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잊지 않고 챙기는 건 두 번의 명절과 어버이날, 생신이다.결혼기념일은 드문드문 선물을 사 드린 적도 있지만 보통은 전화 통화 정도로 끝냈다.올해도 두 분의 결혼기념일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은 굳이 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며칠 앞두고 "딸 마흔도 됐는데 우리 밥 한 번 같이 먹어야 하지 않겠니?"라는 엄마의 물음에 "그래요."라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내 마흔이엄마아빠 결혼기념일이랑 무슨 상관이지?'라는 생각에 갸웃했다.일요일 저녁 장어집에 모여 함께 식사를 했고 "너희들은 돈 쓸 곳이 많으니 우리가 산다."며 부모님께서 계산하셨다.
다음 날, 주말까지 4일을 내내 일하시고 하루 쉬는 귀한 날에 엄마는 오전 재봉틀 원데이 클래스를끝내고 근거리에 있는 우리 집으로 오셨다. 필요한 게 없다고 통화를 했는데도 우리 집 현관을 들어선 엄마의 양손에는과일과 채소가 들려있었다. 엄마와 함께 점심을 먹었고 하교하고 온 손녀를 봐주시겠다며 볼 일이 있으면 다녀오라고 하셨다. 이런 타이밍은 늘 반갑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아차! 싶었다. 언제 가야 하나 엿보고 있던, 고무 패킹을 교체했는데도 김이 새는 밥솥을 들고 나와 서비스 센터에 맡겼고 수리가 끝나기를 마냥 앉아서 기다릴 수가 없었기에 급하게 꽃집을 검색했다.가까운 곳에 있는 꽃집으로 향했고 꽃집 주인이 추천해 주는 꽃들을 골라 꽃다발을 주문했다.
내 나이 앞자리가 4로 바뀐 것에만 의미를 부여했지 내 부모의 결혼기념일이 40주년이라는 것은 새카맣게 잊고 있었다. 4월에 결혼하신 부모님은 허니문 베이비로 나를 가지셨고 이듬해 1월 내가 태어났다. 나의 나이와 내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은 '1'이라는 숫자부터차곡차곡, 나란히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너희들도 살기 바쁜데 그럴 수도 있다며 괜찮다고 하시지만 딸이 먼저 말을 꺼내주길 바라신 건 아닐까.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25주년 은혼식도 그냥 지나친 듯한데...... 10년 뒤 금혼식은 꼭 먼저 말을 꺼내고 챙겨드려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수리가 끝난 밥솥과 꽃다발을 들고 집에 와보니 내가 없는 사이 엄마는 손녀를 방과 후 수업에 데려다주시고 아까 사 오신 더덕을 손질해 고추장 양념에 무쳐 반찬통에 담아두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