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의 시간이 길어질 것 같으면 경험의 시간으로 갈아타자
나의 취직 이야기... 동아리방 같던 첫 회사
나는 작은 회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내 또래의 동료들이 대다수였는데, 그 얘기는 턴오버도 꽤 심하기도 했고, 회사에서 내가 속했던 그 부서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 고만고만한 사원들로만 조직을 만들어 하나의 비즈니스를 끌어가게 했었다.
그때 나는 ‘마케팅’이라는 부서 안에서 일했지만, 마케팅은 오로지 나 한 명이었고, 홍보, 광고, 이벤트, 때로는 가격 책정까지 혼자 모든 것을 해야 했다.
체계가 있을 리 만무했고, 오히려 넘치는 일들을 사고 없이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마치 써커스에서 쟁반 돌리기 하는 피에로처럼 이 쟁반 돌리다, 저 쟁반도 가끔씩 돌려줘야 하고, 저 옆 쟁반도 계속 쳐다보고 있어야 했다.
그 시절의 나는 그래서 항상 지쳐있었고 주말이면 피곤해서 약속 하나 잡지 않고 이틀을 내리 쉬어야 다시 회사를 출근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러다 이 업계에서 중간 정도의 규모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됐고, 여전히 나는 광고, 홍보, 이벤트를 해야 했지만 혼자가 아니었고 위아래로 두 명이 있었다.
그때 어쩌면 거의 처음으로 광고는 이렇게 하고, 홍보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 이벤트는 이런 걸 봐야 하는구나 깨달았던 것 같다.
작은 회사를 경험했기에 할 수 있었던 이직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 회사는 업계에서 대표적으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에서 나는 광고라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어찌 보면 앞선 회사들에 비해 더욱 좁혀진 업무를 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 곳에서 나는 이 업무의 깊이를 깨닫게 됐고, 더욱 전문성을 키울 수 있게 됐다.
더 좋은 포지션에 광고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로직으로 생각을 끌어 가야 하는지, 상대와 어떤 식으로 협상을 해서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는지, 그리고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봐야 허수가 아닌 진짜 유의미한 분석으로 그 채널에 대해 효과를 입증할 수 있는지를 배웠다.
작은 곳에서 시작했다는 게 단점으로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체계가 없는 곳이었다 보니 좀 더 큰 조직으로 갈 때마다 나 스스로가 체계적인 사람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반면에, 그랬기 때문에 각 업무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기도 했다.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광고의 영역은 이거구나, 홍보의 영역은 이런 거구나... 이런 다양한 업무들의 ‘간’을 볼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처음부터 큰 회사에서 시작한 친구들이 겪는 좌절
지금 내가 있는 곳, 큰 규모의 회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때로 안쓰러운 마음이 느껴지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큰 규모에서 한 팀의 사원으로 근무하는 친구가 대리가 되고 과장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친구의 업무가 성숙해지는 것을 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 이 곳 외국계 회사에서는 대기업처럼 매년 새로운 사원들이 들어오고 업무가 로테이션되는 구조가 아니다 보니, 보통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를 그대로 이어서, ‘큰 일’이 있지 않는 한 퇴사할 때까지 그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내가 아는 한 차장은 이 회사에서 시작해서 과장이 되어서까지, 내가 초년병 시절에 하던 일만 하다가 결국 퇴사한 사람이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더 심해진다. 이렇게 퇴사한 사람이 다음 이직하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거다. 그 회사에서 이 ‘차장급’의 친구를 채용할 때는 ‘차장’으로서 기대하는 업무를 이력서에서 보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 친구는 직급은 차장이었지만 업무는 사원 대리에서 멈춰 있다.
두 번 째로는, 남들이 자신을 평가하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가 다음 회사에서 만족하지 못할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큰 규모의 회사에서는 많은 부분에서 업무 서포트를 해준다. 하다못해 에이전시를 활용함으로써 잔손을 덜기도 하고, 회사 복지나 시스템 자체가 꽤나 만족스러운 경우가 많다.
그 친구들이 이 회사를 박차고 나가 다음 회사를 찾을 때, 이런 규모의 회사를 찾으면 다행이지만 확률상 많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면 좀 더 규모가 작은 곳들을 선택해야 하고, 그럼 그곳에서 전 회사에서는 하지 않았을 일들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 회사에 다른 목표의식을 가지고 입사해서 그런 것쯤은 가뿐히 넘겨 버리면 매우 좋은 자세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내가 이런 거 하려고 저 회사를 그만뒀나’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된다.
작은 회사? 오히려 기회가 되어줄 소중한 경력
요즘 같은 취업난에, 구직자는 뽑는 회사가 없다고 하고, 회사는 구직자가 없다고 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쉽게 말해 A급 회사가 사람을 많이 안 뽑는다고 하는 말일 테고, 후자는 B, C급의 회사에 지원하는 구직자가 없다는 말인 것 같다.
구직자는 모두가 알아주는 좋은 회사에서 들어갈 때까지 취직 준비를 할지, 적당한 혹은 조금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일단 들어가는 게 맞을지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내게 이런 것들을 묻는 후배들에게는 항상 앞선 나의 사례들을 조근조근 이야기해주며 일단 어디든 들어가서 경력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준다. 처음부터 큰 회사에 들어가는 것도 나름의 장점이 당연히 있겠지만 (나는 안 그래 봐서 모르지만), 작은 곳에서부터 경력을 쌓아서 이직을 통해 원하는 곳에 들어가는 방법은 또 나름대로 큰 장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여러 직무를 경험함으로써 나에게 맞는 직무를 찾을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지금 취직을 앞두고 고민 많을 젊은 친구들에게, 고민의 시간보다 경험의 시간이 더욱 값질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