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새벽 4시가 좀 넘은 시간
40여 명의 사람들은 평소처럼 출근을 한다. 1000여 명의 사람들이 먹을 “밥”을 짓기 위해서이다. 위생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머리카락마저 꼼꼼히 쌓아 모자 안으로 집어넣는다. 이미 어젯밤 준비해 놓은 쌀을 거대한 밥솥에 넣어 둔다. 아직 모든 사람이 자고 있을 새벽, 뿌연 수증기가 올라오고 반찬이 준비되고 보글거리며 국물이 끓어오를 무렵 밥 짓는 냄새가 지하 식당 안에 퍼져 나간다.
밤새 일하던 간호사들, 잠 한숨 자지 못하던 전공의들, 자의 반 타의 반 병원에 있던 당직자들이 지친 모습으로 모여든다. 밤새 걱정을 한시름 놓은 환자의 보호자들도 웅성거리며 식당 문을 빼꼼히 열며 들어온다. 적당히 서로 떨어져 앉아 아침밥을 먹는다. 한 켠에서는 병동의 환자에게 보내질 식사가 식판 위에 올려진 채 ‘밥차’에 실려 환자 곁으로 출발을 한다. 같지만 전혀 다른 30여 가지 이상의 메뉴가 환자들의 상태에 따라 제공된다.
캔에 들어있는 환자식부터 특정 성분을 제외한 특수 식까지. 누군 가에게는 마지막 식사가 될 수 있고, 누군 가에게는 벗어나고 싶은 지겨운 한 끼가 차곡차곡 주인을 찾아간다.
밥솥에서 퍼져 나온 하얀 수증기가 희미해질 무렵. 사람들은 병원의 밥을 먹고 각자의 하루를 위해 사라진다. 텅 빈 식당 안에서 힘들게 아침 식사 준비를 끝마친 조리사들이 모여 식사를 한다. 그리고 곧 식당 안에는 아무도 남지 않는다. 병원의 하루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의 하루도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