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원의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서평
이 책은 잔잔한 내 마음의 수면 위에 조약돌처럼 날아와 파장을 일으켰다. 또, 차분하게 정돈된 생각들 사이, 지친 탓에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묻어만 두었던 죽은 마음들, 우울들을 하나씩 주저앉아 꺼내 보게 만들었다. 그 후 이에 그치지 않고, 이 죽은 마음들이 나를 좀먹지 않도록 어떻게 잘 씹어 삼킬 수 있는지 임상심리학과 뇌인지과학에 의거해 방법을 일러주며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었다. (씹어 삼킨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우울이 결코 내 밖의 다른 곳으로 사라질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달게 곱씹은 후 삼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생각한다.)
책을 읽는 며칠간, 마치 전문가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심리 상담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느낌은 나를 비롯한 청년들이 살면서 피하고 묻어두었던 마음의 숙제를 이 책을 통해 해결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귀결됐다. 물론 병원에 가거나 상담을 받고 치료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럴 용기나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고 상념에 빠지는 것을 통해 자기 자신을 치료자 삼아 심리를 진단하고 마음을 보듬는 것이 가능할 듯하다.
마음에 관한 책인 만큼 독자인 내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면, 지금의 나는 해탈해 초연해진 상태다. 마음이 안정을 찾은 부분은 좋지만, 사실 그 과정이 건강하다고는 할 수 없다. 앞으로 꾸준히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안하무인 했던 탓에 많은 사람을 상처와 함께 내 인생 밖으로 내쫓았고, 스스로 외로워지기도 했다. 한편으론 관계의 영원한 지속이 불가능하며 내가 나를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함을 일찍 깨달은 덕에 홀로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하지 않고 오롯이 나를 위해 내 삶을 살아가는 방법과, 내가 남을 알아주지 못함을 염려하고 모든 사람의 삶을 존중할 줄 아는 태도를 깨우쳤다.
이렇게 지금의 모습을 만든 과정 속엔 수많은 가면을 바꿔 써가며 사람 사이에서 버텨온 내가 있다. 얼굴에 잘 붙은 가면 덕에 인적으로나 물적으로나 이익을 얻은 적도 있고, 가면을 유지하는 것에 실패해 수많은 사람을 상처와 함께 잃기도 했다. 내가 가진 모든 가면들이 버겁고 어색해서, 사람들 틈에 있다가 혼자가 되면 언제나 우울과 고독감이 찾아왔다. 그 원인에 대해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은, 내가 그토록 힘들었던 건, 지금도 마음 한편에 그 우울감을 안고 살아가는 건,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안과 밖의 모습이 다른 나를 스스로 한참 부족하게 평가하며 가면이 곧 낮은 자존감인 줄 알았던 내 탓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가능했던 건 작가의 “천 개의 가면은 낮은 자존감의 발로가 아니다.”라는 말과 "가면은 그저 지혜롭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삶의 기능이자 기술일 뿐이다."라는 위로 덕분이었다. 나는 그럭저럭 삶을 잘 이겨내 왔다는 걸, 지혜롭게 견뎌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리고 본래 인간이란 복잡하고 다차원적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지금에서야 비로소 내가 나를 힘들게 했던 지난날의 모습들을 성장의 순간으로 간직할 수 있는 여유를 얻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을 잃어가며, 또 내가 나를 해쳐가며 얻은, 성과 아닌 성과 그 자체인 지금의 내가 일찍이 이 책 속의 이치들을 접했더라면, 숱한 고민의 밤과 상실의 아픔을 겪지 않아도 되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시행착오가 당연하고, 모두가 자존감의 기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내가 나를 미워하고 탓했던 시간을 나를 보듬고 위로하는 시간으로 바꾸어 사용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후회만 남는 것은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마음을 실컷 후벼 판 뒤 꼭 안아주는 이 책은, 내 마음을 한껏 불편하게 만든 후 내가 나로서 건재할 방법을 일러준다. 또, 나를 인정하고 건강하게 삶을 꾸려나갈 방법도 제시해주기에 과거의 모습과 마주해 발가벗겨진 듯 불편한 후회로 감정이 점철되었다가, 그 속에서 이해와 성찰을 거듭해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앞서 이야기한 상담받는 느낌이자 이 책의 묘미다.
아직도 나는 종강을 맞지 못해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한 해를 마무리 짓고 새로운 한 해를 계획하는 이 시기, 위로와 격려를 전하고 싶은 사람들이 하나둘 마음속에 떠오른다. 그러나 함부로 위로를 전달하는 것은 기만으로 여겨질 수도 있음을 알기에 조심스러운데, 어쩌면 이 책이 해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말없이 선물해주고 싶은 책이다.
모두가 마음에 품고 있는 우울, 즉 나를 좀먹는 죽은 마음들을 달게 씹어 삼킬 방법을 이 책을 통해 알아가길, 앞으로 굳건하게 잘 살아가길 염원하는 나의 마음이 전해졌길 바라며, 이만 서평을 마친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