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의 맛을 고르다
* 글의 주인공은 저일 수도, 아닐 수도, 허상의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 글마다 주인공은 바뀝니다.
어렸을 때 할머니집을 가면 할머니는 장롱에 숨겨놓듯 넣어놨던 반짇고리 통에서 사탕을 꺼내줬다. 그 통에는 한 종류가 아닌 여러 종류의 사탕들이 있었다. 박하맛 사탕, 홍삼맛 사탕, 연유맛 사탕 등... 작은 반짇고리통 같은 곳에 사탕을 항상 모아뒀다가 내가 오면 꼭 아무도 몰래 꺼내서 줬다. 누가 훔쳐 먹는 것도 아닌데 왜 아무도 몰래 주셨는지는 모르겠다. 어렸던 나에겐 너무나 진했던 홍삼맛 사탕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럴 때마다 "홍삼이 몸에 얼마나 좋은 건데" 하셨다. 성인이 된 지금은 진했던 홍삼맛 사탕이 꽤나 달콤하게 느껴진다. 그 많은 사탕들은 항상 어디서 났을까? 매번 할머니는 할머니집 근처의 작은 슈퍼에 가서 사탕을 사두셨던 걸까? 그 많은 종류의 사탕들을? 할머니는 한글을 모른다. 그래서 이름을 보며 사탕을 고르실 수는 없으셨을 거다. 아마 포장지로 가늠하셨겠지?
할머니는 어릴 적에 공주처럼 자랐다고 했다. 동네에서 알아주던 부잣집에 귀한 딸로 자랐던 할머니였지만, 여자는 글을 배울 필요가 없다며 누구도 그녀에게 글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니, 가르치면 안 된다고 했단다. 할머니는 그렇게 자라다가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절었던 남자에게 시집보내졌다. 남편 되는 사람이 몸이 불편하니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을 거라는 어른들의 이유였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원하지 않던 남자와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그녀의 나이 스물도 안 됐을 때였다. 8남매를 낳고, 엄마가 됐다. 큰 아들은 낳자마자 아팠고 젊은 날, 가슴에 묻었다. 그렇게 총 7남매의 자식을 키웠다. 내 엄마는 8남매 중 막내딸이다. 막내인 엄마가 어릴 적 보았던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다툼이 있을 때마다 부엌에 가서 아궁이에 불을 때며 울었다고 했다. 자신의 결혼 생활을 내내 원망하며 가슴을 치고 울었단다.
그랬던 할머니도 이제는 머나먼 얘기가 되었다. 할머니의 치매가 몇 년 전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처음엔 심하지 않았던 치매였지만 90세를 넘기면서 심해졌다. 94세가 된 지금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요양원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할머니는 요양원이 집이 됐다. 7남매나 되지만, 각자가 먹고살기 힘들다 보니 치매가 점점 심해지는 할머니를 집에서 항상 케어할 수 있는 자식은 없었다. 그렇지만 공주였던 그녀답게 아직도 앉을 땐 두 다리를 꼬고 앉으며, 머리는 항상 정갈하게 빗고, 눈앞에 있는 물건도 정갈하게 놓는단다. 하지만, 사람의 눈을 마주하고 대답하기란 그녀에게 어려워졌다. 그저 묻는 말 중에 알아듣는 말이 있으면 짧게 대답만 할 뿐, 할머니는 중얼중얼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한가득 늘어놓는다. 오랜만에 할머니를 마주했던 날. 누군가의 시선도 거의 마주하지 않던 할머니가 밥을 먹고 있던 내 얼굴을, 내 눈을 가만히 보던 순간. 눈이 마주쳤고 할머니는 말했다. ”예뻐서. 예뻐서 봤어.” 내 나이, 올해 서른. 빨리 오지 않았으면 하는, 조금은 겁도 나는 서른이 할머니 앞에선 거짓말처럼 하찮다. 할머니도 나 같은 때가 있었을 거다. 할머니의 세월은 거짓말처럼 기억 저편으로 아득해졌다.
반짇고리 통에 담아있던 사탕을 고르는 것처럼, 삶이라는 것도 맛 별로 하나씩 고를 수 있으면 어떨까? 겉포장지를 보고, 무슨 맛일지 조금은 예상한 채 고르는 삶이란 예상한 대로 흘러갈까? 그렇게 되면 지금의 삶처럼 다채롭지 못하고 예측 가능한 재미없는 삶이 될까? 어쨌든 삶이란 그럴 수 없기에 할머니는 사탕이라도 여러 종류의 사탕을 매일 같이 고르셨는지 모른다. 엄마는, 삼촌은, 이모는 앞으로의 삶을 예측도 할 수 없는 할머니가 가여워서 운다. 어른들이 우는 틈에서 나도 운다. 할머니의, 내 엄마의, 내 어른들의 속수무책으로 흐르는 시간이 무서워서. 시간이 가늠되지 않아서 덜컥 눈물이 나더라. 이제는 나름 홍삼맛의 사탕도 달다고 느껴지는 나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에 비하면 내 포장지는 빳빳하기만 할 뿐 참 터무니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