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우리 삶에 '멋'이나 '아름다움'이란 게 있다면, 그것들은 대체로 '불필요함'이나 ‘쓸모없음’의 형태를 띠고 있을 거라 믿는다.
자기 삶을 위해 꼭 필요하거나 해야 되는 것들에는 '멋'이나 '아름다움'이 깃들기 힘들기 때문이다. '생존'에 필요한 공간을 먼저 채우고 나면 다른 것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아마 우리가 혼자 살아가는 나이 든 남자들에게서 '멋'이나 '아름다움'을 느끼기 어려운 이유일 것이다. 이들의 삶은 고도의 '효율적'과 '효과적'으로 가득 차 있다.
물론, 이는 지극히 일반적인 이야기다.
최근 나의 삶은 증증도의 '심각병'에 걸려 있었다. 어떤 행동을 하든, 무슨 생각을 하든 굉장히 쉽게 심각해졌다.
무언가 새롭거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걸 보더라도 '이게 과연 지금 내 삶에 도움이 되나?', '당장 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이런 데 시간을 쓴다고?' 하는 생각에 금세 고개를 돌렸다.
가급적이면 낯선 생각과 새로운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시야가 넓지도 않은 내가, 이전에 정해놓은 몇 가지 루틴만을 고집하며 지난 몇 달을 살아왔다.
책을 읽지도 낯선 곳에 가지도 않았다. 늘 비슷한 옷을 입고 값싼 음식들로 끼니를 때웠다.
넓지 않은 생활반경 속에서 다르지 않은 스케줄을 소화하며 오직 효율과 효과만을 집착적으로 좇았다.
그러다 보니 정말 신기하게도, 전에 없이 감정이 메마르고,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활기를 잃어간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름은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시간을 바쁘게 보내고 있다고 자부하는 면도 없지 않았는데, 이래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위기의식이 들었다.
이래서는 삶에의 의지와 집착만이 남은, 연로하고 고독한 남자들과 다를 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들의 삶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비난받아야 마땅한 삶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두려울 만큼 닮고 싶지 않을 뿐이다.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우리 도처에 널려 있다.
예전의 나는 책을 읽는 것도, 이야기를 쓰는 것도, 전시나 공연을 보는 것도,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는 것도 좋아했다. 삶이 죽음보다 조금 더 나은 이유 중 하나로 예술의 존재를 꼽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불필요함으로 간주하고 전부 덜어내고 나니, 내게는 '살아 있음'이라는 상태 외에 남아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멋과 아름다움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의지와 집착이 들어앉아 있었다. 전에 없이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만약 지금 사랑하는 누군가와 유한한 시간을 공유하며 삶을 함께하고 있었다면, 상황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른다.
삶에 있어 그것만큼 멋지고 아름다운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외의 것들은 어떻게 두어도 중간은 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누군가와의 관계에는 나와 상대, 그리고 다양한 외부 요인들이 영향을 미친다. 나만 좋아서 될 것도, 나와 상대만 좋아서 될 것도 아니다. 모든 게 어느 정도 잘 맞아떨어져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
그래서 사랑을 기적에 견줄 만큼 멋지고 아름다운 것이라 말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어찌 됐든 지금 나는 심각병에 걸려 있고, 그걸 혼자서 잘 해결해야 하는 상황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게는 어떻게든 불필요함을 다시 불어넣는 극약처방이 필요해 보인다.
앞으로는 그동안 불필요하다고 치부했던 유의미한 것들을 다시 찾아볼 요량이다. 그중 꽤 괜찮은 걸 발견한다면 여기에도 남겨볼 생각이다. 누군가와 좋은 걸 나누는 방법이 꼭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만약 어떤 이유에서든 나와 비슷한 심각병에 걸려 있다면, 게다가 굳이 그걸 해결하겠다는 마음이 든다면, 괜히 불필요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에 시간과 돈을 써보는 걸 권하고 싶다.
의외로 결과가 꽤 나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