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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Nov 14. 2020

껌딱지 아이가 미워졌다.

뒤늦게 지친 마음

언니네와의 한 달은 어느새 지나갔다.

마음껏 쉬고 마음껏 웃고 마음껏 놀았던 그 평화로운 나날들은 이제 없다.

언니네가 미국으로 떠난 뒤 집에는 고요함이 남겨졌고, 그 고요함은 '앞으로 누군가에게 기댈 수 없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내게 주었다. 난 그 무거운 마음을 안은채 결심했다. 이제 슬픔 따위는 잊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겠다고.


...

하지만 그런 나를 비웃듯,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상처가 터져 나왔다.


마치 내 인생에 안식처는 없다는 듯이...




내가 퇴원한 후 시댁에 있던 아이가 처음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이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나를 보고 약간 주춤하긴 했지만 이내 인사를 했고 잠시 동안 내게 안겼다. 그리곤 오랜만에 만나는 자신의 장난감들과 한참을 놀았다. 아이는 늘 그랬다. 어린이집에 다녀온 후에도, 나들이를 다녀왔을 때에도, 아이는 유난스럽게 인사하지 않았고 평소 애교가 많은 편도 아니었기에 그 날 아이의 행동이 특별히 이상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언니네가 미국으로 돌아간 후 아이는 점점 달라졌다.

심드렁했던 아이는 어느 날부터 불안해 하기 시작했고 내가 어딜 가든 따라왔다. 행여 잠시라도 내가 보이지 않으면 아이는 비명을 지르며 자지러지게 울었다. 그럴 때마다 아이의 목소리에는 공포와 당혹스러움이 가득 담겨있어서 그 소리를 듣는 나 또한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아이는 그야말로 껌딱지였다. 어린이집은 보내지도 못했고, 밥을 먹을 때도, 낮잠을 잘 때도, 심지어 변기통에 앉아있을 때도 아이는 자신의 피부와 내 피부를 연결시키려 했다. 팔이든 다리든 머리카락이든, 어디든, 어떻게든.


아이는 마치... 다섯살에서 두살로 돌아간 것 같았다.




검진 때문에 병원에 가야 하던 날, 그때는 참으로 오랜만에 아이와 떨어지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아이를 시댁에 맡긴 후 병원에 도착해 어머님께 전화를 걸었는데 수화기 너머에선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나야! 현이가 오줌을 쌌어. 서 있는 상태로 바지에다가 그대로 쌌다. 애가 엄마 병원 간 거 알고 아주 벌벌 떨어. 웬일이냐 이게.."


...

아이는 기저귀를 이미 뗀 상태였다.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떼긴 했지만 그 덕에 단 한 번도 바지나 이불 같은 곳에 실수한 적이 없다.

그런 아이가... 소파 앞에서 그냥 서 있는 채로 오줌을 쌌다고 했다. 그러고도 아무 반응이 없다고 했다.


'병원 간다고 하지 말걸... 그냥 시장 다녀오겠다고 말할걸.. 저기 앞에 잠깐 다녀오겠다고.. 그렇게만 말할걸.'


나는 어머님께 아이를 바꿔달라고 했고 전화기를 건네받은 아이는 축 쳐진 목소리로 느릿느릿 내게 물었다.

"나 오늘도 할머니 집에서 재울 거야? 엄마랑 아빠는 안 와?"

아니...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오늘은 엄마가 데리러 갈거야. 빨리 갈거야...

난 아이에게 말했다. "아니야~ 오늘은 엄마가 병원에서 약만 받고 바로 할머니 집으로 갈 거야. 얼마 안 걸려! 여기 할머니집 옆에 있는 병원이니까 금방 데리러 갈게~ 오늘은 할머니 집에서 자는거 아니고 엄마랑 같이 집에 갈 거야! 그리고 아빠랑 우리 셋이 같이 자자~"

내 말을 들은 아이는 "진짜? 야호~"하며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전화기를 넘긴 후 어디론가 뛰어갔다. 어머님은 애가 좀 놀라서 그런 것 같으니 걱정하지 말고 진료 잘 받고 오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 날 일은 내게 큰 죄책감을 남겼다. 내가 아이를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지울 수 없는 아주 큰 죄책감...




아이의 분리불안은 몇 달째 이어졌다. 어린이집은 그만둔 지 오래였고 나는 항상 아이와 함께 화장실에 들어가야 했다. 아이는 늘 내 머리나 어깨에 기대어 있었기에 앉아있는 것도, 누워있는 것도 힘들었다. 나는 지쳐갔고.. 지치고 또 지쳤다. 그래도 참아야 했다. 내 탓이었으니까. 아이가 불안해하는 것은 내 책임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또한 아이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것도 나뿐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참아야 했다. 이 시간만 참으면 될 거라고, 이 시간만 잘 넘기면 나도 아이도 평온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러나 너무 버티기만 했던 탓이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이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힘든 몸으로 온갖 노력을 퍼붓고 있는데... 아이는 그것도 몰라주고 왜 이렇게 나를 몰고 가는건지, 왜 이렇게 내 마음을 꼬집어 대는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옆에 있음에도 불안해하는 아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너무 혼란스러웠다.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내 작은 마음은 갈수록 미움으로 바뀌어 나도 어찌할 수 없는 커다란 원망을 만들어냈다.


'매일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너는 정말 편할 것 같은데. 그런데도 뭐가 부족해서 매일 울고 떼쓰는 건지, 도대체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 건지.. 나는 엄마도 없이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데, 그런 내가 너를 늘 안아주는데도, 너는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으면서... 그럼에도 고마운 줄 모르고 전혀 나아지지 않으니 정말 너 때문에 내가 미쳐버릴 것 같다..'


갈수록 이런 원망의 감정은 주체할 수 없어, 아이가 내 손을 잡을 때면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까지 아이를 미워하는 것이 어딘가 고장 난 엄마 같아서 아이에게 또 미안했다. 미안했지만 화가 났고, 미안했지만 부러웠고, 미안했지만 미웠다. 그러면서도 아이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외치는 내 이중스러움에 진절머리가 났다. 이런 내가 엄마라니...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내게 조용히 다가와 심리상담을 받는 게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기야... 자기가 지금 아이를 미워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야. 자기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없었잖아. 근데 지금 현이 나이가 그때의 네 나이란 말이야. 현이 봐봐~ 쟤 보면 그냥 애기야, 아무것도 몰라. 그런거보면 너는 엄청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없었던 거지. 넌 엄마 사랑이 뭔지도 잘 모르겠다며.. 그러니까 네가 현이를 질투하는 건 당연해, 너는 갖지 못한걸 현이는 가졌으니까. 너는 혼자 힘들게 컸는데 현이는 니가 다 해주잖아. 그런데도 애는 니 노력을 알아주지도 않고... 당연히 화가 나겠지~ 그건 지금 자기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책에서 봤는데 엄마들은 아기가 태어난 순간부터 아기를 질투한대. 사랑은 하지만 부럽기도 한거지. 그게 이상한 감정은 아니야. 남들도 다 그래. 근데 너는 지금 몸이 아프니까 그게 더 심하게 느껴질 테고...

근데 만약~ 너의 그 감정이 너무 힘들거나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면 상담 한번 받아봐~ 정신과를 가든 심리센터를 가든~ 어디든 찾아가서 니 어릴 적 얘기도 좀 하고, 아이 얘기도 하고, 너 아픈 얘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마음이 좀 풀리면 좋은 거고~ 뭐 상담실 가는 게 어려워? 우리 엄마한테 잠깐씩 현이 맡기고 상담받고 오면 되잖아. 집에서 하루 종일 애한테 짜증내고 본인한테 화내고 할바엔 한번 갔다 오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 나는."



...

남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나조차 모르던 감정을 정확하게 짚어줬고 진심으로 돕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 도움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가 아이를 질투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고, 단지 아이가 나를 못 쉬게 해서 화가 난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정신병자 같냐'며 화를 냈고, '아이 봐줄 생각은 안 하면서 치료만 받으라하면 다냐'고 못난 말을 쏟아냈다. 그리곤 남편에게 등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


...

...

아이는 곤히 자고 있었다.

'조금만 더 안아줄걸. 조금만 덜 화낼걸' 낮동안 모질게 굴었던 내 행동들이 떠올라 자고 있는 아이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사실은 엄마가 너를 질투해서 그런 거라고... 다 가진 니가 내 노력을 몰라줘서 그런 거라고.. 마음이 덜 자란 엄마라서 미안하다고 조용히 아이 얼굴을 보며 속삭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이 부족한 엄마였다. 아이의 이마를 쓰다듬지도, 뽀뽀를 하지도 않았다. 아이를 만지는 순간 또다시 미움이 올라올 것 같아 무서웠다. 나는 조용히 베개를 들고 거실로 가서 남편에게 말했다.


"아이가 자꾸 발로 차서 수술 부위가 아파... 당분간 난 거실에서 잘게."


그렇게 나는 아이에게서 나를 떼어 놓았다.





나는 한 번도 아이의 손을 놓지 않았다. 마음으로는 백번도 넘게 뿌리쳤지만 겉으로는 단 한 번도 그 작은 손을 놓은 적이 없다.

하지만 아이는 본능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엄마가 자신을 미워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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