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르볼 브리야 Jun 13. 2020

그냥 흐르도록 둘까, 말까

지금 이 시간이 좋다. 주말 아침 거실에 휑한 냄새가 떠돌자 인센스 스틱을 피웠다. 달큰한 냄새를 품은 이번 향은 지난 일요일에 산책하다 발견했다. 전에 산 라벤더향과 민트향이 무뎌질 때쯤 발견했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다. 거의 3배 정도. 너무 비싼데요, 하다가 결국은 그냥 집어 들었다. 집에 가서 피우면 좋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주방에서 라이터를 가져다 거실 창 옆에 두어 피우고 나는 다시 돌아가 이것저것 치운다. 오늘은 쓰레기를 가져다 버려야지. 이곳은 매일매일 수거 차량이 일정 시간에 방문한다. 거리에 종소리가 들리면 인근 거주민들이 나와 차량 앞에 모인다. 멕시코 코로나19 확산세가 심해지면서 쓰레기 수거원들도 40명가량 사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감염자가 사용한 폐기물을 여과 없이 처리하면서 2차 감염이 일어나는 데 원인이 있다. 기사에서는 낮은 월급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여러 복잡한 감정이 뒤섞이는데 스테이플러 심이 그대로 나와있는 게 눈에 띄었다. 하마터면 손 다칠뻔했네. 이런 건 휴지로 한번 감싸서 버리지. 플라스틱 용기에 음식물이 그대로 담겨있는 것도 발견했다. 왜 이렇게 버릴까. 재활용 수거 시스템이 아직 자리 잡지 않은 멕시코여도 음식물 쓰레기는 따로 버리는데. 가끔은 내가 너무 한국인으로서의 자아를 고집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생각을 비우고 그냥 하나씩 꺼내 정리했다

봉투를 단단히 묶어 구석에 놔두고 물기 마른 그릇까지 단정히 정리 후 찻주전자에 물을 올렸다. 가장 큰 노란색 잔에 라임 2개를 짜 준비했다. 물이 펄펄 끓으면 마시기 어려우니 적당한 시간대에 불을 껐다. 어제저녁에 과식을 했으니 오늘 아침은 차 한 잔으로 만족할 예정이다. 보통은 아보카도 토스트에 과일을 곁들인다.

거실을 가로질러 내 방으로 간다. 어느새 거실은 인센스 향으로 가득 차있고 방 안까지도 조금씩 들어온다. 좋다. 아침에 스트레칭하느라 잠깐 펴둔 담요, 볕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창, 네이비 색의 어두운 침구까지도 고요해서 좋다.

멕시코에 온 지도 어느덧 3개월이 다 되어간다. 생활에 안정도 생겼다. 집 근처를 거닐면서 거리 풍경도 눈에 익고 선호하는 산책로도 마련해 두었다. 점심 먹고 배부르면 20분 걷고 오고, 쌀쌀한 저녁 바람을 맞으며 신나게 걷기도 한다.

어느덧 눈인사와 윙크가 익숙해진 나를 발견했다. 보고 결정할래? 눈을 가리키며 윙크한다.  처음엔 꽤나 당황스러웠다. 과일가게에서 계산하려  줄 서는 동안 앞사람이 인사를 건네오기에 마주 보며 주고받았다. 다시 눈이 마주쳤을 땐 윙크를 하길래 허공으로 눈을 돌렸다. 그날 집에 돌아와 멕시칸 친구에게 물었다. 여긴 마음에 들면 윙크해?

멕시코가 좋고, 단순해진 생활이 무척 마음에 들지만 그럼에도 가슴 한구석이 쓸쓸하다. 지금 이 거리두기 기간이 길어져서 그런걸까. 이런 텅 빈 마음은 어떻게 채우는 걸까.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면 사라질까 싶어 뒤적이기도 한다. 그냥 흐르도록 둘까. 말까.

작가의 이전글 생각보다 알찬 거리두기 기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