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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용 May 23. 2021

고독한 신입일기. 프롤로그.

취준생에서 벗어나 신입이 되었다.

 브런치에 마지막으로 올린 일기는 무려 작년에 올린 것이다.

 2020년 11월 28일. 그 일기를 끝으로 나는 반 년동안 아무런 일기도 올리지 않았다. 올리지 ‘못’했다고 말하고 싶기도 하지만, 시간을 내서 글을 썼더라면 올릴 수 있었을 테니, 굳이 따지자면 ‘안’ 올린 게 맞을지도 모른다.


 6개월이라는 시간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일단 첫 번째로, 나는 지금 신입의 신분을 가지고 있다. ‘고독한 취준일기’라는 글 제목을 ‘고독한 신입일기’로 바꾼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쓴 일기에 나는 최뽀 아닌 취뽀 같은 상황을 했다고 적었다. 우연한 기회로 면접을 보게 되었고, 또 운이 좋아서 합격을 하게 되었고, 나는 비록 내가 원하지 않은 회사일지라도 회사의 일원이 되어 일을 하고 월급을 받았다. 

 그 곳에서 나는 6개월 동안 일을 했다. 그 기간동안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다. 그 기간동안 누군가는 더 나은 자기의 길을 찾아 떠나가기도 했다. 6개월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나는 이전과는 다른 경험을 갖고 한 단계 성장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6개월의 일이 끝나고 난 후, 나는 또 이후의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며 조금이라도 불안함을 덜고자 각종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번에는 졸업한 학교로부터 연락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학교를 통해 지금은 취업을 하였다. 감사하게도 단 일주일의 공백 이후 바로 취업을 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6개월’이라는 단서가 적힌 계약직이 아니라 3개월의 수습 기간을 거친 후, 바로 정규직으로 전환이 될 계획이다. 지위가 달라졌으니 당연히 맡게 될 일도 다를 것이고, 느끼게 될 책임감의 감정, 그리고 부담감도 달라질 것이다. 


 합격 통보를 받고 취업이 확정된 후 나는 뜻모를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분명히 지긋지긋한 취준의 시간을 종결낸 건 좋은 일인데, 이제 앞으로는 정기적인 수입이 생긴다는 건 아주 기쁜 일인데 신기하게도 마냥 기쁘고 행복하지는 않았다. 이제는 불안한 취준생에서 벗어나 하루하루 쳇바퀴 굴리듯 살아가야하는 일개미 회사원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첫 출근 하루 전날, 첫 출근을 하고 난 후 퇴근길, 정신없이 일주일을 보내고 맞이한 첫 주말, 첫 월요병. 그리고 시작되는 월요일. 퇴근길. 출근길. 퇴근길. 또 출근길. 아직 나는 고작 2주일 차 신입이다. 그럼에도 종종 출퇴근길 버스에서 간단하게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심정을 느끼고 아직까지도 뜻 모를 불안감이 느껴진다. 내가 여기서 잘 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잘 하고 있는 걸까. 앞으로 나는 얼마나 이 곳에 있을 수 있을까. 앞으로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2주가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출퇴근길을 오가며 하는 밀려드는 많은 생각들. 그 생각을 아마 나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신입으로써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써보려고 한다. 


 사실 첫 출근 전 날은 그저 붕 뜬 복잡함만 느껴질 뿐, 두려움이나 불안함은 그리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도통 알 수 없으니 뭘 걱정해야하는지도 알 수 없었고, 어차피 그 사람들도 내가 0인 상태인 걸 잘 알고 있을 테니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맞게된 주말과 월요일 출근을 앞둔 일요일은 첫 출근 전 날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괴로운 생각과 걱정들이 휘몰아쳤다. 갑자기 내일 출근해서는 무슨 일을 해야하는 건지 걱정이 밀려들었고, 알고보니 회사 사람들이 나를 별로 안 좋아하면 어떡하나, 내가 지난 일주일 동안 싹싹하지 못했나, 나를 뽑은 걸 후회하고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이상한 걱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라났다. 슬슬 잘 준비를 해야하는 오후 11시가 되자 갑자기 눈물이 비죽 나기도 했다. 너무 회사에 가고 싶지 않았다. 고작 출근 일주일 째에 이런 나약한 마음이 드는 내 자신도 싫었다. 밀려드는 부정적인 생각을 회피하고자 핸드폰을 들고 유투브 순회를 돌았다. 시계바늘은 어느덧 새벽 2시가 되었지만 핸드폰 화면만 끄고 어둠이 찾아오면 다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고, 눈을 감고 그 생각들을 느끼며 잠에 드는 과정이 괴로웠다. 결국 나는 새벽 4시나 되어서야 잠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출근하고 나서는 당연히 아무 일도 없었고, 회사 사람들도 나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었고, (굳이 말하자면 내게 관심도 없었다) 나는 할 일 열심히 하고나서, 퇴근하고 친구를 만나 고기까지 맛있게 먹었다. 



 원래도 나는 걱정이 많은 성격이다. 풍부한 상상력이 걱정 많은 성격과 합쳐지면 어떤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는지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이전에 유럽여행을 갔을 때에는, 몇 번이고 확인해서 예약한 기차표가 사실 잘못된 기차표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에 밤잠을 설친 적도 있었다. 

 그런 성격은 6개월 간 금융회사에 다니며 간단한 반복 업무를 맡게 되며 조금 사그라들었었다. 비록 기간이 정해져있는 한시적인 일이지만 어쨌든 표면적으로는 매일 정기적으로 갈 곳이 있었고, 매달 들어오는 고정 수입이 있었고, 일도 아주 간단하고 단순한 일이었으며, 그 곳의 사람들과도 원만하게 잘 지내고 있었다. 평안한 일상이 반복되면서 불쑥 불쑥 튀어나오던 걱정들은 점점 뜸해졌고, 나는 이제 스스로가 여유로운 성격으로 변했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새로운 회사에 취직하고 말 그대로 생활이 180도 달라지면서 다시 여유로움은 사라지고 걱정과 각종 상상들이 머릿 속을 점령했다. 


 앞서 말했던 첫 월요병을 앓았던 날. 밤 11시에 출근하기 싫은 마음에 눈물이 비죽 튀어나오던 날. 심장이 목 중앙까지 올라와서는 쿵쿵 소리를 내며 뛰는 것 같고, 뇌는 꾸덕한 반죽처럼 녹아버린 것 같았던 날. 나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에 눈물을 훌쩍이면서 글을 썼다. 나는 그 때 도대체 무엇을 걱정하고 고민하고 두려워했을까. 지금 그 때 쓴 글을 보면 참 웃기다. 


내일이 안 왔으면 하는 이유: 일하기 싫다. 내가 뭐 해야할지 모르겠다. 내일 뭐해야하냐고 물어봐야하나? 나는 언제쯤 아무한테도 안 물어보고 내가 할 일을 정할 수 있지? 지난 금요일에 사무실 전체에 인사하고 퇴근했었나? 너무 빨리 퇴근했나? 내가 일하기 싫어한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지난 일주일 동안 한번도 먼저 말은 건 적이 없다. 내가 싹싹하지 않다고 싫어하면 어떡하지? 아, 알고보니 이사님이 나 뽑은 걸 후회하면 어떡하지? 갑자기 잘리면 어떡하지? 내일 점심은 누구랑 먹지? 아무도 나랑 밥 먹고 싶어하지 않으면 어쩌지?


 고작 일주일 출근해놓고 참 많은 걸 바란다는 것도 모른 채 나는 저런 고민으로 눈물을 훔쳤던 것이다. 당시의 고민은 단 하루 지났을 뿐인데 사소한 고민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새롭게 신입일기를 쓰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아주 심각하다고 느끼고 있는, 내 현재 상태, 미래의 고민에 대한 걱정. 마음 속에 엉킨 실타래처럼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하고 어지러운 걱정들을 글로 풀어놓으면 조금은 마음이 진정될까 싶어서. 그러고 난 다음에 며칠, 몇 주, 몇 달이 지난 후에 이 글을 보면 그 때 나는 참 귀여웠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싶어서. 



 일단 나는 마지막으로 브런치에 글을 올린 11월 28일부터 시작하고 싶다. 지난 반 년동안 나에게 있었던 여러 가지 일을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다양한 일이 있었구나 느낄 수 있고, 그 때의 그 기억을 돌이키면서 그 때 내가 했던 생각은 얼마나 사소했는지, 그 때의 나는 또 얼마나 어렸는지 알 수 있을 거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새로운 곳과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게 사실이다. 이전에 금융회사는 8시까지 출근하는 곳이었는데, 7시 50분 전에는 사무실에 출근해 착석해야 했고, 우리 집에서부터 회사까지는 1시간 30분 이상이 걸렸으며, 나는 버스와 지하철을 모두 이용하고 2번이나 환승을 해야했다. 심지어 퇴근길은 차가 막혀서 2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집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 씻고 나면 저녁 9시 가까이 되었다. 나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최대한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었고, 평균적으로 5시간 씩 자면서 생활했다. 하지만 금세 몸이 적응했고 그다지 피곤하지 않았다. 지금 출근하는 곳은 10시에 출근해 19시에 퇴근하는 10-7 시간대이다. 우리 집에서 걸리는 시간은 이전과 비슷하지만 길이 막히는 시간대가 아니라서 1시간 20~30분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평균 7시간 정도 자고 있다. 하지만 느끼는 피로도는 훨씬 더 크다. 그래서 집에 오고 나면 밥 먹고 바로 드러눕기 일쑤이고 책이라도 읽어야지 싶어서 책을 꺼내들면 20분도 안되서 졸음이 밀려온다. 그럼에도 틈틈이 내 생각을 글로 쓰고 싶다. 

나처럼 불안함과 걱정이 많은 사람들이 회사라는 정글 같은 곳에 처음으로 발을 들이게 되어 머릿 속이 복잡하고 가슴이 쿵쾅거릴 때 나의 글이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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