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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호 Jan 12. 2022

추상적 표현이 싫은 이유


 에세이는 본인이 걸어온 삶 속에서 떠오른 생각들을 담아낸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표현이 추상적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손을 잡고 고즈넉한 강변을 걸을 때 기분을 말하고 싶다면, "행복하다."보다 좋은 표현이 있을까? 감정을 타인에게 이보다 효율적이고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하지만, 그런 부분때문에 나는 추상적인 표현을 싫어한다.  




 남자와 여자가 있다. 그 들은 서로에게 말한다.  "사랑해."


 이 짧은 문단으로 우리는 두 남 녀가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이 연인의 사랑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사랑을 하지만, 그 누구도 같은 사랑을 하지 않는다. 학창 시절 짝사랑했던 그녀에게도, 나를 희생으로 키워주신 부모님에게도, 속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에게도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분명히 다른 사랑이었다.


 심지어 연인 관계에서도 느껴지는 감점은 달랐다. 첫 연애에선 내 부족함이 여실히 드러나, 사막에서 목이 마르듯 애타는 감정이 들었다. 적극적인 대시 끝에 시작한 연애에선 롤러코스터에 탄 듯 하루에도 수십 번 감정이 오르내렸다. 2년이 넘도록 만난 연인에게는 가족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 사람마다 느껴지는 "사랑" 분명 다른 형태였다.


 추상이란 어떤 대상 혹은 세계로부터 하나의 상을 추려내어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수많은 상황에서 느껴지거나 인지되는 상황, 감정, 의미들의 공통점을 지칭하는 단어다. 그래서 모두가 같은 단어에 느껴지는 감정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막연한 표현의 나열은 공감에 큰 장애물이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잘 쓴 에세이는 작가가 느낀 감정에 대한 서술 없이도, 그 감정이 이해되어야 한다. 글을 읽으며, 내가 이 상황 속에 있는 것처럼 상상이 되어야, 작가의 감정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이 철저히 타인인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부끄럽게도, 이런 말을 하는 내가 그동안 쓴 글에는 추상적인 표현이 넘쳐난다. 이번 글은 반성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앞으로의 에세이에선 독자들이 조금 더 내 생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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