먹었다. 마사틀란 길은 지난해 팬데믹 기간 동안 산책하던 길이었고, 계란요리는 마이떼가 세상 제일 좋아하는 요리다. 우리는 보자마자 서로를 꼭 끌어안고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손짓을 섞어가며 실감 나게 얘기한다.
그 순간이 정말 완벽하게 좋아서 다시 멕시코시티로 돌아오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었다. 나무가 우거진, 플랜테리어를 멋드러지게 해놓은 카페에서 좋아하는 책을 읽고, 취향이 잘 맞는 친구와 큰 소리로 웃을 수 있는 일은 딱 지금, 멕시코시티에서 가능하다.
게다가 이맘때 멕시코시티는 거리마다 풀 내음이 가득하다. 우기라서 그 전날 오후에 비가 퍼붓고 나면 아침에는 아직 풀잎마다 촉촉이 스며든 물기가 기분 좋은 상쾌함을 만들어낸다. 길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고소한 빵 냄새가 새어 나오고, 쿠키 가게 앞을 지나갈 때면 가득 퍼지는 버터 냄새, 카페 앞 진하게 풍기는 원두 냄새 등을 맡으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러다 햇볕이 따갑게 내리쬘 때면 테라스에 앉아 맥주 한 병을 시켜 얘기 나누며 휴일을 만끽할 수 있다.
마이떼는 아침을 먹으며 최근 일어난 일들을 얘기했다. 마이떼를 짝사랑하는 직장동료 이반이 또 마이떼에게 다시는 얼굴을 안 보고 싶다고 얘기했단다. 사실 이반은 예전에도 우리 집에 갑작스럽게 와놓고, 네가 좋아하는 쿠키 사서 너네 집에 왔는데 왜 전화 안 받아서 화나게 만드냐, 부터 시작해서 어느 날은 몰래 내게 인스타 디엠을 보내 마이떼 정말 천사같이 생기지 않았냐, 라는 말을 해서 차단한 적이 있는 그런 놈이다.
나는 마이떼한테 네가 이반이랑 데이트할 시 다시는 날 볼 생각하지 말라며, K 아침 드라마 같은 대사를 했고 마이떼도 그런 일이 생길 시에는 에릭(마이떼는 에릭을 진저리 낼 만큼 싫어했다)과의 결혼을 허락하겠다며 강하게 맞받아쳤다.
아무튼 이반은 졸업 후 변호사로서 탄탄대로의 길을 걷기 시작하자, 나는 이만큼의 임금을 받을만한 사람 동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은 은근히 깔보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이반은 보통 차도에서 아이를 업고 돌아다니는 할머니를 볼 때면, 불쌍한 노인, 10페소(한화 552원)라도 챙겨드려야지 하며 동전을 꺼낸다.
하지만 이번에 임금이 오르자, 다른 이들의 낮은 월급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식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단편적으로 접근하기에는 멕시코의 임금 격차는 이미 상식적인 궤도를 벗어난 수준이다.
멕시코의 임금 편차는 지난해 한 멕시코 정치인의 경솔한 발언을 발단으로 한번 샅샅이 파헤쳐진 바 있다. 가르시아 루나는 라디오 방송에서 “4만~5만페소(한화 221만원~276만원)의 적은(혹은 귀여운) 월급을 받고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만나봤다"고 발언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이에 현지 일간지 밀레니오는 멕시코 내 고용인구 중 9.1%가 월 1만1,000페소(한화 60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1%만이 3만8,000페소(한화 210만원) 이상을 받는다고 밝혔다.
멕시코 통계청에 따르면 고용인구의 33.4%가 월 3,396~7,393페소(한화 18만원~40만원)을 받으며, 일일 최저임금 123.22페소(한화 6,810원)를 받는 인구는 23.5%라고 덧붙였다.
여기에다 멕시코의 비공식 노동인구는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
동일한 근로시간, 조건 등을 갖추었는데도 격차가 비이상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을 단순히 개인의 역량 차로 돌리는 건 심각하게 게으른 태도다. 불쌍한 세뇨라라고 동정의 시선은 건네지만, 정작 그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거기다 이반은 은근히 가난한 자들에게 혐오를 드러낸다. 멕시코시티의 빈곤지역인 이스타팔라파에서는 온갖 일들이 다 일어나는 것처럼 묘사하며 자신이 차를 타고 지나가면 누군가 꼭 훔쳐 갈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런 모습들이 위선적이다. 예전에 만났던 에릭도 줄곧 사회적 약자의 인권 신장을 주장했지만, 정작 집에 청소하러 오는 ‘무챠챠’는 높은 확률로 문맹이라고 단정했다. 그는 인디헤나를 향한 혐오를 멈추라는 포스터를 자주 인스타에 올렸지만, 정작 그의 시선이 폭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하는 듯했다.
마이떼와 이런 이야기를 주제로 오래 이야기했다. 마이떼는 외국인으로서 멕시코에 머물 때 느끼는 감정들을 완벽하게 이해한다. 버터 향이 가득 나는 아몬드 크루아상을 나눠먹고, 꼬요아칸 공원 벤치에 드러누워 여러 뒤엉킨 생각을 풀어놓았다. 마이떼는 그렇게 진지하다가도 공원에서 진하게 키스하다 엉덩이까지 움켜쥐는 근처 커플을 보며 한국도 저래? 하고 묻는다. 호기심에 광대가 네모네모 스펀지밥처럼 한껏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