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사의 지식교양잡지 Magazine G 창간호에 대한 단상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김영사에서 지식 교양 잡지를 창간했다. 이름은 Magazine G.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표지의 기괴한 그래픽(다 계획이 있는 그래픽이었다)이 나를 당혹게 했고, 이 그래픽에서 옅게 풍기는 ‘B급’의 냄새에 뚜껑을 열어보는 게 망설여졌다. 그러나 곧, 모든 예단은 헛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끊이지 않는 감탄과 함께 잡지를 읽어낸 후, 에필로그에 새겨진 “이런 잡지 어때요?”란 물음에 나는 망설임 없이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아주 좋다고, 오래 만들어달라고.
잡지에 대한 만족감을 표현하기 위해선 내 이야기가 조금 필요하다. 대학 생활을 통해 논문 과제의 늪에 몸을 적셔본 이후로, 나는 관심 있는 분야가 생기면 가장 최근에 쓰인 석학의 논문부터 찾아 읽은 후 곁가지를 살피는 일종의 학습루틴이 생겼다. 현학(이론이 깊고 어려워 깨닫기 힘든 학문)적인 대목이 많아 읽기 힘든 게 사실이지만 석학의 논문만큼 한 주제를 예민하고 섬세하게, 거시적으로 다룬 소스가 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내게 Magazine G는 학술 소스의 유토피아, 꿈의 잡지 그 자체였다.
평생을 붙잡고 고민해도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하는 ‘자아’를 주제로 삼았다는 점과 학자, 작가, 전문 분야 종사자들이 한 주제를 받아들고 자유로이 풀어낸 모든 글들이 시대를 향한 예민한 사고와 전문지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 포인트. 또, 몇몇 글들의 경우 다소 현학적인 요소를 끌어와 ‘자아’를 논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현학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렇다고 해서 쉽게 읽을 수 있는 글들은 아니었으나 글과 함께 실려 ‘요즘 세대’의 감성을 자극하는 그래픽디자인이 이해의 단초를 마련해준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읽어낼 수 있었다.
지금부터 이 잡지에서 마음에 든 대목들을 조금 상세히 소개해보려 한다. 만든 이들의 뼈가 갈려 들어간 느낌이 적잖기 때문에, 독자로서 평으로 보답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몇 해 전 타 출판사에서 특별판으로 출간된, 내용에 따라 내지의 질감과 크기가 천차만별인 양질의 고전 도서 세트를 아주 고가에 구매한 적이 있다. 이를 읽으며 편집자들의 노고가 느껴져 입을 다물지 못했는데, 이 잡지를 읽고 그때와 비슷한 감정이 밀려왔다. 어떻게든 감사를 표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첫 번째는 기고문들의 퀄리티. 여러 학자들의 깊이 있는 연구 결과를 이렇게 쉽고 간단하게 접할 수 있음에 감탄했다. 그 중, 사회학자 노명우가 자아에 대한 감각을 중심으로 역사를 풀어내고, 현대에서 자아가 개인에게 어떤 위상을 지니는지를 논의한 ‘퍼스낼리티의 작은 역사’는 풍요로운 사적 지식과 시대를 바라보는 첨예한 통찰력을 지닌 글이다. 나는 이 글이 독자들을 잡지의 주제 의식에 몰입하도록 끌어당기고, 그저 읽는 것이 아니라 글과 함께 사유하도록 만드는 포문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았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잡지의 초반부에 위치하는 글이다. 적절한 순서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이와 비슷하게 또 한 번 놀라움을 금치 못한 것은 사유의 폭을 확장해주는 기고문들의 순서배치. 뇌과학자 김대식의 ‘나를 복제할 수 있을까’(마인드 업로딩, 자아 복사와 영생에 대해 풀어낸 글)에 이어 이묵돌의 단편 ‘견딜만한 존재의 가벼움’(신체를 자유자재로 교환하고 뇌를 이동해 영생을 살 수 있게 된 미래 인류에 대한 단편소설)이 등장한 대목이 바로 그 예이다. 김대식의 학술적 기고문으로 지적 수준을 확보한 후 이어서 이묵돌의 단편을 읽으니 이로 인해 파생되는 사유와 충격의 깊이가 끝도 없이 깊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쉼 없이 두 글을 읽어보길 강력히 권한다.
세 번째는 디자인. 내용의 성격에 따라 내지의 질감과 크기, 디자인을 달리한 점이 인상 깊다. 다채롭게 삽입된 시각 요소들(사진, 스케치, 그래픽, 손글씨, 만화 등)과 기고문의 조화를 읽어내는 것도 잡지를 즐기는 방법이 되더라. 똑똑하고 네오한 시각 요소들 덕에 ‘지식 교양 잡지’로서의 지루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사족을 붙이자면. 나는 책을 읽을 때 책 표지나 내용에 어울리는 색의 인덱스로 마음에 드는 부분을 표시해두는 독서습관이 있다. 이 잡지를 읽을 때, 나는 단 한 번도 붙여본 적 없는 형광 분홍색 인덱스를 선택했다. 꼭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와의 인터뷰를 실은 대목도 마음에 들었다. 자아에 관한 물음으로 시작해 인간 문명에 대한 관점, 인류의 미래까지 뻗어 나갔다가 끝에선 개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찰로 귀결되는 인터뷰의 흐름이 흥미로웠고,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신중하고 낙관주의적인 태도’, ‘영생을 염원하는 것은 순수한 자기중심주의’라는 간단명료하면서도 부정할 수 없는 답변들이 인상 깊었다.
기고문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지만, 직접 마주하고 그 신선함과 충격을 경험하길 바라며 설명을 줄인다. 끝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건 부록처럼 들어 있는 짧은 글모음집도 놓치지 말고 주의깊게 읽어보길 바란다는 것. 현재에 대한 통통 튀는 단상들, 잡지로 부터 영감받아 바삐 움직인 뇌에게 보상 같은 글들이 모여있다.
향후가 기대되는 잡지, Magazine G의 시작을 목격할 수 있었음에 깊이 감사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