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hold your hand (1963)
1964년. 이때 세계는 기존과 다른 엄청난 변혁을 맞게 된다.
일본 도쿄에서는 비백인 유색인종 국가중 최초로 올림픽이 열려서 백인국가의 전유물이던 올림픽을 황인종 국가가 개최하며 올림픽의 벽을 허물었고,
리 아이아코카는 포드의 임원으로 재직하며 머스탱(Mustang)이라는 명차를 탄생시켰고 음악사적으로는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 영국침공.英國侵攻)이 생겨나게 된다.
미국에 영국 뮤지션들의 공세가 이어지면서 생겨난 이름으로 기존 미국음반시장은 거의 미국 뮤지션의 독무대였다. 2차 대전 이후 미국만이 No.1으로 여겨지던 시절. 이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 열풍을 이끈 것은 바로 비틀스로 이들의 성공적인 미국안착에 힘입어 롤링스톤스(The Rolling Stones), 허먼즈허미츠(Herman’s Hermits), 애니멀즈(The Animals) 등 다른 영국 뮤지션들의 미국진출 또한 성공하게 된다.
비틀즈가 미국에 상륙하면서 기록한 최초의 빌보드 1위곡은 I Want To Hold Your Hand로 이 곡은 1964년 빌보드 연간차트(Billboard Year-End Hot 100 singles of 1964)에서 1위를 기록하게 된다.
재미있는건 상위 5개 곡중 비틀즈는 무려 2개를 차지하게 된다. 1위가 I Want to Hold Your Hand였다면 2위는 She Loves You였으니까. 가히 비틀즈가 차트를 다 쓸어갔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때 비틀즈의 인기는 엄청나서 미국과 서유럽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는데 일본에서 가장 음반을 많이 판매한 외국 뮤지션 순위를 보면 1위가 머라이어 캐리, 2위가 비틀즈 3위가 카펜터스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비틀즈 열풍의 위력을 새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964년이면 비틀즈의 멤버 넷 중 존 레넌이 이끌어가던 시기였고 그래서 그런지 폴 매카트니보다 존 레넌의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강렬하게 들려온다. 1966년경부터는 존 레넌보다 폴 매카트니가 주도권을 가져가는 것으로 보인다. Paperback Writer를 듣다보면 아마 이때부터 그런 경향이 나타나는 듯 해보인다.
I Want to Hold Your Hand는 1963년에 발표된 곡으로 1964년 1월 18일 빌보드 주간 차트 45위를 기록하며 미국 음반업계에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징후를 드러냈고
1월 한달간 빌보드 주간차트 1위를 기록한 바비 빈턴(Bobby Vinton)의 There! I've Said It Again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I Want to Hold Your Hand를 4주간 1위에 자리매김하게 한다.
이후 She Loves You로 2주간 1위를, Can’t Buy Me Love로 5주간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즉 비틀즈는 자신의 곡 세개를 연달아 빌보드 주간차트 1위에 스트레이트로 이름을 올렸고 2월 1일부터 5월 2일까지 무려 14주 연속 1위를 이 세곡으로만 차지하게 된다.
이곡뿐만 아니라 Love Me Do(#1, 1964.5.30), A Hard Day's Night(#1, 1964.8.1, 8.8), I Feel Fine(#1. 1964.12.26, 1965.1.2, 1965.1.9)를 1위에 랭크시키는데 이걸 전부 포함하면
1964년에만 무려 18주를 1위에 올라가있는 셈이 된다.
이들 이외에도 1964년 6월 27일 영국 팝 듀오인 피터앤고든이 A World Without Love로 1위,
영국의 리듬앤블루스 밴드인 애니멀스가 The House of Rising Sun으로 1964년 9월 5일, 9월 12일, 9월 19일 3주 연속 1위,
영국 록밴드인 만프레드 만이 Do Wah Diddy Diddy로 1964년 10월 17일, 10월 24일 2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등 전체 빌보드 주간 리스트에서 영국 뮤지션들이 무려 24주 1위를 가져감으로서 브리티시 인베이젼의 시작을 알린다.
미국 뮤지션들에게는 불행하게도 이 열풍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았다.
이듬해인 1965년 영국 뮤지션들은 28주 1위 타이틀을 가져감으로서 더 그 공세를 펼쳤고 이제는 롤링스톤스까지 가세한다.
미국 뮤지션들에게는 다행히 1966년이 되면 영국뮤지션들은 12주 1위를 차지하게 되어 그 열풍이 급격히 밀리게 되는 양상을 보인다.
비틀즈의 4명 멤버는 모두 뛰어난 뮤지션들인데 이들은 1970년 해체된 이후에도 각자 솔로로 활동을 하면서 괄목할만한 실력들을 보여주었다.
먼저 조지 해리슨을 보면 1970년 발표한 My Sweet Lord가 빌보드 1위를 하면서 좋은 출발을 보여주었다. 이후 1973년 Give Me Love로 두번째 1위를 차지햇고 1987년 Got My Mind Set On You로 마지막 빌보드 1위를 달성한다.
두번째로 링고 스타인데 그는 1973년 Photograph와 1974년 You’re sixteen이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함으로서 여전히 그 실력을 입증하였으며
존 레넌은 1974년 Whatever Gets You thru the Night으로 1위를 차지하며 1980년 (Just Like) Starting Over로 마지막 1위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 곡은 1980년 12월 8일 레넌의 사망 직후 1위를 하게 된 곡인 만큼 생전 기록은 1건이다. 어쨌든 공식 빌보드 인증 기록은 2건이 된다.
이들과 달리 폴 매카트니는 매우 성공적인 커리어를 걷게 된다.
비틀즈가 해체되고 이제 폴 매카트니 개인으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자신의 첫번째 부인인 린다 매카트니와 함께 Uncle Albert/Admiral Halsey라는 곡으로 1971년 9월 4일 빌보드 1위를 1주간 차지하게 된다.
이 곡을 밀어내고 정상을 차지한 곡은 도니 오스몬드의 Go Away Little Girl이다. 이후 Wings를 조직하게 된다. Paul McCartney and Wings라고 하는 이 영국-미국 밴드는 폴 매카트니가 주축이 되었고 이후 1981년까지 명맥을 이어가는데 성과는 매우 좋았다.
1973년 My Love로 1973년 6월 2일부터 4주간 빌보드 주간차트 1위를 기록했다. 이듬해인 1974년엔 Band On the Run(YE #22)으로 74년 6월 8일 1주간 빌보드 1위를 차지했다.
1975년엔 Listen to What the Man Said (1975.7.19. 1주. YE #41)로 역시 빌보드 정상을 차지한다. 1976년 발표한 Silly Love Songs은 아마 폴 매카트니의 포스트 비틀즈 시대의 최고의 히트작이지 싶다.
1976년 5월 22일, 6월 12일, 19일, 26일 7월 3일. 이렇게 총 5주 1위를 차지했다.(중간이 비어있는 이유는 다이애나 로스의 Love Hangover가 2주간 1위를 해서이다.
역시 슈프림즈 비틀즈 킬러이다) 그리고 1976년 연간차트 1위를 차지하게 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1978년엔 With a Little Luck으로 5월 20일, 27일 2주간 빌보드 1위를 차지하고(YE #18)
마지막으로 1980년 이제는 Wings가 아니라 폴 매카트니 개인자격으로 발표한 Coming Up이 1위(80년 6월 28일, 7월 5일, 7월 12일. YE #7)를 하게 된다.
폴 매카트니는 역시 실력이 뛰어난 가수였고 여기에서 그칠 인물이 아니었다.
1982년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와 함게 발표한 Ebony and Ivory는 82년 5월 15일부터 6월 26일까지 7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면서(YE #4) 다시한번 폴 매카트니 파워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1983년을 마감하는 12월의 마지막 4주는 폴 매카트니와 마이클 잭슨의 듀엣곡인 Say Say Say(YE #3)였다. 1984년 1월 7일 14일에도 1위를 하여 총 6주간 1위를 하며 80년대 초반을 폴 매카트니의 시대로 열었다.
비틀즈는 네명이 하나로 뭉쳐있을대도 대단했지만 서로 독립하고 난 뒤에도 역시 대단하다고 할만큼 괄목할만한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가히 5억~6억장의 음반판매 기록으로 엘비스 프레슬리와 공동 1위를 점유하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