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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볼 브리야 Jun 30. 2020

유월 결산 : 괜찮은 ‘순간’ 만들어내기

유월 한달은 조금 힘들었다. 즐겁기도 했지만 알 수 없는 우울감에 빠져 허우적대는 시간이 길었다. 왜 우울한 걸까, 그 원인을 찾으려고 하니 더욱 심연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어제도 그랬는데, 휴대폰 사진첩을 훑다가 마이떼가 기타 치며 노래하는 동영상을 발견했다. 내 방에서 바람에 흩날리는 꽃을 보다가 노랫소리에 거실로 나가는 길이었다. 문득 나중에 이 영상을 볼 때쯤에는 지금 이 순간을 엄청 그리워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훗날 그리워할 순간을 살고 있구나.

요새 멕시코는 큰일이 한 번에 닥쳤다. 일주일 내내 비가 왔고, 새벽 5시에 매우 큰 천둥번개가 친 다음 날 강진이 있었다. 그리고 금요일에는 수도 한복판에서 경찰수장 살해 시도가 있었다. 지진이 있던 날에는 왠지 눈 뜨자마자 커피가 마시고 싶어 집 밖에 나갔다. 소리를 크게 키우고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길을 걷다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길래 뭔가 이상해 주변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지금 무슨 일이 있나요? 왜 사람들이 다 거리로 나오나요? 창피하게도 지진을 한 단어로만 알고 있던 나는 그 아주머니의 말을 이해 못 했다. 결국 그 아주머니는 내 팔 한쪽을 가져가 팔짱을 꼭 끼워주었다. 그리고는 감싸듯이 안아주었다. 낯선 외국인에게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정말 감사하다.

아주머니가 나를 안고나서 땅이 또 움직였다. 처음 느끼는 강진이었다. 그날 오전 10시 30분경에 7.4 규모의 지진이 수도를 지나갔다. 한참을 그렇게 안겨있다가 혼자 있을 마이떼가 걱정돼 집으로 돌아갔다. 마이떼는 정말 다행히도 집 밖 공터에 있었다. 소파가 심하게 흔들려 현관으로 나가니 이웃집 사람들도 모두 대피 중이어서 따라 갔다고 한다. 지진 경보음은 듣지 못했단다.

모두들 여진을 우려해 집 밖에 한 시간은 있었지만, 마이떼와 나는 현관문도 닫지 못하고 나와 조금 일찍 들어갔다. 온갖 문자가 쏟아졌다. 괜찮다고 답을 하고 마이떼는 그 상황을 묘사하며 나는 커피 사러 나가서 혼자 있었다고 말했다. 조금 머쓱했다. 그래도 우리 둘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무사한 사실에 감사했다.

금요일에는 경찰수장 살해 시도가 있었다. 사실 다른 지역에서는 카르텔 영토 분쟁으로 살인사건이 잦았는데 수도 한복판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자 와닿는 무게가 달랐다. 수백 발의 총탄이 경찰수장이 타고 있던 차량에 쏟아졌고 그 중 3발이 피해를 입혔다. 다행히 수장은 살았지만 그 과정에서 경찰 2명과 길가에 있던 한 시민이 살해됐다.  

사망한 시민은 27세 여성이었다. 멕시코 주에 거주했으며 두 딸이 있었다. 사진으로도 봤다. 매우 어린 딸이었다. 멕시코시티는 집값이 비싸 근방인 멕시코 주에 거주하며 일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격리기간 동안은 집에 있었으나, 멕시코시티 조치가 완화되자 일을 하러 나온 여성이었다. 길거리에서 음식을 파는 사람이었다.

지난 주말엔 멕시코 국방부가 카르텔 두목의 모친을 체포했다. 그러자 그 두목이 보복 경고 동영상을 공개했다. 정유시설 앞에 폭탄물을 설치한 차량을 버리고 가기도 했으며 스무 개 넘는 곳에서 차량을 태워 자신의 분노를 표출했다. 자신과 관련된 사람에게는 이상할 정도의 집착을 보이면서 일반 시민의 목숨을 볼모로 잡는 데서 오는 괴리감이 컸다.

그런데 그렇게 잡으면 무얼 하나. 일주일 만에 법원은 증거부족을 이유로 체포한 인원 모두를 풀어줬다. 현장에서 마약을 대량 발견했지만 그들은 유유히 풀려났다. 분노보다는 허탈감이 컸다. 무력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바뀌겠지. 현장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사람은 훨씬 더 단단한 마음가짐으로 임할테니.

한 달에 1,000페소 남짓한 돈으로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기사를 접하고는 지갑에 동전을 곧잘 채워 넣었다. 길거리 악단이 지나가거나, 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이들을 보면 조금씩 주곤 했다. 지난 금요일에는 장 보러 가는 길에 누군가 휠체어에 앉아 힘겹게 숨 쉬는 것을 보았다. 눈도 못 뜬 상태로 입으로 숨을 쉬는 상태였다. 잔상이 계속 남아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근처 편의점에 가서 샌드위치와 빵을 담고 우유를 골랐다. 혹시라도 우유를 못마시면 어떡할까 싶어 다른 탄산수가 나은 선택일까 싶었지만 우유가 제일 무난해 보였다. 종이봉투에 담아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갔다.

짧은 인사와 함께 봉투를 두고 돌아서는데 발에 고름이 하얗게 내려앉은 것을 보았다. 사실은 거품이었다. 염증이 얼마나 심하면 사람 발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그날 저녁 마이떼에게 오늘 본 것을 말하자, 마이떼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의 발이 그대로 잘린 것을 보았다고 한다. 마이떼는 코로나 이전에 겪었으니 이 모든 일을 단순히 전염병으로 돌릴 순 없을 테다.

어렵게 발걸음을 돌렸다. 길에는 지난주에 만났던 작은 꽃다발을 파는 세뇨라가 있다. 어린 딸 한 명과 가슴팍에는 갓난아기도 있었다. 사실 지난주에는 꽃다발 두  개 가격인 30페소만 드리고 왔지만, 편의점 샌드위치 가격이 39페소인 것을 알고 나니 너무 적게 드렸다는 생각에 미쳤다. 다시 편의점에 가 샌드위치를 고르고 우유를 샀다.

마이떼는 스페인에 있었을 당시 샌드위치를 만들어 음식이 부족한 이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한다. 다음 주부터는 나도 치즈와 햄을 사서 샌드위치를 만들어야지. 여러 개 만들어서 우유랑 함께 드려야지, 다짐했다.

사실 이럴 때면 후안 생각이 가장 많이 난다. 인도에서 빵집을 했다던 그 애는 페루에서 한 어린아이가 심장병을 앓고 있다며 윗옷을 들어 올려 모든 버스 승객에게 다가가 동전을 구걸할 때도 꼭 잠깐의 장난을 쳤다. 동전을 들고 이리저리 장난을 치다가 콧잔등 한 번은 건드리고 기어이 아이 웃는 모습을 이끌어냈다. 사실 그 당시에 걔도 교환학생 신분이라 넉넉하진 않았을 텐데. 순간의 싱그러움을 만들어내는 그 애의 여유가 참 멋있었다.

그래서 몇 번 묻곤 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치즈를 팔러 다니는 남자아이가 있는데, 물건을 사지 않고 돈만 건네면 자존심 상해할까?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고도 괜찮은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래서 짧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꽃이 참 예쁘다며 말을 걸고 이것저것 보며 대화를 이어나가다 물건을 고른 후 주인에게 그대로 선물했다. 코로나바이러스와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데 당분간은 이 방식을 고수할 생각이다. 그래도 지금 이 보건 비상사태가 얼른 마무리됐으면.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이 공포를 떨쳐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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