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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랑 May 30. 2024

봄이니까

꽃을 담고 사람을 담고

봄이다 했는데 봄의 끝자락에 닿았다. 봄이라는 이유로, 해사한 꽃들을 눈에 담을 수 있어 하염없이 설레는 시기. 라일락 향기에 코를 킁킁거리고 쥐똥나무 곁을 지날 때면 작다 작은 하얀 꽃에 얼굴을 들이대는 시기. 예쁜 봄날에 만난 나의 예쁜 사람들.


업무로 오갔던 시간은 일 년 하고 몇 개월 남짓이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막내 조연출일 수 있었는데 어떤 유로 이 끈을 단단히 잡아 주시는 것일까? 돌이켜 보면 한순간도 허투루 대한 적이 없으셨다. 늘 따스하게 맞아 주셨고,  귀 기울여 주셨으며,  선배다운 조언을 해주셨다. 그리고 뭐 하나라도 더 먹게 해 주셨다.

그날은 태국 요리 식당이었다. 음식을 골고루 주문하시더니 모든 음식을 먹기 좋게 앞접시에 덜어주셨고 카페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커피 한 잔도 계산하지 못하게 하셨다.

오고 가는 대화에 한없이 집중하게 되고 좋은 것으로 가득했던 시간. 사랑, 가족, 배우자, 육아, 부동산 등 물 흐르듯 바뀌는 주제들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 언제 만나?"라고 먼저 연락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는 말에 "여기까지 와 주니까 더 고맙다."라고 말하는 사람. 함께 했던 시간과 인연의 끈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사람.


평소 가고 싶었던 서울 어느 카페에서 10년 만에 만난 친구는 세월의 간극이 느껴지지 않아 역시나 싶었다. 우린 성별의 순서는 다르지만 또래의 남매를 키우며 비슷한 고민을 했었고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가겠지. 이런 생각만으로도 위안이 되어주는 사람.


올 초 이후 4개월 만에 만난 중학교 친구들도 있다. 예약이 굉장히 어렵다는 비건 레스토랑에서 채식주의자를 십분 이해하며 새로운 맛에 눈을 뜨는 1차를 시작으로 비를 피해 자리를 옮겨 가며 무수한 대화들을 쏟아냈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건 꼭 먹고 가겠다는 나의 엄숙함에 떡볶이와 순대로 마무리했던 그날. 세차게 내리던 비로 양말까지 다 젖었지만 꿉꿉하지 않았던 이유는 마음 속 온기 때문이었겠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확신할 수 있는 사이. 아무런 부담 없이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사람들.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가득 담은 봄이 지나고 있다. 여름 초입에는 또 다른 예쁜 사람들과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다. 엄만 요즘 왜 이렇게 친구들을 자주 만나냐며 볼멘소리를 해대는 딸도 내 나이가 되면 알게 되겠지. 엄마가 시간 내어 만나러 다녔던 사람들은 엄마가 오래도록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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