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남편이 날 너무 불쌍하게 보는 것 같아서 물어봤더니 남편 잘 만났다는 일장연설이 시작되었다.
맞다. 우리 남편 최고다. 정말!
주변에 사랑꾼으로 소문난 내 남편. 그런 남편을 왜 난 못 미덥게 봤을까?
다치기 전 날도 친구 만나고 오라며, 두 아이의 육아를 독점하는(?) 멋진 아빠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며, 근무 중 만나게 된 민원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민원 할머니는 한번 전화를 걸면 1시간은 기본이요. 기관에서 잘못한 이야기만 줄줄 읊으며 전화받은 사람의 속을 시커멓게 만드는 분이라고 했다. 하도 유명하신 분이라 친구에게 전화가 왔을 때, 사무적으로 전화를 받은 게 화근이 되었다고 한다.
"네가 무슨 형사야?? 어??" 라며 어김없이 민원을 넣으셨고, 친구는 할머니를 직접 찾아뵙게 되었다고 했다.
만나서 할머니의 이야기를 2시간 정도 듣고 왔는데, 결국 할머니의 속마음은 너무 무섭고, 너무 외롭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젊었을 적에 열명이 넘는 직원들과 함께하며 자기만의 사업을 했었다. 할머니는 독신이었다. 젊었을 때부터 어머니와 둘이 살며, 어머니를 부양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할머니는 더 외로워졌다. 소싯적 잘 나갔던 할머니는 현재의 삶이 불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몸은 자꾸 아파오고, 삶은 자꾸 외로워졌다. 그 이야기를 나누며 가족의 소중함을 우리 모두 깨달았다.
"딸이 결혼 안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그것도 괜찮지~ 아직 우리나라에선 결혼하면 여자가 너무 손해야!!"
친구의 물음에 나는 결혼해서 억울했던(?) 내 마음을 내비치며 결혼 안 해도 돼! 를 외쳤다.
그런데 이게 웬일...
무릎뼈가 부러지고.. 수술하고.. 꼼짝도 못 하는 신세가 되니 나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화장실도 못 가고, 밥도 못 가져오고 물도 뜨러 갈 수 없었다.
남편이 아이들을 돌보러 집에 간 시간. 혼자 병실에 남겨진 나는 작은 병실 침대 위에 누워서 tv를 보는 것, 자는 것, 핸드폰 만지는 것, 이외에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한 손에는 링거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한쪽 다리는 아예 움직일 수 없었다. 한 손과 한 다리로는 목발을 짚고 링거를 끌고, 코앞에 있는 화장실도 갈 수 없었다.
남편이 병실에 오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와! 이젠 오빠 도움받을 수 있으니 언제든지 화장실 갈 수 있다~~~'
사실 화장실 가는 게 너무 불편해서, 혼자는 갈 수 없어서, 병실에 있는 동안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수술 후 이틀 정도 지나니 머리가 너무 가렵더라.. 흑흑
목욕은커녕 세수도 못하고 있던 내게 병원의 샴푸실은 단비 같았다. 오빠가 머리를 감겨준다며 휠체어를 끌고 가주는데 너무 신이 났다. (머리 감는 게 이렇게 신이 날 수 있는 일이었구나..)
병원 샴푸실
누가 내 머리를 감겨주는 게 몇십 년 만인가. 어렸을 때 엄마가 감겨주는 것 말고는 처음이다. (앗 아니다.. 미용실 가면 헤어디자이너님이 감겨주시는구나..)
오빠의 서툰 손이, 내 옷이 젖을세라 살살 감겨주는 그 손길이 참 따뜻했다.
사실 더 박박 감겨줬으면 하는 속마음도 올라왔지만(너무 가려웠다...) 그 순간을 감사하게 느꼈다. 이 순간만은 오빠에게 이래자 저래라 잔소리하고 싶지 않았다. 서툴지만 찬찬히 감겨준 오빠의 솜씨로 내 머리카락은 깨끗해졌다. 바로 옆 드라이기를 꺼내어 말려주는 오빠의 손길이 정말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