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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 SEAN Oct 24. 2023

[생각] 삶이라는 아주 지긋지긋한 것에 대해

열심히 쌓아올린 모래성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자신이 어느 정도 삶에 진솔하고 진심인 사람이라 여겨도 좋을 듯하다. 하지만 솔직하다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니 그렇게 기뻐할 것까진 없다. 솔직함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니까.


전과 달리, 글을 써내려 가는 톤이 꽤 시니컬해졌다. 스스로 느끼고 있다는 건 남이 보기에는 좀 지나쳐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최근에 추락과 상실을 경험한 자의 마음이 따뜻함과 너그러움으로 가득하다면, 그야말로 가식이다. 물론 가식 자체도 가치중립적인 표현일 뿐이니 그리 미워할 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말투와 표정, 몸짓조차 보이지 않는 글에서마저 공들여 가식을 떨 필요가 있나 싶다.


가식은 그동안 참 많이도 떨어왔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젠 체도 많이 했고,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말 뿐인 지적도 참 많이 했다.


그렇게 몇 년 간 이런저런 것들을 써왔지만, 지금 남아 있는 것들 중 그나마 쓸만한 것이라고는 냉소 정도 뿐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덕에 지금도 이렇게 뭔지도 모를 뭔가를 끄적이고 있지만.

*


리비도와 타나토스에 대해 생각한다. 누군가가 태어난 날에는 삶과 죽음에 대해 낯 뜨거워 하지 않아도 좋을 명분이 생긴다.


나는 프로이트 주의자가 아니지만,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으로 앞선 두 개념을 인용하는 걸 좋아한다. 인간의 본 모습을 날카로운 핀셋으로 집어내는 듯한 예리함에 묘한 설득력을 느낀다. 내가 욕구가 강한 타입의 인간이라 더욱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한 삽, 한 삽 진심을 담아 소중하게 쌓아올린 모래성을 바라보며 기뻐하던 마음도, 쥐고 있던 삽으로 처참하게 원점으로 돌려보내며 이유 모를 쾌감을 느끼는 마음도, 전부 별 수 없는 한 사람의 마음이다.


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무너져 내리는 모래성을, 먼 발치에서 지켜보아야만 하는 심정에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쾌감 따위는 조금도 찾아보기 힘든, 아주 드라이한 추락과 상실이 온몸을 지배한다.


굳이 파도가 넘나드는 해안에 모래성을 짓기로 한 건 나지만, 파도에 의해 무너졌다면 그토록 뼈아프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숨이 붙어 있는 한 여전히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 만고의 진리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굳건할 것이다.


우리가 일년 같은 하루를 보내던, 십년 같은 일주일을 보내던 세상은 아무런 관심이 없다. 평소처럼 그저 바쁘게 돌아갈 뿐이다. 아니, 어쩌면 세상이라는 개념도 우리가 지어낸 허상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더더욱 허울 따윈 벗어던지고 삶에 진솔하게 다가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몸에 힘을 빼고 삶이라는 해저에 깊숙이 밀착하여 진심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한 여름밤의 꿈 같던 기억을 먹이 삼아 언젠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순간을 기다리는 고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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