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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 SEAN Nov 10. 2023

[일상] 담배냄새 가득한 삶

나는 담배냄새를 좋아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많이 싫어하는 편이다. 그래서 일부러 흡연장 근처에 가지 않고, 흡연자들과도 가급적 대화를 오래 하지 않는다.


물론 담배냄새를 좋아하는 사람 자체가 매우 드물겠지만 말이다. 흡연자 중에도 담배냄새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한때 담배냄새를 선망했던 시절도 있었다. PC방 가는 걸 그 무엇보다 좋아했던 무척 어린 시절의 일이다. 요즘 아이들이 '유튜브 1시간 보기'에 목메는 것처럼 나 또한 'PC방 1시간'에 거뜬히 초능력을 발휘하던 시절이 있었다.


초능력은 대부분 영단어 외우기, 수학문제 몇 장 풀기 등에 사용됐지만. 그때 인생의 초능력을 다 써버려서인지 이후로 나는 초능력 쓰는 법을 깨끗이 잊어버렸다.


생각해 보면 그때도 담배냄새를 직접 맡는 것만큼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PC방 의자에 배어 있는 은은한 담배향이 좋았던 모양이다. 종소리만 들어도 침을 뚝뚝 흘리는 개처럼 말이다.

그러던 내게, 최근 이상하게도 주변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졌다. 내 생활반경에 있는 사람 중에 담배냄새를 풍기지 않는 인간이 단 하나도 없을 지경이다.


살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라 스스로도 무척 신기해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지금의 내게 정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서 이렇다 할 소리는 하지 않는다. 너무 싫지만 별수 없다. 다이소에 부지런히 드나들며 온갖 방향제를 사모을 수 밖에다.


우선 나의 동거인부터가 아주 오랜 애연가다. 그는 혼자 살아온 시간이 길다 보니 집안에서 담배를 태우길 주저하지 않는다. 나와 함께 지내며 슬쩍 눈치를 보는 듯싶다가도 혼자 있을 때는 굳어진 습관을 좀처럼 지우기 힘들어한다.


그렇다 보니 집안이 아주 굴뚝이다. 나는 내 물건과 옷가지들을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지 걱정이다. (다이소야 지켜줘...) 괜히 아까운 향수만 자주 뿌리게 된다.


그래도 나를 배려한 답시고 새벽이면 TV 소리를 줄이고(그는 TV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 밥이니 빨래니 청소니 하는 집안일을 혼자 도맡아 한다. 내가 거드려 하면 일에는 모두 순서가 있다면서 괜히 핀잔을 준다.


그래서 나는 그가 없을 때만 몰래 집안일을 해놓는다. 그러면 또 싫어하는 내색을 하진 않는다.

영화 <어바웃타임> 좋아하는 장면. 담배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난다.

두 번째 그룹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프로젝트 팀원들이다. 아무리 스트레스 농도가 짙은 업무라지만 담배를 태우지 않는 사람이 나 말고는 아무도 없는 게 놀랍다.


쉬는 시간이면 다 같이 테라스로 나가 하나 같이 세상 고단한 표정을 지으며 한 번에 몇 개비씩 피워대는데, 거기서도 일 얘기를 끊임없이 이어가니 나도 별 수 없이 아메리카노 빨대라도 물고 찬바람을 쐬게 된다.


흡연자들은 니코틴이 흡수될 때 뉴런의 접속이 더 활발해지면서 창의적인 생각이 잘 떠오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반쯤은 맞는 것 같지만, 나머지 반은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흡연을 하는 동안 오갔던 탄성을 자아내는 이야기들 중에 실제로 반영되는 것들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다들 '하이' 상태여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들은 팀 내에서 가장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나를 전적으로 배려해 주고 있다. 담배에 관해서는 실내에 냄새가 배지 않도록 날마다 나무젓가락을 가져와 끼워 피는 사람도 있다. (그럴 정성이면 차라리 끊겠다는 건 비흡연자의 짧은 생각이다.)


일부러 개인 시간까지 내서 새로운 것을 알려주고, 내가 헤매는 부분이 있다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꽤 오랜 시간 기다려준다. 덕분에 나는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멋도 모르는 무지랭이 하룻강아지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매일 가르쳐주는 보람이 있다거나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이 재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괜스레 힘이 난다. 하루빨리 실력을 키워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야만 내가 바라는 지점에도 한 걸음 성큼 다가설 수 있을 테니까. 믿음직하고 매력적인 모습을 서둘러 보여주고 싶다. 담배냄새는 나를 긴장하게 한다.


이외에도 내 삶에 멋대로 날아든 크고 작은 담배냄새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아직 연기 속에 남겨두고 싶다.


내년이면 담배값이 오르는 10년 주기가 돌아온다고 한다. 벌써부터 여러 흡연자들이 떨고 있다. 담배값이 8천 원이니, 1만 원이니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많이 오르긴 하려나 보다.


개인적으로는 담배값이 얼마가 되든 상관 않지만, 그렇게 올려 거둔 세금으로 거리 곳곳에 흡연부스나 여럿 만들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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