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이불비(愛易不非).
유동식
유동식: 유동식이라는 것은 액상의 음식물이다. 소화기 질환의 급성기, 급성 전염병, 외과적 수술 후 등에는 소화흡수의 기능이 쇠퇴해가기 때문에 유동식이 주어진다. 중탕, 수프, 우유, 과즙 등이 이용되는데 영양가는 낮다. 장기간에 걸쳐 유동식을 주는 것은 영양상 바람직하지 않다(간호학 대사전, 1996. 3. 1. 대한 간호학회)
의사가 되었다. 모두 인턴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처음 의사가 되고 두 달. 조금 병원의 공기에 익숙해져 있을 내가 주로 하는 일은 전공의가 지시하는 대로 새벽에 일어나 채혈을 하고 수술장에 들어가 누군가 시키는 데로 기구를 당기는 것이었다. 의사라기보다는 병원의 잡일을 하는 의사면허 있는 인간이 그 당시의 나란 존재였다. 그래도 보름 쯤 지나면서 그 틈에도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잠도 틈틈이 잘 수 있게 되었고 환자의 이름이 보이고 진단명이 보였고 얼굴이 보였다.
환자는 50살이 조금 넘은 고집이 꽤 있으실 것 같은 여자분이었다. 허리를 다쳐 수술 여부를 고민하는 상태였다. 그런데 복잡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환자는 음식을 전혀 삼키지 못했고 복부에 구멍을 뚫어 직접위로 유동식을 집어넣어 영양을 공급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때는 그런 환자가 낯설었지만 그 방식은 학생 때 배운 환자의 영양공급 중 한 형태였다. 나의 담당 전공의는 내게 환자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인턴 선생은 다른 것 하지 말고 영양관 주변을 소독만 해.”
환자는 날카로운 사람이었다. 소독을 하러 왔다고 하니까 나를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새로운 인턴 선생 이시냐고 물어보기만 하고 영양관 주변은 보여주지도 않았다. “점심 식사가 끝나면 다시 오세요.” 난 알겠다고 말하고 당직실로 돌아갔다. 언듯 보이는 그녀의 침상 앞에는 그녀가 먹을 식판이 놓여있었다. 분명 복부에 구멍을 뚫고 영양을 공급하는 관을 가지고 있는 환자는 캔으로 된 유동식을 주입하는데. 왜 그 환자는 식판에 식사를 받아놓지? 쓸데없이 생각이 길면 인턴에게는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게 마련이다. 수술장에서 연락이 왔고 나는 밥을 먹지 못한 채 수술장으로 들어갔다. 그녀에게는 저녁시간이 훌쩍 지난 후 찾아갈 수 있었다.
환자는 아주 일관 되게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저녁 아홉 시가 넘은 시간에 찾아온 나를 한눈으로 흘겨 보더니 "인턴선생은 처음 볼 텐데." 하고 말하며 자신의 배를 열어 보여 주었다. 그녀의 앙상한 배의 우측 중앙쯤에 커다란 반창고가 붙여 있었다. 그리고 반창고를 열자 지름이 3cm는 넘어 보이는 아주 큰 구멍이 복부 중앙에 뚫려 있었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그 구멍에는 분명 의료용인지 의심스러운 실리콘으로 만든 관과 뚜껑이 박혀있었다. 그녀는 내 반응을 살피며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그 주변을 잘 소독해 달라고 했다. 그 구멍 주변에는 반쯤 삭은 것 같은 밥풀이 붙어있었고 피부는 검붉게 변해 있었다. 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많이 보아 왔는 듯 최대한 열심히 소독을 하고 인턴 숙소로 돌아왔다. 동료 인턴 들에게도 물어보았다. 인터넷도 뒤져 보았고 책도 찾아보았다. 어디에도 영양 공급을 위해 배에 그렇게 큰 구멍을 뚫어 놓는다는 말은 없었다. 내가 여기저기검색을 통해서 찾아 본 사진속 영양관의 직경은 기껏 1cm 미만이었다.
궁금함을 꾹 참고 며칠간 그녀를 찾아가 하루에 한 번 환자의 영양관 주변을 소독했다. 관 주변과 피부 사이가 벗겨져 무척 쓰라릴 것 같았다. 아프지 않냐는 나의 말에 그녀는 는 평생 이렇게 살아서 괜찮다고 하며 웃었다.
거의 보름이 되어 가던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 해 주었다. 흔한이야기 라고 했다. 남편 때문인지 자식 때문인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아주 옛날에 가족과 같이 살던 시절에 죽고 싶어서 부엌에서 무엇인가를 들이마셨고 그때 식도가 다 타 버렸는지 음식을 삼키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다음부터는 더 흔한 이야기 였다. "혼자서 살게 되었지."라고 그녀는 아주 건조하게 말했다. 그 후부터 죽을 수 없어 배의 구멍으로 영양을 공급하면서 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소독이 거의 끝난 무렵 난 갑자기 그녀가 매번 유동식이 아닌 식사를 받는 것이 궁금해 유동식이 아닌 일반 식사를 어떻게 드시냐며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웃는 것도 무표정한 것도 아닌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작은 나무 상자를 꺼내서 유리로 만든 깔때기 모양의 유리 대롱을 보여 주었다. 한 끝이 작은 깔때기 모양으로 만든 3cm 정도 직경의 유리 유리 대롱들이 상자 안에 잘 씻겨 말려져 있었다. 의아해하는 나를 보고 그녀는 말했다.
"내가 먹는 것을 좋아해서."
거짓말 같은 이야기였다. 처음 퇴원하고 혼자 살게 되면서 한참을 유동식만을 배의 구멍으로 공급하며 살던 어느 날 그녀는 너무나 밥이 먹고 싶어서 밥을 삼켰고 그날 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통증에 응급실로 실려갔고 바로 중환자실에 입원해 화가 잔뜩 난 젊은 흉부외과 의사로 부터 ‘남아 있던 식도가 찢어지면서 가슴과 배 안쪽이 모두 감염되었고 이번에 혹시 살아나면 다시는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녀는 중환자실에서 너무나 서러워서 울었고 그렇게 울다 보니 어쩌다가 살아나 퇴원을 했고 퇴원해서는 유동식만 배의 관에 집어넣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는데, 어느 날 문득 밥을 너무 먹고 싶어 밥을 입안에 넣고 한참을 씹다가 뱉어 냈고, 그 다음에는 김치를 그 다음에는 고기를 구워 씹고 뱉어냈다고 했다. 모두 너무나 맛이 있었고 매일 정성껏 요리를 하고 열심히 씹어 뱉어내고 그 뱉어낸 모든 음식을 꼭꼭 싶어 모았다가 배의 영양관으로 주입했고 잘 들어가게 하려고 조금씩 조금씩 배의 구멍을 크게 하다 보니 그 구멍이 점점 커져서 실리콘 마개를 달게 되었다고 했다. 다니던 병원의 의사도 그렇게 하라고 허락을 받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매일 요리를 했고 음식을 더 잘 먹기 위해서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늘어난 배의 구멍 크기에 맞는 유리 대롱을 만들어 매끼 밥을 입에 넣고 씹은 다음에 유리 대롱에 뱉어서 모은 후에 유리 대롱으로 음식을 직접 집어넣었다. 그렇게 세월을 보냈다고 그녀는 멍하니 듣고 있는 내게 말하며 아주 맛있게 잘라놓은 사과를 꼭꼭 씹더니 음식을 뱉어 유리대롱을 통해 배의 구멍에 집어넣었다. 난 잠깐 정말 아주 잠깐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이미 내 반응을 알고 있었던 듯." 왜 이상해요. 먹는 게? 인턴 선생님? 그래도 아주 맛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한 달가량 병원에 있었다. 나는 그녀의 복부의 영양관을 열심히 소독해 주었고 그녀는 내 앞에서 여러 번 밥을 먹었다. 그녀에게는 정말 한번 한번 음식을 씹는 것이 아주 소중해 보였다. 내가 다른 과로 떠나간 후 그녀는 퇴원을 했지만 그녀가 퇴원하는 날나는 그녀를 엘리베이터까지 배웅을 할 수 있었다. 그녀는 "또 만나요 인턴 선생님." 분명 그렇게 인사를 했지만 우린 다시 만난 적은 없다.
그녀가 그 후 얼마나 힘든 인생을 살았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맛있게 음식들 먹는 것이 소원이라는 그녀의 말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씩씩하게 살아갈 그녀를 생각하며 병원의 스테인리스 식판에 밥을 담는다. 그녀는 내가 아는 한 가장 맛있게 밥을 먹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