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이야기
요즘은 잘 듣지 않고 있지만, 지난해 끄트머리에는 밤낮으로 붙잡고 들었던 젊은 밴드가 하나 있어. 이 밴드는 미디어나 인디 공연계에서 조금씩 이름을 알려오고 있었지만, 내가 알게 된 건 참 우연한 일이야.
몇 달 전 도무지 어쩔 줄 모르던 마음을 안고 제주에 잠시 내려갔었을 때였어.
마침 서울에서 일하는 한 친구가 혼자 쉬러 내려왔는데 막상 큰 숙소를 빌려놓고 나니 심심하다는 거야. 그래서 그곳에서는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기대를 품고 내려간 거였어.
그 친구는 작은 자취방에 실제 운전석이랑 비슷한 레이싱 장비를 갖춰놓곤 밤마다 게임 속 스포츠카를 운전하는 게 취미였어. 단점이 있다면 진짜 운전을 해본 건 아주 오래전 운전면허를 딸 때가 전부였다는 거지.
게다가 늘 레이싱게임을 할 때 맥주를 마시면서 공격적으로 플레이해 왔던 터라 현실은 다르다고 몇 번이나 주의를 줘야 했어.
어찌 됐든, 친구의 운전 연습을 빌미로 제주의 해안도로를 몇 바퀴나 빙빙 돌았는지 몰라. 난 조수석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얼굴로 맞으며 차가워졌다가 뜨거워졌다가를 수없이 반복했지.
그때였어. 벌써 몇 시간째 우리는 유튜브 뮤직을 틀어놓고 있었지만, 간혹 서로 아는 노래가 나올 때만 흥얼거릴 뿐 그다지 귀를 기울이고 있진 않았었거든. 각자의 생각에만 빠져서 말이야.
근데 뭔가 익숙한 가사에 마음을 울리는 여성 보컬의 아련한 목소리와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져서 둘 다 깜짝 놀랐던 거야.
그 밴드 이름은 '유다빈밴드'였고, 그때 나오던 음악이 대표곡인 '좋지 아니한가'라는 곡이었어.
이 곡은 원래 크라잉넛이 2007년도에 발표한 노래인데, 유다빈밴드가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편곡한 거였어.
원곡에서는 크라잉넛 특유의 거친 에너지가 느껴졌다면, 편곡에서는 감정이 절제되어 있다가 파팡 하며 드넓게 펼쳐지는 서사가 담겨 있어. 두 곡을 비교해서 들어봐도 좋을 것 같아.
이날 이후로 초겨울 내내 유다빈밴드가 작곡한 노래와 편곡한 노래를 미친 듯이 들었어. 왠지 모르게 이들의 음악은 나에게 와닿았어. 어딘지도 모를 곳을 향해 지칠 대로 지쳐 터덜터덜 걸어가다 문득 누군가 놓고 간듯한 작은 의자를 발견한 기분이었어.
이 밴드는 참 귀여운 구석이 있어. 호원대학교 실용음악과에 재학 중인 25살 친구들 5명이 모여서 2021년에 결성한 열정 넘치는 밴드거든.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같은 친구들이지.
원래는 유다빈 보컬이 혼자서 오디션을 준비하려다가 상금이 많은 대회는 밴드로 참여하는 게 유리해 보여서 동기들을 모아서 만들게 됐대. 노래도 너무 잘하지만 자리가 없다면 만들면 되지, 라고 당차게 생각하는 모습에서 뭔가 그리운 마음이 들었어.
그렇게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밴드의 음악을 홀린 듯이 듣다가 이들에 대해 조금 더 잘 알 수 있게 된 계기가 있어. 날씨가 부쩍 추워진 어느 날, 집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거야.
평소 같았으면 한달음에 달려갔겠지만, 내가 지금 그런 맘 편한 행동이나 하고 있을 때인가 하는 생각이 들자 망설여지기 시작했어. 뭔가를 보고 들으며 마음 놓고 즐길 마음의 여유 따윈 사실 없었거든.
그러고 보면 생각보다 콘서트에 몇 번 가본 거 같아. 재작년 겨울에 조금은 실망했던 MC.THE.MAX 콘서트 말고도, 집 가까운 곳에서 열렸던 10cm×소수빈 콘서트도 가봤으니 말이야.
무튼, 티켓 오픈날부터 시작된 갈팡질팡은 공연 전날까지도 이어졌지. 그나마 다행인 건 공연이 있는 주가 되니까 금토일 공연의 전 좌석이 매진됐다는 거야. 그렇게 나도 마음을 접고 평소처럼 유튜브 뮤직이나 듣고 있을 때였어.
문득 티켓팅 페이지에 들어가 보고 싶은 거야. 금요일 오후 11시가 넘은 시간이었어. 설마 하는 생각에 들어가 보니 2열 가운데 즈음에 한 자리가 비는 거야. 그래서 나도 모르게 토요일 공연을 예매해 버리고 말았어.
그렇게 난 생애 3번째 콘서트에 다녀오게 됐지. 그리고 생각보다 유다빈밴드의 멋진 점을 많이 발견해서 이렇게 글로도 남기고 있는 거 같아.
일단 풍부한 밴드 사운드랑 청량한 보컬을 바로 코앞에서 듣는 것부터 정말 멋진 경험이었어. 한강 한가운데 있는 노들섬라이브하우스에서 열린 단독공연이었는데, 해가 일찍 내려앉은 노들섬은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낭만적이었지.
그동안 이 밴드의 노래를 얼마나 반복재생했던지, 알게 된 지 한 달 남짓인데도 거의 모든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었어. 이건 나도 좀 놀란 점이긴 해.
유다빈밴드는 아직 젊은 밴드지만 굉장히 세련되고 보여줄 게 많은 느낌이었어. 곡 중간에 들어가는 멘트도 좋았고, 무엇보다 포크·블루스·록 등 폭넓은 곡들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 같아 보였어.
(물론 비주얼적으로는 아직 풋풋하고 미숙한 느낌도 있었지만!)
유다빈 보컬의 청량함을 한껏 돋보이게 하는 멤버들의 실력은 정말 기대 이상이었어. 이상운 드러머는 플루트를 연주할 수 있었고, 조영윤 베이시스트는 첼로를 켤 수 있었어.
드럼 세트 옆에 놓인 플루트와 베이스 옆에 놓인 첼로의 모습을 떠올려봐. 정말 멋질 거 같지 않아?
이준형 기타리스트는 기타를 5개나 가지고 무대에 올랐고, 유명종 키보디스트의 옆에는 그랜드피아노가 떡하니 놓여 있었지.
이 많은 악기들이 그저 장식으로만 자리하고 있었다면 그렇게 놀라지 않았을 거야.
유다빈밴드는 직접 프로듀싱한 곡에 따라 악기 구성을 다르게 했는데, 그러다 보니 일렉 위주의 곡에는 일렉기타·베이스·드럼·키보드 구성을, 어쿠스틱 위주의 곡에는 어쿠스틱기타·첼로·플루트·그랜드피아노 구성을 취할 수 있었어.
곡의 특성에 따라 관객들을 방방 뛰게 하거나, 마음을 울리는 전환이 자유로웠던 거지. 이 밴드의 앞날이 더 기대되는 이유야.
25살에 벌써 자기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두각을 드러낸 친구들을 만나고 나니 나도 뭔가 열심히 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어.
사실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이렇게 주저리 쓴 글보다 직접 들어보면 곧바로 무슨 이야긴지 알겠지만, 이렇게나마 내가 느낀 생각과 감정들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야.
너도 들어보면 분명 나보다 더 맘에 들어할지도 몰라.
이번 달에는 조금은 생소할지도 모를 인디밴드 얘기를 가져왔어. 어떻게 읽었는지 모르겠어. 다음 달에는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져올게.
그럼 따뜻한 봄기운이 만연할 3월에 또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