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눈
흡인성 폐렴: 대개 음식물이나 구토물과 같은 이물질이 기관지로 흡인되어 생기는 기관지 폐렴. 기도에 액체, 혈액, 침 또는 위 내용물이 존재한다(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서).
“내가 나이가 곧 90인데. 숨이 차서 그런데 수술 좀 해주쇼”
환자가 나를 처음 보고 한 말이었다. 허리는 굽으셨지만 키가 껑충 큰 환자는 외래 진료실로 딸과 함께 들어왔다. 숨을 몹시 헐떡이며. 수술에 대하여 내가 고민할 경황도 없이,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내게 말했다.
“그동안 의사들이 수술하라고 해도 나이가 많아서 수술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제 숨이 차서 안 되겠어. 빨리 수술을 해야지. 원 이거.”
병을 설명하거나 수술의 위험성을 더 말할 틈도 없었다. 환자는 십년넘게 들어 잘알고 있다고 했다. 고위험군에 속한다는 말을 해도 환자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지금, 숨이 차서 못살 지경일 뿐이라며 환자는 심장 수술을 빨리 해달라고 말했다. 문제는 나이였다. 병원 나이 87세, 우리 나이, 환자 말로는 90살이 넘으셨다고 했다. 잠시 고민하려고 할 때 환자는 말을 이었다.
“어차피 수술 안 하면 못 살 것 아냐.”
며칠 후 수술을 했다. 90년을 쓰고 망가질 떄로 망가진 심장 안의 판막을 고쳐 넣었다. 환자는 걱정보다 몇 배는 빠르게 회복하셨다. 그리고 자신보다 수 십 년 젊은 환자들처럼 일반병동에 올라가 걷고 움직이셨다. 다만 환자는 입맛이 없다고 했다. 원래 병원 밥은 맛이 없냐고 하시며, 희한하게 밥을 먹어도 물을 마셔도 입이 쓰다고 약간 쉰 소리로 말씀하셨다.
어느 날 밤 그는 기어코 뱃속에 있는 모든 음식물을 모두 게워 냈다. 한 주먹도 안 되는 음식물이 입으로 튀어나왔고. 바로 심한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찍어본 흉부 사진은 폐 아래 부분부터 하얗게 변해 있었다. 흡인성 폐렴이었다. 저녁에 드신 음식이 조금씩 조금씩 폐로 넘어가 버리다가 결국은 마지막으로 토한 음식물이 대부분 폐로 넘어가면서 폐를 망가트린 것 같았다. 산소 포화도 유지가 되지 않았고 덩달아 혈압도 급하게 떨어졌다.
급하게 인공호흡기를 삽입했다. 기도 안에 관을 넣어서 가래를 뽑아냈다. 폐 안쪽에서 반쯤 소화된 흰 밥풀과 반찬들이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섞여 나왔다. 쩌렁쩌렁하며 힘들어도 농담을 주고받던 환자는 금세 중환자실에 누워 천정만 봐야 하는 중환자가 되어 버렸다.
모두 안 될 것이라고 했고 수술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으셨던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건강체라도 90에 가까운 분이 회복될 것 같아? 이미 폐렴으로 한쪽 폐는 다 망가져 버렸는데. 그것도 항생제도 잘 안 듣는 흡인성 폐렴인데... 나의 자책의 시간이 시작되었고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고난의 길이 열려졌다.
그래도 끝은 있었다. 하루하루가 흐르고 한 달이 지나고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다. 또 한 달이 지나자 누군가 가래를 뽑아줘야만 했지만 병동을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또 한 달이 지나고, 그는 혼자 처음 외래에 오실 때처럼 걸어서 퇴원을 했다. 물론 숨이 조금 차기로 했고 흡인성 폐렴 가능성 때문에 입으로 음식을 드시는 것은 아직 한참 유예되어, 코에 관을 삽입한 채였다.
일 년 반이 지났다. 환자가 많이 좋아졌다. 코에 넣은 관은 한참 전에 제거한 채였다. 그는 다시 쩌렁쩌렁한 옛날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살이 빠지시며 잘 맞지 않아, 말씀하실 때 마나 틀니에서 덜컥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 이외에는 완벽해 보였다. 진료중에 숨이 차시냐고 여쭤 보았다.
“수술하고 일 년 넘으니까 이제는 하나도 안차. 수술 전보다 훨씬 좋아.”
그때 폐렴만 없었더라면 훨씬 고생이 덜하셨을 텐데. 하는 마음에 죄송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고마웠다. 포기하지 않으신 어르신의 노력이.
그는 외래 진료실 문을 나서다가 돌아들어 왔다. 딸이 그런 질문 마시라고 환자의 손을 잡아끌어도 기필코 할 말이 있다며 자리에 앉아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물었다.
“술 먹어도 되는 감? 친구들 만나면 술 한두 잔 해야 쓰는데. 친구야 다 죽고 없지만.”
잠깐 고민하다가, 많이는 말고, 아주 조금씩은 드시라고 했다.
환자는 조금씩이 얼마냐는 질문을 했다.
“막걸리 두 잔, 와인 한잔은 괜찮지?”
환자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우물쭈물 대답을 못 하고 있었고, 환자의 딸은 나와 환자를 번갈아 흘긴 눈으로 쳐다 보았지만, 그녀 역시 웃고 있었다. 딸의 눈을 피해서 웃고 계신 환자분 얼굴이 90년만에 피어난 봄눈 같았다. 다시는 환자의 음식들이 그들의 폐로 넘어가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참을 잔소리를 하고 환자분을 보내 드렸다. 환자는 딸과 한참을 실갱이를 하다가 웃으며 진료실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