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르볼 브리야 Jul 05. 2020

멕시코에서 마약 하는 룸메랑 산다는 건

멕시코에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대규모 실직 사태가 발생했다. 오수도 그 물결에 휩쓸려 장기간 휴직 상태에 머물다 직장을 잃었다. 마케팅 회사에 다니던 오수는 다행히도 그간 준비하던 개인 사업으로 재빨리 업무를 전환했고, 때마침 산미겔 데 아옌데로 가족 전체가 이사하면서  그곳에 합류했다. 회사가 아니라면 더는 멕시코시티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룸메가 들어왔다. 이름은 호세임. 보통은 죠라고 부른다. 처음 집을 보러 온 날, 호세임은 여기서 5분 거리에 산다고 소개했다. 자신은 매우 깨끗한 사람임에 반해 룸메가 너무 집을 어질러 이사를 결심했단다.  

사실 죠는 한눈에 봐도 무척 예뻤고, 정리 정돈을 잘한다고 해서 마이떼와 나는 내심 기대가 컸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전의 설렘을 즐기며 죠가 오면 환영의 맥주를 마실지 논의했다.

죠가 온 날, 짐 정리를 하다가 뒤늦게 나와 말했다. 지금 굉장히 화가 난 상태야. 내가 아끼는 버버리, 독일에서 사온 아디다스, 샤넬 등 아끼는 옷들이 다 사라졌어. 미안, 오늘은 우리 같이 얘기 못하겠다. 너무 바빠서. 여기 오기 전에 짐을 잠시 앞집에 맡겨놨었는데 그 망할년이 다 가져간 듯 하네.

아, 그래. 이사 온 첫날은 바쁘지. 우리 신경 쓰지 말고 짐 잘 정리하고. 잃어버린 옷들은 어떡하지 등등 짧은 대화가 오갔다.

죠는 타마울리파스 사람이라서 북쪽 억양이 강했다. 처음엔 거의 못 알아들어 주로 마이떼가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 다음날 죠는 옷은 포기하기로 했다며, 자긴 브로커 일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에서 팀장직을 맡고 있다고 했다. 죠는 이미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집주인 성격이 조금 집요해 충분히 다 말했겠구나 싶었다.

이날 죠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어린 나이에 집을 나온 것, 6년간 사귄 남자친구와 결혼할 줄 알았지만 헤어진 것, 하지만 지금은 같은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 회사는 총 3명으로 움직이며 회장, 전 남자친구, 자신이라는 점, 그리고 지금 일을 사랑한다는 것까지.  

이사 온 첫 주 동안 죠는 오전 열한시 반에 일어나서 운동을 다녀온 후 오후 늦게 외출하고 새벽에 돌아왔다. 마이떼 회사 동료로 안면을 트고 지낸 플로르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더니 조심하라고 말했다. 플로르는 멕시코에서 온 지 3년된 아르헨티나 사람으로, 자기 경험상 그간 브로커 일을 한다는 여자들이 보통 그일을 한다고 조언했다.

하루는 창문을 열어놓고 자는데 새벽 3시에 말소리가 들렸다. 죠는 집 밖에서 누군가와 대화 중이었다. 엿듣고 싶지 않았지만 그 밤중에 창문 닫는 소리를 내 굳이 들었다고 표시를 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한 3주 지났나. 그날은 마이떼의 직장 동료들이 여럿 모여 각자 업무 관련 고민들을 털어놓으며 가볍게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저녁 8시쯤 죠가 들어왔다. 인사를 건네며 마주한 죠는 매우 신나 보였다. 죠는 힘겹게 신발을 벗더니 그대로 옷까지 벗었다. 누가 볼세라 바로 뛰어가 방문을 닫았다.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온 죠는 여전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직장 동료들은 죠가 돌아오자마자 떠났다. 그날 노래를 틀어놓고 좀더 술을 마셨는데 죠는 너무 신난다며 음식과 술을 더 시키려 했다. 술은 극구 말렸고 피자는 꼭 먹어야 한다길래 결국 시켰다. 배달원이 도착했지만 계단 내려가다 엎어질 것 같아 내가 대신 갔다. 그럼에도 죠는 창문을 열고 배달원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결국 휴대폰까지 떨어뜨렸다. 세상에, 배달원에게 저렇게 성희롱을 하다니.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가슴 한편으로는 죠가 안타까웠다. 마약에 취해서 사람들이 자기를 이용만 하는 것 같다 털어놓았을 때도 그랬다. 어쩌면, 어렸을 때부터 혼자 살아서 전 남자친구가 자기 모든 것이었다고 말한 것도 그런 감정을 부추겼을 수도 있다. 결국엔 자기 일에 대해서 말했을 때도 그냥 못 들은 척 넘기고 싶었다. 우리가 대화한 게 아니라, 죠가 마약 한 상태라는 불공정한 상황이니까.

그 다음날 죠는 아침 일찍 사라지더니 오후 3시쯤 돌아왔다. 또 눈이 이상했다. 인스타에는 거리의 악단에게 이 돈이나 먹으라며  발코니에서 돈을 뿌린 영상이 있었다. 다른 피드에서는 택시 기사에게 당신도 날 죽일 것이냐고 물은 후 반응을 촬영해 올렸다. 그러고 나서 우리 집에 온 것이다.

이제 한번 그런 모습을 보였으니까 다 보이는 걸까. 며칠 전에는 새벽 두시에 전화를 걸어 열쇠가 없으니 문을 열어달란다. 그날따라 잠이 오지 않아 깨있는 상태긴 했지만 그 시간에 전화로 문 열어달라는 것도 상식선에서 이해 가지 않았다. 지금 밖이냐고 물었더니 거의 다 도착했단다. 택시 안에서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달라고 전화를 건 것이다.

문을 열어줬더니 자기가 알아서 올라가겠다고 먼저 집에 들어가란다. 계단에서 한 두어 번 엎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현관문에 죠 휴대폰이 그대로 껴 있었다. 문을 두드려 휴대폰을 건넸는데 죠가 손가락으로 쉿-하는 손짓을 하며 사실은 여기 내 친구 와있다고 말한다. 친구 올려보내느라 먼저 가라 했구나. 죠는 이미 한껏 취해있었다.

그 이후로 약 2시간 동안 부엌에서 뭘 먹더니 화장실 가서 토하고, 트림하는 소리가 계속 났다. 진절머리가 났다. 저녁에 나가고 새벽 2시경에 들어와서 샤워하면서 욕하고 엎어지고 쿵쿵 걸어가는 소리를 듣는 게.

약에서 깨면 그래도 정상인이라서 괜찮지만, 어쭙잖은 동정심으로 죠를 이해하려 한 나도 웃겼다. 결국엔 이렇게 쉽게 미워할 거면서.

작가의 이전글 유월 결산 : 괜찮은 ‘순간’ 만들어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