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호이어는 각종 스포츠 후원과 영화 및 드라마 협찬, 광고등의 마케팅을 통해 롤렉스, 오메가, 까르띠에등과 함께 현재 국내의 일반적인 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고급시계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특히 20-30대 남성들에게 인지도가 매우 높은 편인데, 이들의 구매력을 고려했을 때 매력적이고 현실적인, 그래서 또래 친구들을 통해 더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고급시계 브랜드입니다.
이런 태그 호이어의 인기에는 '아쿠아 레이서'라는 다이빙 워치가 하나의 축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태그 호이어의 베스트셀러이자 캐시 카우인 '아쿠아 레이서'는 아마 다이빙 워치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시계일 것입니다. 고급 다이빙 워치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론진의 하이드로 콘퀘스트와 레전드 다이버, 오리스의 애커스, 라도의 캡틴쿡과 함께 입문급의 고급 다이빙 워치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심지어, 다이빙 워치의 절대 강자인 롤렉스의 서브마리너, 오메가의 씨마스터와 함께 명품 다이빙 워치로 분류되기도 하는 이 아쿠아 레이서는 특유의 세련된 디자인과 이미지메이킹, 절묘한 가격대 점유로 여러 욕구를 가진 수요를 이끌어내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런 태그 호이어의 다이빙 워치인 아쿠아 레이서의 큰 성공이 일견 놀랍게도 보이는데, 태그 호이어는 다이빙 워치에 일가견 있는 시계 제작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태그 호이어는 카 레이싱, 올림픽 등의 타임 스포츠에 필요한 시간을 계측하는 도구였던 스톱워치 기술을 혁신시켜온 데 뿌리를 둔 크로노-그래프의 전통적인 강자입니다. 태그 호이어의 역사적 산물들은, 그러니까 모나코, 까레라, 오타비아 같은 태그 호이어의 대표 컬렉션들은, 시간을 계측하는 크로노-그래프에 그 뿌리를 두고 발전해 온 시계들이고 태그 호이어의 역사 자체가 시간 계측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해왔습니다. 이런 시계 제작사가 다이빙 워치의 선두주자로 그 역사를 발전시켜 온 롤렉스의 서브마리너, 오메가의 씨마스터 다음의 인지도를 가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다이빙 워치를 자신의 컬렉션에 추가하게 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 동반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호이어(태그 호이어의 전신)의 판매 목록에는 대부분 복잡한 크로노-그래프 시계들이 빼곡히 자리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자랑할 만한 길고 화려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69년 12월 25일 일본의 세이코사의 아스트론의 출시로 시작된 쿼츠 파동이 스위스의 시계산업 전반을 강타했을 때 그 크고 복잡한 위기를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건전지로 가는 시계로 잘 알려져 있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쿼츠 시계는 태엽과 기어들로 작동하는 기계식 시계들보다 훨씬 정확하였을뿐더러 가격 경쟁력에서조차 우위에 있던 기술적 혁명 자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계식 시계를 그 근간으로 하는 스위스 시계산업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던 상황이었고 대부분의 시계 제작사들이 이러한 변화에 존폐 위기까지 내몰렸으며, 실제로 엄청난 숫자의 시계 제작사들이 이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도산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위기는 호이어에게 역시 커다랗고 실질적인 위협으로 턱 밑까지 다가온 상태였습니다. 정확한 시간 계측이 장점이자 모든 것이었던 호이어사에겐 기계식 시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쿼츠 무브먼트의 등장이 매우 직접적인 타격이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쿼츠 무브먼트를 개발한 세이코사는 곧이어 쿼츠 기반의 크로노-그래프 시계를 출시하여 위기감은 더더욱 고조되었습니다. 이미 기술적 차원에서 호이어사는 더 이상의 장점이 없어진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서 당시 호이어를 이끌고 있던 잭 호이어는 79년 한 산업박람회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산업 박람회에서 몇 고객들에게 수중 스포츠를 위한 충분한 방수가 보장되는 괜찮은 시계를 찾기가 어렵다는 불평들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판매 목록이 크로노-그래프였던 호이어사에게 다이빙 워치의 개발은 전혀 가보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호이어사는 변화가 필요했고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으며, 이러한 선택은 79년, 최초의 다이빙 워치인 블랑팡의 피브티 패덤즈와 롤렉스의 서브마리너가 출시된지는 무려 20년이 훌쩍 넘은 시점에서 그들의 카탈로그에 그들의 다이빙 워치를 최초로 소개하며 그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이 다이빙 워치의 후발주자가 시계산업 전반을 뒤흔드는 거대한 폭풍 속에서 호이어(태그 호이어의 전신)를 구해낸 작은 영웅이 되었다고 한다면, 다 큰 성인이 읽기엔 다소 유치한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일 것입니다. 물론 그런 마법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 호이어의 최초의 다이빙 워치가 대대로 호이어를 경영해오던 호이어 가문에게서 호이어사의 경영권을 지켜주지는 못했습니다. 호이어는 결국 쿼츠 파동을 이겨내지 못하고 피아제로 매각되었고 그 이후엔 태그사로 인수되어 그 회사명을 태그 호이어로 변경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종국엔 LVMH라는 거대 공룡 (루이비통과 디올 같은 명품 브랜드는 물론이요 예거 르쿨트르, IWC, 제니스 같은 유수의 시계 제작사들을 소유한 세계 최대 규모의 명품 브랜드)에게로 인수되어 현재까지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호이어의 최초의 다이빙 워치는 어른들이어서 이해할 수 있는 멋진 일을 만들어 냈습니다. 호이어는 이 다이빙 워치의 발매와 성공으로 인해 쿼츠발 경영위기 속에서 몇 년을 더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유수한 시계 제작사들의 이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그 거대한 위기 속에서 확실한 판매 아이템이 있는 매력적인 회사라는 인식을 투자자들에게 심어줌으로써, 종국에는 그 위기에서 생존하여 자신의 이름을 현재까지 찬란히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 최초의 다이버 프로페셔널 1000은 프로페셔널 2000과 3000등의 후속 시리즈를 꾸준히 내놓았고 그 전통을 이어받아 출시한 아쿠아레이서는 다이빙 워치와는 전혀 인연이 없던 태그 호이어에게 빼놓을 수 없는 거대한 자산이 되어주었습니다. 태그 호이어와 역사적인 크로노-그래프 시계를 대표할만한 모나코, 까레라, 오타비아등의 모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이빙 워치 역사가 시작된 79년 이후 가장 많이 판매된 시계는 프로페셔널 시리즈와 아쿠아 레이서 시리즈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다이빙 워치일 만큼 태그 호이어의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 정도라면 작은 다이빙 워치의 개발이 불러온 엄청난 결과라는 말에 동의할 수 있으실까요?
호이어가 79년 발매한 다이빙 워치가 처음부터 프로페셔널 1000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건 아니었습니다. 이 정식 명칭이라 할 만한 이름을 사용한 건 79년으로부터 다소 시간이 지나서였습니다. 호이어는 기계식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사용한 이 최초의 다이빙 워치를 레퍼런스 844로, 쿼츠 무브먼트를 사용한 다이빙 워치를 레퍼런스 8440으로 또한 여성용 레퍼런스 756으로 불렀을 뿐입니다. 다이빙 워치의 핵심 기술인 방수 케이스는 프랑스의 Monnin 사가 생산하였고 오토매틱 무브먼트는 독일의 유수한 제작사 글라슈테 오리지널을 소유하였던 프랑스의 무브먼트 납품회사 FE의 4611A를 탑재했습니다.
상당히 많은 다이빙 워치가 그렇듯 호이어의 844 역시 벤츠 핸즈부터 베젤 크라운 가드같은, 롤렉스의 서브마리너의 영향을 많이 받은 다이빙 워치입니다. 초기형 레퍼런스 844는 롤렉스의 벤츠 핸즈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Cathedral hands를 사용하긴 하지만 후기형 모델부터는 롤렉스의 벤츠핸즈와 거의 동일한 핸즈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레퍼런스 844는 단순한 서브마리너의 모사품으로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당시의 롤렉스 서브마리너가 현재와 마찬가지로 고급 다이빙 워치의 기준이자 대명사였음에도 현재와는 달리 명품 시계의 대명사는 아닌 상황이었기에, 호이어사 입장에서는 다이빙 워치의 기능적 이유 때문에 서방 마리너를 많이 참조했을 뿐입니다. 이 레퍼런스 844는 롤렉스의 서브마리너의 가격보다는 더 저렴하게 구매가 가능한 잘 만들어진 다이빙 워치를 대중들에게 제공하려는 호이어의 의지를 담은 시계였습니다.
1980년, 쿼츠 모델인 레퍼런스 8440은 980.006으로 이름을 바꾸어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한 레퍼런스의 변화뿐만이 아니라 레퍼런스 844와 8440이 가지고 있던 24시간 인덱스의 제거, 기존의 프랑스 무브먼트에서 스위스 무브먼트로의 교체, 6시 방향 하단의 swiss made 문자 첨가 등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 레퍼런스 844나 980.006은 태그 호이어의 빈티지 다이버 모델 중 가장 친숙한 프로페셔널 1000과는 비슷한 듯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는데, 이 모델들은 여전히 42mm의 큰 사이즈로만 생산이 되었고 크라운 가드의 독특한 모양과 두꺼운 러그가 남성스러운 면이 많은 시계였습니다. 이 42mm의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사용했던 844 모델과 쿼츠 무브먼트의 8440, 980.066은 이후 프로페셔널 1000이 다양한 사이즈로 생산되었을 때에도, 호이어사가 태그사에 인수되어 태그 호이어로 그 이름을 바꾼 이후까지도, 여러 파생 상품을 만들며 1990년까지 꾸준히 생산되다 단종됩니다.
호이어사는 1982년 결국 새로운 투자자인 피아제 그룹에 인수되었고, 이 그룹의 영향으로 더 다양한 사이즈의 모델들을 발매합니다. 기존 모델인 42mm와 함께 남성 사이즈 38mm, 미드사이즈 32mm, 여성 사이즈 28mm 모델들이 출시되었으나 여전히 호이어의 브랜드명을 사용하였고 크라운 가드의 모양 역시 42mm 모델의 그것을 그대로 계승한 듯한 디자인으로 출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소재와 색상을 다양화하여 스틸, 콤비, 골드, PVD (블랙, 올리브, 주석)코팅 등을 사용한 다양한 다이얼을 가진 모델들이 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984년부터 호이어의 다이빙 워치인 980 시리즈는 1000이라는 숫자를 12시 호이어 로고 아래에 새기고 공식적으로 프로페셔널 1000이라는 이름을 사용합니다.
피아제에 인수되었던 호이어사는 다시 85년 TAG 사에 인수되었고 그 이름을 TAG Heuer로 바꾸게 됩니다. 이 변화로 인해 프로페셔널 1000 역시 약간의 변화를 거치는데, 1000이라는 글자는 12시에서 6시 방향으로, 프로페셔널이라는 글자는 6시 최하단에서 6시 두 번째 줄로 그 위치를 옮겼고 쿼츠라는 문구는 사라졌습니다. (간혹 태그 호이어의 로고가 있지만 1000 문구가 없는 다이얼도 존재합니다.)
호이어의 로고를 단 프로페셔널 1000들은 L 시리얼로 출시되었고 태그 호이어의 로고를 단 프로페셔널 1000들은 초기형의 경우 N 시리얼, 후기형의 경우 B 시리얼로 출시되었습니다. 이 태그호이어 프로페셔널 1000 모델은 1992년까지 여러 종류의 소재와 색상을 가지고 생산되다 92년 마지막 모델인 레드 모델을 출시한 뒤 이후 출시된 프로페셔널 모델들을 남기고 동일한 92년에 단종되었습니다. 태그 호이어는 다이빙 워치의 역사를 2004년에 아쿠아레이서를 발매하며 이어갑니다.
이 태그 호이어 프로페셔널 1000이 큰 사랑을 받은 흔적은 여러 곳에서 나타납니다. 87년 개봉한 '007 리빙 데이 라이트'에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티모시 달튼은 호이어로부터 협찬을 받은 것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호이어의 프로페셔널 1000 980.031 (야광 다이얼에 PVD 블랙)을 착용하고 출연하여, 주로 롤렉스와 오메가로 채워져 있던 역대 제임스본드의 시계 리스트에 태그 호이어의 이름이 추가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인터넷이 충분히 발달한 2010년에야 비로소 밝혀졌다고 합니다.) 87년에 개봉한 영화가 여러분에게 너무 오래된 영화라면, 2013년 개봉한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를 참조해볼 수 있습니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서 조던 벨포드 역을 맡은 디카프리오와 그의 동료들은 부를 쌓은 이후, 항상 호이어의 시계를 한 손목에 착용하며 등장합니다. 특히 디카프리오가 분한 조던 벨포드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연설을 한 이후 자신이 차고 있던 시계인 프로페셔널 1000 풀-골드 모델을 호기롭게 청중들에게 던지는 장면은 시계 마니아들에게 굉장히 유명하고 인상 깊은 씬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프로페셔널 1000의 현재는 어떨까요? 단순히 과거의 유물 혹은 한 때 잘 나갔던 하나의 시계에 불과할까요? 단연코 아닙니다. 현재 프로페셔널 1000의 인기를 생각한다면, 그 인기가 단순히 이 시계가 유명한 영화에 나왔기 때문이라거나 태그 호이어의 역사적 모델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너무 빈약할 것입니다.
프로페셔널 1000은 지금 시계 생활을 즐기는 우리에게 여전히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데, 주로 38mm 모델인 프로페셔널 1000은 현대의 육중한 다이빙 워치의 무게가 부담스러운 사람들, 손목이 얇아 스스로에게 맞는 다이빙 워치를 찾기 힘든 사람들, 다이빙 워치의 디자인은 좋으나 너무 눈에 띄는 시계는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브랜드가 주는 만족감은 누리며 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출중한 대안이기 때문입니다. (프로페셔널 1000 이외에 이런 조건을 가진 다이빙 워치가 존재하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아마 상당한 가격 차이가 있는 한두 모델 외에는 생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 시계가 제공하는 쥬빌레 브레이슬릿도 멋지지만 나토 밴드나 가죽 밴드로 교체하였을 때 느낄 수 있는 매력 역시 프로페셔널 1000을 선택해도 될 하나의 이유가 될 것입니다. 또한 프로페셔널 1000 모델은 이미 마니아층이 굉장히 탄탄한 시계로 각종 커스텀 파츠들이 유통되고 있습니다. 이런 파츠들을 수급하여 GMT 모델이나 그린 모델 등 자신만의 커스텀 시계를 만드는 것 역시 가능합니다.
태그 호이어는 자신의 정신을 'DON'T CRACK UNDER PRESSURE'라는 구호로 표현합니다. 태그 호이어 스스로는 이 정신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을까요? 수심 200m의 압력을 견딜 수 있는 다이빙 워치 '프로페셔널 1000'이 시계 산업 역사상 최대의 위기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 태그 호이어의 결실이자 증거임을 생각해보면,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해낸 그들은 스스로를 표현하는 이 문구가 부끄럽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겐 가장 큰 도움이 될 프로페셔널 1000의 방대한 레퍼런스 번호를 정리하며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 SB: 스틸 브레이슬릿 / A: 오토매틱 무브먼트 / Q: 쿼츠 무브먼트를 말합니다.
* 1000 시리즈 초기형의 케이스는 두껍고 레퍼런스 번호가 새겨진 평평한 케이스 백을 사용하였으나 후기형 버전은 호이어 로고와 함께 레퍼런스 번호가 새겨져 있습니다. 태그호이어 버전에서는 태그 호이어 로고와 레퍼런스 번호가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
*쿼츠 무브의 경우 초기형의 경우 프랑스 무브먼트인 ESA 536.11가, L 시리얼인 중기형의 경우 ESA 536.11 보다 더 얇은 스위스 무브먼트인 ETA 964.114 무브먼트가, 후기형인 N 시리얼인 경우 ETA 964.114보다도 얇은 955.114가 쓰였습니다.
*모든 프로페셔널 1000 모델의 골드는 Gold Plated 방식으로 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