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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Nov 17. 2020

엄마, 제발 나 버리지 마.

아픈 엄마와 상처 받은 아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아이와 내내 붙어 지냈던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이 되었다. 조금은 안정이 되었다고 생각한 시기, 친한 동네엄마들이 유아체육을 같이 다녀보는게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다행히 그 학원은 아이가 어린이집을 통해 수차례 가본 곳이었고 수업 인원 5명 중 3명이 아이 친구였기에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난 곧바로 아이의 의견을 대충 물어본 뒤 그 학원에 함께 다니기로 결정했다.


아이가 싫어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몇 년간 알고 지낸 친구들과 뛰어노는 것이니 당연히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그때 아이의 표정은 묘했다. 신나하는건지 싫어하는건지... 확실히 신나한 건 아니었지만 딱히 싫어한 것도 아니었다.

아이는 그냥... "좋기는 한데... 나는 조금 무서워."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이, 평소에도 내성적인 아이의 막연한 두려움이라고만 생각했다.



드디어 학원에 가는 첫날, 아이는 살짝 긴장하고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어린이집이 아닌 기관에 가는 것이니 그럴 만도 했다. 학원에 들어가 아이와 교실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아이는 예전에 자신이 와봤던 곳이라고 했다. 다행이었다. 기억을 하는구나... 다른 친구들도 학원에 속속 도착했다. 어느새 아이들이 다 모여 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교실로 다같이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다...

엄마들이 대기하는 곳은 교실 바로 앞이었다. 교실과 1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복도. 심지어 나는 교실 문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문은 활짝 열려있었기에 고개만 살짝 돌려도 교실 안이 훤히 보였다. 아이 또한 나를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교실에 들어가지 않았고 두 손으로 내 목을 감싼 뒤 자기 몸을 내 품 안에 구겨 넣었다.

나는 아이에게 계속 말했다. 엄마는 어디 가지 않을거라고, 여기 계속 있을거라고, 현이가 항상 엄마를 볼 수 있을거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선생님과 다른 엄마들이 아이를 달래기 위해 많은 애를 썼지만 소용이 없었고 수업 중간중간 친구들이 나와서 아이 손을 끌어당겨도 꿈쩍 하지 않았다. 결국, 그날 우리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일주일 뒤 두 번째 수업 날이 되었다. 저번에 한시간 동안 학원 안에 있었으니 그래도 이번엔 조금 다를 거라고, 친구들 노는 것도 교실 밖에서 지켜봤으니 이번에는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학원에 도착했다. 하지만 아이는 교실에 들어가지 않겠다며 버텼고 50분이 지나 "학원을 그만둬야하나 싶네..."라는 말을 내뱉고 있을 때쯤 아이는 갑자기 일어나 슬금슬금 교실로 들어갔다.



10분이었다. 너무 잘 놀고 나온 시간. 아이는 수업을 10분 남겨놓고 스스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올 때는 정말 신나는 얼굴로 뛰어나왔다. 친구들과 까르르 웃어대면서...

그런 아이를 보고 있자니 '조금 더 지켜봐도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뒤 세 번째 수업이 되었다. 처음 40분은 내 품에서 울었고 남은 20분은 신나게 놀았다. 아이는 그 20분을 너무도 신나게 놀았기에 앞 힘들었던 40분은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았다. 나름 아이가 적응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네 번째 수업... 이 날 아이는.. 울면서 내게 빌었다. 손을 가지런히 모아... 그리고 그 작은 손을 비벼대며... 제발 나를 교실로 보내지 말아 달라고...


...

나는 아이에게 그런 행동을 가르친 적이 없었다. 아이가 빌어야 할 만큼 혼내본 적도 없고 아이에게 무언가를 두 손으로 받으라는 말조차 해본 적이 없다. 두 손을 모아... 무언가를 하라는 것을 나는 가르친 적이 없다.


그런데 아이는 빌고 있었다. 그 작은 두 손을 모아서, 싹싹 빌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본 다른 엄마들은 아무도,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다들 당황했고, 모두 심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 그들은 내게 말했다. '현이가 빌었을 때... 네 표정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넌 그때 울음이 터지기 직전이었다고..'


함께 학원을 다니 엄마들은 나와 몇 년째 알던 친구들이었고 현이도 그만큼 알고 지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암환자라는 것과 현이의 불안증세를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일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사실은 나도 몰랐다. 엄마인 나조차... 내 애가 그 작은 손을 비빌 정도로 불안증세가 심한지 모르고 있었다. 우린 그저 집에만 있었기에.. 나는 아이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느꼈을 뿐이었다.




학원이 끝나기도 전에 집에 돌아와 지친 몸을 소파에 기대었다. 왜인지 몸에는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팔 하나 들기 싫었고 숨도 쉬기 싫었다.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춰서 이 세상이 모두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 귀찮았고 다 허무했고 다 필요 없었다.


아이는 눈치를 보며 내 옆에 앉아있었다. 아무 말도 없는 엄마.. 아무 표정도 없는 엄마..

아이는 그런 엄마의 얼굴을 올려보다가 바닥을 내려보다가 다시 얼굴을 올려보다가를 반복했다. 그리곤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 무서워... 엄마.. 그러지 마..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 잘 갈게. 앞으로 교실 들어갈게요~~ 엄마... 제발 나 좀 봐줘... 엄마~~~~~ 나 무서워....."


아이는 앞으로 학원을 잘 가겠다며 울었다. 자기가 잘못했다고 울었다. 제발 자기를 보며 웃어달라고 울었다.


나는 그런 아이가 너무 싫었다.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해 놓고 그냥 울어버리는 아이라니... 내 정신을 이렇게 피폐하게 만들어놓고 울어버리면 끝인 아이라니...

한 달 동안 고작 4번이었다. 일주일에 딱 한번, 그것도 한 시간. 교실 문은 항상 열려있었고 나는 어디도 가지 않았다. 언제나 문 앞에서 아이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이는 그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내게 안겨있었고 빌었다, 그것도 남들 앞에서.

다른 아이들이 실컷 뛰어노는 공간 옆... 내 아이만 뛰놀지 못하고 내게 매달려 빌고 있었다. 그런 아이를... 내가 만든 것 같았다. 나는 정말 애썼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동안의 내 노력은 다 부질없는 것이었다.

'이 세상이 멈췄으면 좋겠다... 나는 너무 지쳤다...'


나는 울고 있는 아이에게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현아.. 니가 잘못한 게 아니야. 엄마 잘못이야. 너를 학원에 보낸 내 잘못. 너는 엄마를 못 믿는데 내가 꾸역꾸역 너를 학원에 데려갔으니 내 잘못이지~ 맞아.. 엄마 잘못이야. 다른 애들은 다 엄마 믿고 교실 잘 들어가는데 너는 엄마를 못 믿잖아. 그지? ...니가 나를 못 믿게 만든 내 잘못이지. 니가 잘못한 게 뭐 있겠니... 내 잘못이겠지.. 근데..현아... 너는 왜 이렇게 엄마를 못 믿어? 내가 너를 떠난 적 있어? 엄마가 너 혼자 놔두고 집 밖에 나간 적 있니? 엄마가 너 혼자 놔두고 화장실이라도 간 적 있어? 나는 항상 너랑 같이 있었어. 너만 놔두고 내가 어디 간 적이 없다고... 요 몇 달 동안 너는 나랑 계속 붙어있었잖아. 엄마는 항상 니 옆에서 너만 안아주고 너만 보고 있었잖아. 근데도 엄마를 못 믿겠어? 왜? 도대체 왜? 니가 엄마를 못 믿으니까 교실에 들어가는 게 무서운 거야.. 엄마가 밖에 없다고 생각하니까. 근데 엄마는 항상 교실 앞에 있었잖아. 중간에 어디 간 적도 없어! 근데 너는 계속 엄마를 안 믿어.. 엄마가 어떻게 해야... 내가 어떻게 해야 너는 나를 믿을 거니..? 현아.. 엄마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나는 무심하게 첫 말을 건넸지만 나중엔 분노에 가득 차서 말했다. 여전히 표정은 없었지만 목소리는 떨렸고 중간중간 내쉬는 한 숨도 떨려왔다. 도저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고통이 끝날 거라는 희망도 들지 않았다. 처참했다. 마음이... 너무 처참해서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도록.


내 말이 끝나자 아이는 온몸으로 내게 매달리며 다급하게 울부짖었다.

"엄마! 엄마 믿을게! 내가 엄마 믿을게. 앞으로 교실 잘 들어갈게~~ 그러니까 나 미워하지 마! 엄마 내가 잘할게.... 내가 잘할게! 엄마!!...."


하지만 나는 그런 아이에게 울먹이며 다시 말했다. "현아.. 너는 엄마를 안 믿어... 엄마가 어떻게 해도 너는 나를 믿지 않잖아. 엄마는 정말 노력 많이 했는데... 엄마는~ 니가 엄마를 왜 안 믿는지 알 수가 없어. 너무 알고 싶은데 엄마가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리고 그때... 내 말을 들은 아이는 갑자기 큰 소리로 울분을 토하며 더듬더듬 말했다.

"엄마가..... 나 버렸잖아! 엄마가 여름에... 나 할머니집에 버려두고... 가버렸잖아! 나만 남겨두고 안 왔잖아~~ ...엄마가 나를 또 버릴까봐 무서워!..... 나는 엄마가 없어질까 봐 너무너무 무서워~~~~ 엄마! 엄마 제발 나 버리지 마. 내가 잘못했어요! 앞으로 다시는 안 그럴게요. 엄마가 하라는 대로 다 할게요. 그러니까 엄마 나 버리지 마~~ 나는 엄마가 나를 또 버릴까봐 너무너무 무서워~~~"


아이는 어느새 두 손으로 빌고 있었다. 내 앞에서 두 손을 빌면서 제발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그러다 내 목에 매달렸고 그러다 다시 빌고를 반복했다.



충격이었다. 나는... 내가... 받을 수 있는 충격은 그동안 다 받았다고... 생각했었다. 앞으로 어떤 충격을 받아도 의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죽음을 선고받은 충격보다 더한 충격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이의 그 말은 어떤 걸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충격이었다. 아이가 내 목에 매달리는 동안에도 나는 너무 멍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가 방금 무슨 말을 들은 건지 머릿속에서 곱씹고 또 곱씹었다.


나는 아이를 버린 적이 없었다. 엄마는 나를 버렸어도 나는 절대 내 아이를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근데 아이는 내가 자기를 버렸다고 말했다. 다시는 자기를 버리지 말라고 애원했다.

내가... 아이를 버렸던가.. 내가 내 손으로 아이를 버린 적이 있었던가...

아이는 그동안... 내가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했던 건가...



...

...

아이를 쳐다보았다. 멍한 눈으로 아이를 쳐다보니, 아이는 처절하게 내게 매달리고 있었다. 허리까지 굽혀가며 처절하게 내게 빌고 있었다.

그런 아이를 끌어안았다. 아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좀 전까지 온몸에 힘을 주고 내게 매달리던 아이는 그제야 힘을 풀고 내게 푹 안겨왔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꾹꾹 눌러가며 눈물을 참고 천천히 아이에게 말했다.


"현아.. 엄마는 현이를 버린 적이 없어. 엄마는 정말로 한 번도 현이를 버린 적이 없어! 여름에 현이를 할머니집에 맡긴 건 엄마 뱃속에 나쁜 세균이 있어서 그거 없애려고 병원 간 거였어... 현이랑 오래오래 같이 있으려고... 그 세균 없애야 현이랑 오래오래 같이 살 수 있으니까! 그래서 엄마가 현이 옆에 오래 있으려고~ 그거 없애려고 간 거였어. 엄마는 병원에서도 현이 생각밖에 안했어. 현이 동영상 보고 현이 사진 보면서 버텼어. 엄마가 절대 현이 버린 거 아니야! 엄마는 현이 안 버려. 엄마는 현이 없으면 못 사는데 엄마가 어떻게 현이를 버리겠어. 엄마는 절대 현이 버린 거 아니야! 앞으로도 절대 현이 안 버릴 거야. 엄마는 현이 옆에서 아주 오랫동안 같이 있을 거야! 절대 어디 안 갈 거야. 우리 현이 정말 무서웠구나.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우리 현이 마음도 몰라주고 화만 내서 정말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가 미안해. 현아. 엄마가 다시는 안 그럴게..."


내 말을 들은 아이는 나를 꼬옥 껴안으며 구슬프게 울었고 나는 그런 아이를 품에 안고 한참을 함께 울었다.




...

수술 후 반년 동안 아이는 내게 어떠한 말도 한 적이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어른들한테도 아이는 감정을 내보인 적이 없다. 우리는 그런 아이가 엄마의 상황을 이해했다고 생각었다. 정말 어리석게도...


아이는 고작 5살이었다. 5살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눌러 담고 반년을 버텼다.

자기를 버린 줄 알았던 엄마가 다시 돌아왔을 때 아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그리고 그 엄마가 자기를 미워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을 때 아이는 어떤 두려움을 겪었을까.


나는 아이를 어루만져주지 못했다.

내가 겪었던... 어릴 적의 상처들을 결국 내 아이에게 물려주고 말았다.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진 엄마와, 그저 쉬쉬하며 넘어갔던 어른들...

내 어릴 적 모습과 내 아이의 모습은 닮아있었다.


내가 가장 원망했던 그 모습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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