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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병원의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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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Z May 13. 2020

육개장

우리 이제.

육개장: 쇠고기를 삶아서 알맞게 뜯어 넣고, 얼큰하게 갖은양념을 하여 끓인 국 (표준국어 대사전)


 환자를 알게 된 시점과 환자와 가까워지게 된 시점은 분명 차이가 있었다. 할머니는 내가 전임의 시절 교수님께 수술을 받으신 환자였다. 심장수술을 받고 며칠 고생은 하셨지만 좋은 경과를 보내며 퇴원하게 되셨다. 유난히 몸이 크셨고, 수술 후 많이 지쳐하셨지만 효성이 지극하신 아드님과 함께 회복을 위해 열심히 병동을 걸어 다니셨던, 환하게 웃으시며 집으로 가셨던 모습이 기억에 남던 환자였다.


 전임의 시절 만났던 대부분의 환자는 수술을 집도하신 교수님의 외래를 찾아가기 때문에 퇴원을 하면 인연이 끊기고 만다.  그런데 할머니와 보호자는 퇴원을 한 후 한참이 지나 내 외래를 방문하셨다. 심장은 회복된 상태였다. 환자가 왜 갑자기 내 외래를 방문했는지가 나는 궁금했다. 외래의 문을 열고 들어온 환자와 보호자의 표정은 정말 좋지 않았다. 아주 쓸쓸하고 심각하고 조용하게 보호자는 내게 말했다.


"어머니 위암이라고 하시네요."


 위암 진단을 받고 환자와 보호자는 그날 열려 있던 내 외래로 무작정 찾아오신 것 같았다. "아"라는 탄식 말고는 내가 해드릴 말이 별로 없었다. 전문의 라고는 하지만 내 분야가 아닌 위암이라는 질병에 대하여 나도 많은 것을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걱정돼서 찾아오신 환자와 보호자 분께 내가 아는 수준에서 최대한 설명을 드렸다. 몇 가지 조언을 드리고 보호자와 함께 가져오신 영상을 보았다. 잘은 몰라도 병이 많이 진행된 것 같았다.


 얼마 후 이번에는 보호자가 외래로 찾아왔다. 보호자는 말을 아꼈다. 한참 후에 그는 내과에서 어머니의 병명에 "말기"라는 진단명이 추가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나도 해드릴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유난히 어둡던 외래 스탠드 불빛 아래서 우리는 같이 한숨을 쉬었다.


  환자분은 외래에 자주 오셨다. 당시에 환자가 거의 없던 텅 비어 있는 내 외래 진료실에 환자와 보호자는 병원에 올마다 들리곤 했다. 나는 몇 가지 필요한 처방을 해 드렸고, 그 보다는 주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 알고 계시면서 천천히 본인의 이야기를 해 주시던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 날은 보호자 분께 다가올 원하지 않은 '나중'을 위해, 환자분이 쉬실 수 있는 집과 가까운 병원을 알아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조언도 해드렸다. 정말 나중을 위해서.어렵게 꺼낸 이야기 였다. 보호자는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얼마후 적당한 병원을 찾은것 같다는 말씀을 했다. 


 '나중'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할머니는 식사를 못하게 되셨고, 집에서 돌봐드릴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어느 날부터 외래는 아드님만 방문하셨다. 할머니는 집과 가까운 병원에서 지내신다고 했다. 나는 그날부터 한번도 할머니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낯선 번호가 찍힌 문자를 받았다. 할머니가 방금 전에 돌아가셨다는 아드님의 문자였다. 어렵게 내 번호를 알아내서 소식을 전한 것 같았다. "덕분에 편안하게 임종하셨다"는 문자를 읽다가, 편안하다는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편하지 않으셨을 텐데, 할머니가 힘이 드셨을 텐데.


 할머님은 내가 근무하는 병원의 장례식장에 모셔졌다. 나는 내 환자였던 할머니의 얼굴을 영정으로 보는게 왠지 두렵다는 생각을 했다. 고민을 하다가 양복을 차려입었다. 아내에게 환자 분이 사망했는데 가는 게 어떨 것 같냐고 물었고, "의사가 환자 장례식 장에 가기도 해?" 라고 고민하던 아내는 그간의 이야기를 듣고는 가는 것 도 좋을 것 같다는 대답을 했다. 늘 그렇듯 장례식장은 낯 설었다. 내가 죽어 장례식장에 와도 이 곳은 익숙해지지 않을 곳 같았다.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화장실 울을 보고 검은 넥타이를 맨 후, 할머니의 빈소로 갔다. 신발을 벗고 헌화를 하고 절을 올리고 상주를 만났다. 아드님과 조금 긴 시간 눈인사를 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잔뜩 맺혀 있었다. 할머님의 영정을 바라봤다. 다정하시던 환자분이 내 눈앞에 사진으로만 남아 있었다.


 뒤돌아 다시 인사를 하며 나오려는 데, 아드님이 따라 나오셨다. 그리고 식사를 하고 가시라고 권유하셨다. 거절하고 나오려다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드님과 조금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할머니의 마지막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아드님은 할머니의 장성한 손자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할머니를 돌봐 주시던 의사 선생님이라고'. 왠지 모르지만 그 말이 부끄러웠다. 할머니는 돌아가셨는데.

 

 아드님과 마주 보고 자리에 앉아 있는데 누군가가 육개장을 가져왔다. 아드님은 나의 앞에 앉아 할머님의 마지막에 대하여 말씀하시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나도 눈물이 났다. 육개장을 삼켰다. 육개장 속의 밥풀 알알이 가 내 위에 하나하나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길었다. 택시는 잡히지 않았고 인사하고 나오는 내 그림자가 누군가에 밟혀 있는 느낌이었다. 몇번을 할머님의 명복을 빌었다. 집에서도 한참 생각이 났다.


 왠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도 그날의 날카롭고 무거웠던 육개장 맛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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