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진정 무서운 이유는 우리의 일상을 한순간에 뒤집어 놓는다는 데 있다. 모든 게, 지옥으로 변한다.
아침이면 가까운 사람과 퀭한 목소리로 인사를 나누고, 점심에는 뭘 먹어도 좋을 메뉴를 심각하게 고민하며, 저녁에는 생각보다 서둘러 흘러가버린 하루에 대해 불평하던,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했던 삶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렇게 전쟁이 길어지다 보면 과거의 시간이 정말 실존했던 것인지, 그 시절이 꿈인지 지금이 꿈인지조차 모호해지는 시점이 찾아온다.
머리로는 분명 기억하고 있지만, 몸으로는 너무도 멀게 느껴진다. 'rollback'이라는 명령어 하나로 손쉽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능 따윈 현실에는 구현되어 있지 않다.
눈앞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이 죽어나간다. 사람의 인격이 하루가 다르게 마모되고 피폐해져 간다.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그런 이에게 먼 훗날의 희망을 약속한다고 해서 과연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참혹한 전선에서 꺼내주기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이라도 쳐야 하는 게 아닐까.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최선이고 차선인지, 무엇이 지혜롭고 어리석은 것인지 그 어느 때보다 판단하기 힘들다.
시간은 언젠가 지금의 참상을 종식시켜 놓겠지만, 그때 무엇을 남겨놓을지를 생각하면 뼛속 깊이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그것만이 오직 두렵다.
너무 많은 것을 앗아가진 않았으면 하고 진심으로 기도한다. 적어도 온 힘을 다하면 조금은 다시 웃을 수 있는 뿌리만큼은 남아 있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새까만 하늘이 온몸을 짓이겨누르는 듯한 무력감을 느낀다.
그럴수록 삶을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고 다짐한다. 먼 전선에서는 오늘도 누군가 소리 없이 울고 있다. 그를 위해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를 위해'라는 가식적인 표현조차 한없이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