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면 호기롭게 내 일을 시작할 줄 알았는데 이런저런 제약으로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아이들이 어릴 땐 몸이 힘들고 자라면 정신이 힘들다더니 아, 내 아이가 이렇게나 자랐구나 싶은 요즘.
아이들을 재우고 유일하게 본방사수하는 프로그램을 보려고 모든 준비를 마쳤다. 침대에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 휴대폰을 열었는데 반가울 리 없는 카톡이 와 있다. 나에게 천 원을 보낸 그 엄마의 카톡이었고 전체 보기를 눌러야만 한눈에 들어오는 길고 긴 내용 끝에 더 이상 이런 일이 없게 주의해 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대놓고 내 딸을 비난하진 않았지만 내 딸을 향해있는 화살 때문에 본방사수에 대한 기대로 들떠있던 기분은 순식간에 먹물통을 들이부은 듯 사라지고 말았다. 최대한 정제된 문장으로 미안함과 송구스러움에 단호함을 담아 답장을 하고 생각으로 가득 찬 밤을 보냈다.
망망대해에 혼자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조금이라도 떨치고자 다음 날 아침 파마를 하러 갔다. 1월에 파마를 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지저분해 보이는 이 머리를 해결하고 싶었다. 머릿결이 많이 상해서 지금 파마를 하면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을 거라며 몇 달 관리 후에 파마를 하는 게 좋겠다는 소리에 결국 커트만 하고 미용실을 나섰다. 이대로 집으로 향하긴 싫어 카페에 앉았고 파마하면서 보려고 챙겨 간 책을 꺼내 들었다. 허지웅의 산문집 <최소한의 이웃>을 읽으며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는 동생에게 5개월 만에 카톡을 보내고, 항암 치료 중인 지인에게 다음 주에 만나자는 카톡을 보내고, 작년에 예쁜 아이를 입양한 지인에게 돌잔치는 언제 하냐며 초대장 나오면 꼭 보내달라는 카톡을 보냈다. 잦은 호흡으로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 글이 좋았고 내용에 따라 안부를 묻게 만드는 글이 좋았다. 그렇게 세 명에게 안부를 묻고 카페를 나와 근처 초밥집으로 향했다.
그러다 문득,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커피를 마실 장소, 먹고 싶은 점심 메뉴, 연락하고 싶은 사람은 얼마든지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에 닿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기분이 가뿐해졌고 오늘 아이들을 보내고 처음 방문해 본 카페에서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협소한 공간이지만 나 혼자 이 공간을 누리고 있다는 것과 시원하게 빨아들인 아이스 아메리카노, 생소해서 골라 본 티그레, 그리고 흘러나오던 음악. 이 네 가지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신이 나게 만들었고 무엇보다 3,4분마다 바뀌는 가요들은 발의 까딱거림을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기분 좋음? 즐거움? 행복? 하나로 묶어도 좋을 그런 것들이 나에게 다가와 착착 붙는 것만 같았다.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인생이라지만 인생은 또한 뜻하지 않은 곳에서 좋은 것을 안겨 주기도 하는구나. 평소 나답지 않게 머릿속이 복잡한 요즘이지만 3월은 좋은 기분으로 마무리하고 따스한 4월을 맞이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