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동안이나 아이의 마음을 알지 못했던 엄마. 내가 그 어리석은 엄마였다. 종종 '아이의 마음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화장실로 가서 나의 머리를 때리곤 했다. '엄마 자격도 없는 팔푼이... 이 멍청아!'
엄마 자격시험이 있다면 난 아마도 낙제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어느날 문득, 심리상담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심리상담만큼은 받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겨우겨우 참아냈던 것들이 감당 못할 정도로 쏟아져 나올까 봐 무서웠고 그런 감정들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든 꽁꽁 묶어놓아 아닌척하며 살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길 바랬다. 괜찮은 척, 멀쩡한 척, 내 감정은 묶어놓으면 그만이니까 아닌 척 살고 싶다고...
상담을 받게 되면 '당신의 마음은 건강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들을게 뻔했다. 멀쩡한 사람도 심리상담을 받으면 문제점이 드러나는데 하물며 나는... 정상일리 없다. 어떻게든 병든 마음의 소유자가 될 터이고 그러면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아서, 감당하지 못할까 봐. 그래서 상담만큼은 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숨을 수가 없다. 더 이상 감추어선 안된다. 말해야 한다. 그리고 들어야 한다.
내가 나의 감정을 숨기는 사이 내 아이의 마음은 할퀴어져 갔다. 동시에 우리의 아픔과 후회도 점점 쌓여갔다. 그동안 뭐라도 했어야 했다. 뭐라도 했어야 했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화만 내다가 반년이 흘렀다. 또다시 그 세월을 반복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남편 말대로 상담을 받기로. 나와 아이를 위해, 우리 모두의 마음을 위해.
인터넷으로 이곳저곳을 찾아보니 다행히 신뢰가 가는 심리센터가 동네에 있었다. 잔잔한 음악이 깔려 나오는 그 상담센터는 따뜻한 느낌의 소파와 촉촉한 쿠키들이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는 아늑한 곳이었다.
처음 만난 원장선생님은 천천히 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아주 담담히 짧은 이야기를 했지만 그분은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시작하자 했고 아이와 내 상태를 많이 걱정했다.
따뜻했다. 상담센터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딱 맞는 사람. 엄마까지는 아니어도 젊은 이모처럼 따뜻하게, 하지만 때로는 냉철하게 현실을 짚어주는... 원장선생님은 그런 분 같았다.
나와 아이의 상담은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각각의 방에서 나는 원장선생님과, 아이는 놀이치료 선생님과.
아이와 같은 시간에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센터를 여러 번 오갈 필요가 없고 시간이 많이 절약될 테니까. (하지만 이 생각은 나중에 상담을 시작하면서 무참히 깨졌다.)
나는 원장선생님께 잘 부탁드린다는 말과 함께 백만 원 정도를 결제했다. 예상보다 상담비용은 꽤나 높았다. 성인은 한 시간에 10만원이었고 아이도... 결코 낮은 금액이 아니었다. '그래.. 원장님이 박사 학위가 있으니까... 교수니까. 운동도 일대일은 비싸니까...' 하며 스스로를 설득하고 센터에서 나왔다.
나는 이후 퇴근한 남편에게 결제금액을 보여주며 "오늘 상담실에서 좀 많이 긁었어."라고 했다.
남편은 그 금액을 보며 "몇 달치야?"라고 물었고 나는 "6회분이야... 6번"이라고 말했다.
내 말을 들은 남편은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자기의 표정이 굳은 것도 모른 채, 아무렇지 않은 척. 그리고는 "열심히 잘 해봐~ 좋아지면 좋은 거지."라는 말을 남기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그 금액은 돈을 벌지 않는 내게 아주 큰 부담이었다. 우리 집은 외벌이었고 친정이 부자인 것도 아니었기에 오롯이 남편 월급으로 감당해야 할 돈이었다. 그동안 병원비도 많이 나갔고 대출도 있는데... 이걸 과연 내 상담비로 날려도 되나... 애만 상담받는 걸로 바꿔야 하나..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필요했다. 상담이..
누군가의 말이, 누군가의 위로가... 그리고 내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그래서 당분간은 돈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이번만큼은. 다음에 상담을 또 할지 안 할지 모르겠지만. 이번엔 받아보기로 했다. 나도 살아야 하니까... 앞으로는 아프지고 않고 잘 살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