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2... 딸의 자아
아기를 낳으면 우리나라에서는 “예쁜 아가가 태어났다”라고 한다. 우리말의 “태어나다”는 자동사이다. 그러나 영어의 태어나다는 "be born" 즉 우리말로 직역하면 “태어나지다”라는 뜻의 수동태이다. “be born”의 다른 표현으로 “give birth to”를 사용하기도 하나 이경우에도 뜻은 누가 누구에서 탄생을 주었다 라는 의미이니 우리나라에서처럼 탄생하는 본인의 의지가 반영된 표현은 아닌 셈이다.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의 의식구조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라고 본다면 우리나라의 아가들은 영미권의 아가들보다 태어나면서부터 훨씬 더 주체적 인격체로 대우받는다고 해야 할까.
지구가 되었든 우주가 되었든 모든 생명의 탄생은 그 자체로 축복이겠으나 그중에서도 내 아가의 탄생처럼 아름답고도 가슴 벅찬 축복의 순간은 없을 것이다. 처음으로 뱃속 아가의 존재를 인지했던 순간, 초음파로 들려오는 내 아가의 첫 심장박동 소리, 꼬물꼬물 하던 첫 태동의 느낌, 이 모든 첫 경험들과 딱 죽지 않을 만큼 고통스러운 출산의 터널을 지나 신기하게도 내 어릴 적 사진 속 나와 너무도 흡사한 모습으로 3.4킬로그램의 딸은 나에게 와 주었다. 다행히 나의 딸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영미권 아가들처럼 그저 생명을 부여받은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태어나 존재를 알리는 당당한 개체가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고로 미운 일곱 살이라고 했다. 아가들이 성장하여 일곱 살이 될 무렵이면 자아가 생기기 시작하여 어른들의 말에 토를 달고 엇나가기 시작한다고 하여 생긴 말인 듯하다. 그런데 조기교육이 영향인지 아니면 성장발달이 왕성해져서인지 내가 딸을 키울 때는 미운 네 살, 죽이고 싶은 일곱 살이라고 하는 섬뜩한 표현이 유행했는데 요즘은 어떤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더 무시무시한 어떤 표현들이 맘 카페를 떠돌아다니지 않을까.
어찌 되었든 대다수 부모들이 일곱 살 이전 영유아기의 자녀들을 맹목적으로 사랑하기에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영유아기의 그 예쁘디 예쁜 아가들을 그것도 내 DNA를 받은 내 아이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무작정 내 품속에서 천사 같은 웃음으로 나에게 무한 기쁨을 주던 아가로써의 딸보다는 미운 일곱 살을 지나 사춘기를 겪으며 성장해가면서 자아를 완성해나가는 딸과의 만남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
수능일이었다. 나의 딸이 2012 학번이니 아마도 그날은 2011년 11월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 이렇게 얘기하면 내 딸은 엄마! 어떻게 날짜를 모를 수 있지? 하면서 면박을 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해해주길. 사람의 뇌도 오래 쓰면 메모리 용량이 부족해 지니까 - 그저 여느 날과 똑같이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나 그날의 어제, 또 그 어제처럼 집을 나서면서도 애써 많은 말을 하려 하지 않았다. 수능장에 도착하여 정문으로 걸어 들어가는 커다란 가방을 멘 내 딸의 두 어깨가 유난히 작아 보이던 그 순간, 나는 왈칵 눈물이 흘렀다. 시험을 망치면 어쩌나 답이라도 밀려 쓰면 어쩌지 하는 걱정 때문은 아니었다. 그건 저 여린 어깨로 저 아이가 이제 홀로 제 운명과 마주하게 될 것에 대한 염려와 대견함이었다. 앞으로의 제 모든 시간을 스스로 경영하며 때론 기쁨도 있을 것이나 그보다 더 자주 마주치게 될 절망, 슬픔, 분노 등 이 모든 것들을 오롯이 감내하며 살아내야 할 내 딸의 자아를 처음 만난 순간의 감격이었던 것이다.
딸의 자아는 이처럼 감격의 순간으로 찾아오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약간의 서글픔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나는 딸아이와 여행 코드가 맞는 편이라 시간적, 금전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가급적 자주 여행을 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어릴 때는 물론이거니와 대학을 간 이후에도 한동안은 단언컨대 여행지에서의 보호자는 나, 즉 엄마였다. 여행 준비에서부터 객지에서 벌어지는 여러 돌발상황에 대한 대처에 이르기까지 딸은 내게 의지했고 나는 딸을 챙겨야 했다. 어느 해 여름 타국의 어떤 도시를 여행하게 되었는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여행 준비가 좀 부족하여 현지에서 헤매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 딸은 적잖이 실망한 듯하였지만 나는 솔직히 이야기하였다. 엄마가 시간이 없다는 것을 핑계로 준비에 소홀했음을, 그리고 사실 엄마가 노안이 생겨 전에처럼 순발력 있게 길거리에서 여행책자며 휴대폰의 그 자잘한 글자들을 검색하기가 너무나 힘겹다는 사실을. 그래서 염치없지만 너에게 일정 부분 의지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이 이야기를 하면서 마셨던 얼그레이 티 찻잔 속에는 딸의 눈물 방울이 떨어졌으며 그 이후로 어디 가나 내 딸은 나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주고 있다.
이렇게 보호를 받으며 다니다 보니 보호자로서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었는지를 실감하며 즐기게 되는데 이제 보호자의 길로 들어선 내 딸의 앞날은 얼마나 힘겨울 것인지. 하지만 세월이 좀 더 흐른 뒤 내 딸도 누군가의 보호를 받는 날이 왔을 때에는 알게 될 것이다. 그래도 힘겨운 보호자로서의 삶이 그리워진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때가 되면 이 염치없는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더 헤아려 주겠지. 자신의 자아가 성장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자아를 헤아릴 줄 아는 지혜가 함께 성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내 딸의 자아와 만났던 순간들을 잊을 수 없으며 앞으로도 성장하는 내 딸의 무수히 많은 자아들과 만날 생각에 가슴 설레는 밤을 보낸다.
p, s 혹시 내 아들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서운해하지 말길... 너와의 모든 만남의 순간도
다 소중히 기억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