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땐 인생의 단위가 참 짧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한 밤 한 밤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고, 바람이 달라지는 한 달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아직 미취학 아동일 때의 이야기다.
초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됐다. 이후로 한 달 정도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계절이 달라지는 3개월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이 인생의 시작과 끝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3개월이 두 번 지나면 방학이 한 번 찾아오니 아마 한 50년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체벌이 심한 담임을 만난 어느 해에는 1년이 정말 지옥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어려도 지옥이 어떤 곳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비로소 1년 단위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라는 걸 여러 해에 걸쳐 몸소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이 시간이 내가 알던 그 시간이 맞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드디어 시간의 상대성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 시간이라는 녀석의 목에 단단한 줄이라도 메어 놓은 듯이 엉금엉금 흘러간다.
지금 생각해도 그 3년을 어떻게 견뎌 냈는지 의문이다. 사실 견딘다는 행위에 '어떻게'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견딘다는 건 말 그대로 어떻게든 견뎌낸다는 의미니까.
그렇게 수능을 치르고 대학에 들어가고 나면 한 1~2년은 눈 깜짝할 새에 사라지고 만다. 좋은 시절은 언제나 쏜살 같이 흘러가 버린다. 좋은 날들의 소중함을 꼭 지나고 나서 알게 되는 이유다.
당시에는 너무 급속도로 흘러가는 바람에 미처 잘잘못을 되짚어 볼 여유가 없다. 그 탓에 좋았던 시절은 언제나 그리우면서도 아쉽다.
운 나쁘게 몸도 마음도 건강한 남자라면, 입대와 동시에 시간이 뿜어내는 원초적인 두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한 밤, 한 밤을 지새우던 어느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느 하루를 손꼽아 기다린다.
하지만 한 밤, 한 밤, 아무리 세도 크리스마스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세다가 멈추고 다시 세다가 멈추기를 수십 번 반복하다 보면 비로소 평생을 함께 할 작은 진리를 깨닫는다.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는 것.'
그 이후 사회로 다시 풀려난 뒤에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불평할 일이 별로 없다.
가만히 있는 자에게 아무것도 허용하지 않는 세상에서, 자신의 것을 만들기 위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면 어느새 서른이 찾아온다.
그리고 서른부터는 지금껏 만들어 놓은 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또 한 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마흔을 맞이하게 되겠지.
마흔은 어떤 나이일까. 지금 생각하기에는 약간의 조급함과 약간의 의연함을 모두 갖춘 나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풍파를 너무 직격으로 맞지 않는다면 마흔 만큼 멋진 나이도 또 없을 것 같다.
시간은 반드시 흐르고, 언젠간 전에 없던 멋진 날들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무언가 바라는 걸 향해 나아가고 있는 이라면, 당장의 답답함이나 조급함이나 막막함에 대해 너무 크게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목줄을 꽁꽁 묶어 놓은 듯이 안 가는 것도 시간이지만, 목줄을 꽁꽁 묶어 놔도 흘러가는 게 시간이니 말이다.
뉴스 탭을 돌아다니다 보니 사랑을 위해 10년을 기다렸다는 어느 부부의 일화도 눈에 들어온다. 마크롱인지 마카롱인지 하는 어느 자유국가의 대통령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