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잣국 감자를 넣어서 끓인 국
수술실로 들어갔다. 대동맥 수술을 위해 수술실의 온도를 최대한 낮추고 있었다. 수술실 온도 22도. 마음까지 서늘했다. 환자분이 수술대 위에 누워 있었다. 생각보다 아주 작은 할머니셨다. 응급실에서 보았던 할머니의 뒤돌아 누운 작은 등이 생각났다.
수술을 시작했다. 혈압은 떨어지고 정신없이 '윙'가슴뼈를 열었다. 항상 그렇듯이 이론적으로는 수술은 복잡하지는 않다. 수술 전에 환자와 보호자분들께 설명드린 것처럼 찢어지고 터져 버린 심장과 이어지는 대동맥을 확인하고 망가진 부분을 잘라내고 터진 부분을 막아주고 피가 나지 않게 인공혈관으로 새로 연결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심장도 멈춰야 하고, 체온도 낮춰야 한다. 시간의 제약도 있고 피가 나기도 하고 마비가 오거나 환자가 깨어나지 않거나 아니면 돌아가시기도 한다. 어쩔때는 예고 없이 당연히. 그리고 무섭게.
그러니 흉부외과를 아무도 안 하려고 하지.
조심스럽게 찢어진 대동맥을 확인하고 심장을 멈췄다. 체온을 더 낮췄다. 더 이상 몸의 혈류는 없어졌고 서둘러 망가진 대동맥 부위를 잘랐다. 인공혈관을 길이에 맞추어 연결해주었다. 끝인가 하고 한시름 놓고 체온을 올렸다. "거의 끝났습니다. 마취과 교수님!" 이라고 말했지만 역시 피가 났다. 심장을 거쳐 온몸 구석구석 가야할 피가 심장 바로 앞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하나하나 다시 꿰매가 시작했다. 하루가 아주 많이 길어지고 오늘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두 시간이 십분처럼 흘렀다. 세상의 피는 다 가져다 써야 할것 같았던 피는 다행히 잦아들었다. 중환자실 침대에 환자가 눕히고 중환자실로 이동했다. 수술실 앞 복도는 환자가 수술실 들어갈 때 보다 두 배는 많은 환자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걱정된 눈빛들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굳어 버린 그분 들의 얼굴을 보며 수술 중에 출혈이 많이 있어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 출혈이 없다고 말씀을 드렸다. 환자의 침대를 우리 팀원들과 함께 밀고 중환 사실로 향했다. 10미터도 안 되는 수술 실과 중환자실 복도 사이를 보호자분 들이 전혀 나의 말을 못 믿겠다는 표정을 하며 따라왔다. 중환자실 자동문이 열리고 중환자실 벽시계가 보였다. 아 아직 하루가 끝나지 않았구나. 아직 오늘은 10분정도 남아 있었다.
환자는 평온했다. 거짓말처럼 출혈도 없어졌고 혈압도 안정적이었다. 동공반사 역시 정상이었고 소변도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팀원들에게 집으로 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환자옆을 떠나지 않았다. 그 사이 더 많은 보호자 분들이 중환자실 앞으로 모였다. 수술실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드렸고 수술 전 CT 검사를 다시 보여드렸다. 대동맥이 인공혈관으로 바뀐 사진들을 보여드리자 그제야 안심하는 표정들이셨다. 내일 아침이면 깨어나실 테니 오늘은 다들 집으로 돌아가시면 될 것 같다는 말씀도 드렸다. 내일 몇 시경에 깨어나냐는 질문에 중환자실 벽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고 있었다. 나는 내일은 아니고 오늘 아침이면 깨어나실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걱정을 하는 표정을 짓던 보호자 분들도 돌아갔다. 절뚝거리며 당직실로 들어왔다. 무릎이 아팠다. 수술을 할때마다 생기는 고질병. 발목에 붕대를 감고 괜찮아지겠지 하며 책상에 앉아 환자의 수술 후 흉부 사진과 수술 후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수술을 조금 일찍 끝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자책이 들었다. 침대에 잠깐 누웠다.
치킨이라도 시켜 놨으니 같이 먹자는 연락이 왔다. 곧 내려간다고 말을 하고 집으로 전화를 했다. 잘 끝난 것 같다고 말을 했다. 아이들은 이미 잠이 들었다. 밥은 꼭 챙겨 먹으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캔 커피를 하나 냉장고에서 꺼내 먹고 바로 잠이 들었다.
새벽 여섯 시가 조금 넘어서 연락이 왔다.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혈압이 조금 떨어진다는 말이었다. 캔 커피를 먹다가 잠들어서인지 눈이 번쩍 떠졌다. 중환 사실에 내려갔다. 할아버님 한 분이 복도를 서성거렸다. 환자의 보호자였다.
“할머니가 안 좋아요?”
할아버님의 질문이었다. 밤새 걱정이되 복도에 계셨던 것 같았다. 걱정하실 정도는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그사이 환자의 혈압은 올라 있었고 환자는 이미 깨어난 상태였다. 환자가 눈을 찡그렸고 손을 움직여 침대 난간을 두드렸다. 아침이면 깨어나실 것이라는 약속 지킨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혈압이 곧 올라 인공호흡기를 입에서 제거했다. 생각보다 회복이 빠르실 것 같았다. 복도에 계신 할아버님이 걱정하시던 생각이 나 얼른 면회를 시켜드렸다. 두 분은 서로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환자가 내 팔을 잡고 물을 먹고 싶다고 말했다. 수술 직후이니까 몇 시간만 더 참으시라고 말하고 당직실로 돌아가려는 데 할아버님이 환자가 종일 굶었는데 물도 못 먹으면 밥은 도대체 언제 먹냐고 물었다. 나는 오늘 점심부터는 미음을 드셔도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래 그래. 사람이 먹어야 힘을 내지!”
할아버지가 할머니께 한 말씀이었다. 밥을 먹어야 힘이 나는데. 생각해 보니 나도 종일 커피 몇 잔 말고는 굶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래에 들려 크로크 무슈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크로크 무슈는 벌레도 먹지 않을 상태가 되어 있었다. 병원 식당으로 내려갔다. 번쩍이는 스테인리스 식판에 밥을 담았다. 김치 몇 조각과 멸치 몇 알 그리고 감잣 국, 정말 보잘것없는 반찬이었다. 할아버님이 말이 생각났다. ‘먹어야 힘을 내지.’ 감잣국에 밥을 말아 한 수저를 들었다. 맛이 있었다. 정말 이상하게 맛이 있었다. 밥을 먹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사람들이 보였다, 밤새 쉬지 못한 전공의 들도. 그리고 정말 밥이 맛이 있었다. 감자 국의 마지막 한입을 삼켰다. 몽글거리고 따듯하고 부드러웠다.
내일이면 어제 수술한 할머님도 곧 밥을 드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가족들도 오늘 밥을 먹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함께 따듯한 감자국을 먹으면 참 좋을 것 같았다.
어쩌면 이 맛이 환자들이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 병원의 맛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