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문장의 시대, 시대의 문장> 서평
아직 한참 부족한 학부생이긴 하나,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기에 책을 읽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책은 저자가 국문학사와 국사를 넘나들며 밀도와 깊이를 확보해낸, 통합적이지만 결코 허황되지 않은 연구결과의 총체이다. 매 주제마다 저자의 노고가 느껴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는데, 그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 한 장 한 장을 가벼이 넘길 수가 없었다. 앞으로의 학업에 요긴하게 쓰일 전공교재 하나를 발견해낸 기분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사적 흐름위에 존재했던 시대의 문장가들을 소개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책에서 역사를 배우며 우리가 이해의 바탕으로만 여기고 유념하지 않았던 것들을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 쉽고 대표적인 예로 무오사화의 배경이 된 김종직의 <조의제문>에 대해 면밀히 다룬 대목을 들 수 있겠다.(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이것이 흔히 ‘조선 전기의 학자 김종직이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을 비난한 글’이라 소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시각을 달리해 <조의제문>이 왕위 찬탈을 비난하는 글로 탈바꿈 된 과정과 그 원인을 상세하게 소개한다.)이밖에도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이나 각 왕조마다 국가의 문장을 맡았던 인재들을 중심으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조선의 역사가 새롭게 펼쳐진다. 또, 이 문장가들의 문장을 보여주며 이들로부터 조선왕조와 사회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또는 그 반대의 경우를 설명한다. 더불어 문장가들의 상호 작용이나 문장가와 정치가간의 상호 작용을 설명하는 등, 역사의 흐름을 문장 중심으로 완성해나간다.
부수적인 설명을 덧붙이자면, 모든 문단이 간결한 문장으로 구성되어있어 이해가 쉽다. 국문학과 국사학에 흥미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또, 고전의 지혜로 현대를 헤쳐 나가는 일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도 읽어보면 만족할 것이라 장담한다.
앞으로 이 책을 읽을, 혹은 이미 읽은 독자들에게 질문을 하나 던지고 싶다. 우리는 문장을 어떻게 써야하는가? 이는 말 그대로 어떻게 작문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고, 문장을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과거의 문장가란 대개 당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서 사회의 모순과 지배체제의 부당함에 문장으로 대항하곤 했다. 이들의 문장은 국가의 처신을 결정하기도, 나라의 대소사를 좌지우지하기도 했으니 그 역할이 현재와 달리 중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당대의 문장가들은 작문에 있어 무수한 연구를 행했고, 자신들의 문장이 끼칠 영향을 고려해 작문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현재는 다르다. 소수의 문장이 사회로 널리 퍼져나갈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추어진 덕에 사회 구성원 모두가 문장가가 되었고, 문장이 남발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 탓에 문장의 영향력이 분산되어 버린 듯 미미하다. 이러한 와중에서 작문의 형태는 비속어의 출현과 더불어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변모를 거듭하고 있다.
우리는 마구 남발하고 있는 문장의 숲 가운데에 서있다. 가짜뉴스, 감화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문학작품, SNS에서 1분에 수백, 수천 개씩 양산되는 글 등이 이 숲을 구성하고 있는 나무이다. 우리는 이 사이에서, 취하고 버려야 하는 것을 가려낼 수 있는 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위의 질문으로 돌아가 자답하자면, 어떻게 쓸 지를 고민하기 전, 우선은 문장 과다의 현실에서 문장을 구별해내는 능력부터 키워야한다. 그제야 비로소 문장 각각의 가치를 알아보고 이것의 적절한 용도를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현대인들의 작문에 대한 논의도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과거의 명문장을 돌아보는 행위는, 자칫 고루한 역사의 반복으로 귀결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명문가의 명문장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힘이 있다. 그러니 과거의 문장을 탐독하고 이에 담긴 지혜를 현대의 문장들로 끌어와 선별 작업을 거친다면, 이후 도래할 새로운 현대에서 우리의 언어, 우리의 문장은 유의미한 방향으로의 발전을 거듭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