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싱더바운더리 Aug 19. 2023

11살, 도시락 반찬을 비교하며 할머니께 화를 내던 날

파도!-2

그날부로 나는 학교 생활에 꽤나 적응할 수 있었다. 파도는 여러모로 나를 잘 챙겨주었고 민준이, 소호 그리고 태주까지 모두 파도 덕에 친해질 수 있었다. 작은 학교였기에 반은 하나뿐이었고 우리는 몇 년씩이나 같이 지냈다. 그 세월 동안 함께 동고동락하며 우리들의 우정은 더없이 끈끈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끈끈한 우정임에도 나는 절대로 친구들을 우리 집에 데려오거나, 근처 해변가로 함께 놀러 가는 법이 없었다. 그때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부모님도 없이 할머니와만 사는 것, 그리고 할머니가 폭죽 장사를 한다는 것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을 무렵, 할머니와 크게 다툰 날이 있었다. 우리 집은 형편이 좋지 않았기에 항상 도시락은 흰밥에 김치, 그리고 재첩국뿐이었다. 나는 같은 반 친구들과 반찬을 비교하며 할머니에게 투정을 부렸다. 그것이 얼마나 못돼 빠진 일인지 당시에도 알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그 아픈 말들을 자꾸만 뱉어댔다. 나중에는 부실한 반찬을 싸주는 할머니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부실한 반찬을 싸줘야만 했던 할머니에게 화를 내는 나 자신에게 실망하여 눈물이 났다. 그렇게 그날은 퉁퉁 부운 눈으로 학교에 가야만 했다.


운 것을 들키기 싫었던 나는 점심시간까지 책상 위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마치 횟집 수족관에 며칠이고 누워있는 넙치처럼 말이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허기를 참지 못하고 도시락을 꺼내 들었다. 도시락에는 흰밥과 김치, 재첩국, 그리고 박대구이가 들어있었다.


노릇노릇 구워진 박대를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할머니에게 화를 냈던 나에 대한 부끄러움과 후회가 몰려왔다. 난데없이 우는 나를 가장 처음 발견한 것은 파도였다. 파도는 화들짝 놀라며 나에게 물었다.


"뭐야, 무슨 일 있어?"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파도는 계속해서 물었지만, 내가 끝내 답이 없자 포기하고 돌아가는 듯했다. 종례를 마치고 집에 가 밥을 먹고 씻은 후, 할머니 일을 도와드리러 집을 나섰다. 그런데, 저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 이담! 어디가!"


파도의 목소리였다. 헐레벌떡 뛰어오는 파도의 모습을 보니 반갑다가도 곧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그래서 이제 뭐 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