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르볼 브리야 May 22. 2020

생각보다 알찬 거리두기 기간

온 집안이 초코케이크 냄새로 가득 찼다. 스페인에 있을 당시 디저트를 자주 만들어 먹었다던 마이떼는 지난 주말에 밀가루를 주문하더니 이것저것 뚝딱 잘도 만들어낸다. 초코 컵케이크를 완성하고 오수와 나를 크게 불러서 이것 좀 보라고 한다. 냄새도 그렇고 크게 부푼 모습이 굉장히 먹음직스러워 보여 마이떼, 진짜 맛있어 보인다. 라고 했더니 같이 나눠먹자. 라고 바로 얘기가 나온다.

미안, 지금 상태가 별로 안 좋아서. 속이 좀 안 좋네. 하고 다시 방에 들어갔다. 어제 점심에 크림파스타를 만들어 먹고 저녁엔 빵 두 조각을 먹었는데 무엇 때문에 탈이 났는지 밤새 끙끙 앓았다. 바늘로 쿡쿡 찌르는 느낌에 저절로 마음이 약해졌다.

최근 2주간 집 밖에 나간 적이 없기에 코로나19 일리는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증상을 찾아봤다. 통증이 심해지면서 곧바로 윗집이 생각났다. 전날 리디아와 같이 옥상에서 운동을 하고 저녁 식사에도 초대받아서 같이 다섯 시간은 얘기했다. 코로나가 맞다면 증상이 발현되기 전에 만나 내가 그들에게 옮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불안했다. 고령일수록 위험하다 했는데. 미안한 마음이 지배적이었다.

다행히도 병원에서 근무하는 동생이 코로나는 호흡기 질환이니 내가 말한 증상과는 완전히 다르단다. 하루 종일 굶고 메스꺼움을 참으며 일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아픈 티를 내기가 좀 그랬는데 마이떼가 오수에게 말했나 보다.

둘 다 방문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오수는 미안, 네가 아픈 줄 몰랐어. 나한테 국화차 있는데 그거라도 마셔봐. 한다. 마이떼는 우리 엄마는 항상 밥을 해주셨어. 쌀밥을 먹고나면 나을거야. 하며 각각의 치료법을 제시한다.

아직 속이 좋지 않아 무언가를 먹지는 못하고 찬장에서 국화차를 꺼내왔다. 신기한 게 삼시 세끼 잘  챙겨 먹고도 항상 군것질거리를 찾아다녔는데 이렇게 된통 아프고 나니 식욕이 없다. 며칠 전 벌써 5월 중순에 접어든 것을 자각하고 시간 참 빠르다 생각했다. 올 한 해는 무엇을 하겠다는 욕망보다는 그저 건강히 한 해를 잘 나는 게 우선이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할 수 있는 최대를 하게 된다. 대학 졸업 후 소홀했던 책읽기를 다시 시작했다. 새삼 책 읽는 기쁨을 여실히 깨닫는다. 소설책을 읽을 땐 한껏 감정이 부풀고, 시사 관련 책은 어렵긴 하지만 한 글자도 놓치기 싫어 소리 내어 크게 읽는다.  

책은 주로 해가 잘 들어오는 시간대에 거실에 앉아 읽거나, 담요를 가지고 옥상에 올라가 읽는다. 옥상에는 일본인 할아버지가 산다. 요시이는 그의 아내에게서 한국인 입주자가 새로 들어왔다고 먼저 들었는지, 처음 마주친 날 안녕하세요! 하고 크게 인사를 건넸다. 후쿠오카 사람이라는 그는 멕시코에 산 지는 40년 정도 되었고 일본 살 때 한국인 친구가 많았단다.

요시이는 옥상을 매우 예쁘고 화려하게 꾸몄는데 빨강, 분홍, 주홍 등 여러 가지 색의 꽃이 넝쿨을 타고 올라가게끔 만들었다. 초록 식물도 매우 잘 가꾸었다. 멕시코시티에서도 레포르마 근처만 가봤지만 나는 화려한 옥상의 색감에 홀딱 반해서 오수에게 과나후아토 가면 이런 느낌이냐고 물었다. 내 딴에는 가장 예쁜 곳을 비유한 것이었다.

하루는 옥상에서 담요를 펴 놓고 햇볕을 쬐면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요시이가 까르네(고기)!라고 외치면서 고기 호빵을 가져다주었다. 고맙다는 말에도 그는 멀쑥하게 웃으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어쩐지 전자레인지가 띵! 하는 소리가 나긴했다. 뜨거운 호빵을 호호 불어가며 맛있게 먹었다.

오수는 그의 억양이 심해 가끔 말을 이해 못 하겠다 했지만 나는 무뚝뚝하면서도 짧게 말하는 그의 말소리가 좋았다. 여러 말이 쑥스러워 먼저 등을 돌리고 걸어가는 모습은 돌아가신 할아버지한테서 자주 보았었다.

작가의 이전글 시작은 와인 오프너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