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안녕할 날이 왔다. 마냥 신날줄만 알았는데, 은근히 섭섭한 마음이 밀려온다. (도대체 왜???)
혹시 또 깁스했던 날들이 그리울까 봐, 깁스 푸르기 전 열심히 사진을 찍어 두었다. 이런 나를 이상하게 보는 남편의 시선을 눈치챘지만 그러든지 말든지... 심혈을 기울여 사진 찍는 내가 내 스스로도 웃긴다. 그리고 이런 내가 좋다.
나에게 파아란 바다이고 파아란 하늘이었던 깁스와 친해졌나 보다. 파랗고 청량감을 주는 깁스였기에 정이 담뿍 들었었다. 그렇게 꽉 끼던 깁스가 점점 내려오더니 이제는 발목을 덮을 만큼 내려왔다. 그리고 다리가 간지러울 때 간신히 꼬챙이 하나만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내 손 하나가 쑤욱 들어가진다.
겁쟁이인 나는 슬그머니 무섭기 시작한다.
'깁스를 자르다가 칼날이 내 다리에 상처를 내면 어떻게 하지?'
다행히 베테랑이신 의사 선생님께서 시원하게 깁스를 잘라주셨다.
꺄악, 앙상하고 더러운 다리가 드러났다.
몇 주째 씻지 못했더니 시커메진 다리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허옇게 올라온 때들을 보고 있자니 빨리 집에 가서 씻고 싶었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를 만났다.
바로 다리 보조기!
보험도 안 되어 꽤 비싼 보조기.
안녕? 반가워!
보조기를 차니 엄청 시원하다. 룰루랄라 콧노래가 나올 지경.
그리고 오른발을 바닥에 디디기가 훨씬 편안해졌다. 한 발을 든 상태로 목발을 짚고 다닐 때 정말 힘들었다. 저질 체력인 나는 안방에서 화장실을 갈 때마다 헥헥거렸다.(절대 우리 집이 넓어서다 아니다...) 그런데 보조기를 차니 비록 목발로 짚을지라도 걷는 느낌이 났다.
너무 신난 나머지 남편에게 커피타임을 제안했다.
"오빠 나 그 숲 포레스트인가.. 그 커피 너무 마셔보고 싶어."
파아란 깁스에 목발을 짚고 다니면 사람들이 곁눈질로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뭐 다리 보조기를 찬다고 해서 안 쳐다보진 않겠지만 조금의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오늘은 예쁜 원피스까지 입고 오지 않았는가. 유일하게 병원 가는 날이 밖으로 나가는 시간이기에 화장도 하고, 원피스도 입고 나왔다.
벼르고 벼르던 커피 마시기!
마카롱도 함께 먹는 호사를 누려본다.
이제 또 다른 세계가 열리지만, 통깁스를 푸른 것만으로도 행복감이 밀려온다.(이때는 몰랐다. 눈물의 재활의 시간들이 얼마나 힘들 줄을...)
보조기야 우리 친해지자.
아참, 포레스트 콜드 브루는 정말 맛있었다. 사실 밖에서 누가 타주는 커피 마시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어떤 커피를 마셔도 행복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