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긴 글을 쓸 수 없게 되었을까
긴 글을 쓸 수가 없다?!
한 주 동안 체한 것처럼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들으면 누가 시키드나 하며 스불재라고 놀리겠지만) 이번엔 꼭 성공하고 싶은 제 자신과의 약속입니다.
글쓰기 연습을 해야지 마음먹은 것은 꽤 오래되었습니다. 종종 만나는 분들이 글을 써보라며 권해주시기도 하셨고, 저 자신도 떠오르는 생각을 쓰고 싶은 순간은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긴 글을 쓰기는 참 어렵더군요. 회사 다닐 때 강제로 해야 했던 페이스북이나 요즘 핫한 스레드 같은 곳에 쓰는 글은 그래도 괜찮습니다. 문득 드는 생각을 짧게 완결성 있게 적는 정도는 즐겁습니다. 그런데 그 이상의 분량을 구상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일기장에 손으로 적어 보려 해도 파편적인 글을 적습니다. 길게 적은 날도 쓰레드 두세 개 정도를 모아둔 듯 맥락 없는 글을 적습니다. 저도 모르게 짧은 글쓰기에 익숙해진 것입니다.
친정에서 대학 때 썼던 레포트 모음집을 오랜만에 펼쳐본 적이 있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글을 제가 썼던 건지 이해가 안 갈 정도입니다. 4학년 때의 레포트는 인용도 얼마 안하고 생각을 적어내린 것이 아주 그럴 듯합니다. 그렇게 하기 싫던 논문 요약 숙제, 손으로 몇장씩 적어내는 시험지들... 그러면서 그때는 저도 모르게 글을 쓰는 연습이 되었던가 봅니다. 아울러 글쓰기 능력도 육신처럼 근손실이 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 놓아버리고 아기를 키우던 동안 이런 글쓰기 능력이 싹 사라져버렸으니 말이지요. 정말 모든 것은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고, 연마하기 나름인가 봅니다.
‘쓰는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가 정말 글쓰기 습관의 필요를 절감한 것은 아이들 글쓰기를 시켜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입니다. 아이들이 아이유처럼 ‘쓰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랐습니다. 기록하는 습관을 가지지 못한 저가 느꼈던 아쉬움을 아이들은 가지지 않길 바랐어요. 꼬맹이를 일기 쓰게 만드는 일의 고통은 정말 아시는 분만 아실 겁니다. 첫째가 꽤 책을 잘 읽는 편이어서 저도 모르게 글쓰기도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네.. 우리 애 천재병이 아직 완치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웬걸... 일기쓰기를 그리 싫어하더라고요. 학교에서 글쓰기 대회라도 있는 전날엔 애가 앓아눕습니다. 뭘 써야 하냐고요. 이건 어때 저건 어때 글감을 추천해 주어도 다 싫답니다. 자기가 생각해 낸 자기만의 기발한 걸 쓰고 싶은 거지요. 이젠 그냥 저 나름의 창작의 고통이겠거니 생각해 주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시키려니 글쓰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합니다. 부모가 글쓰는 모습을 모범으로 보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온 가족이 저녁먹고 일기쓰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노란 조명도 준비해두고 거실 테이블에 다같이 모여 조용히(?) 일기를 써봤습니다. 2달이 채 안 지켜지더라고요. 일단 갑자기 가정의 문화를 바꾸는 일이 쉽지 않았고 저부터가 글 쓰는 일이 너무 부담이었어요.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제가 적은 일기가 다 파편적인 글에 지나지 않으니 제 못난 글솜씨를 견디기 어렵더라고요. 제가 중심이 되어도 모자랄 판에 재미를 못 느끼니 약속이 금세 흩어졌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은 자유롭게 일기를 쓰거나 만들기를 하고 어른들은 책을 읽거나 아이들이 읽어주는 책을 들어줍니다. 자발적으로 저가 떠오르는 동시를 적거나 주장하는 글을 쓰는 순간들을 목격합니다. 본인이 무척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입니다. 글쓰기란 자발적이어야 하는구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쓰는구나, 깨달았습니다.
짧은 글을 넘어 긴 글로
시간이 나면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식으로 책을 꺼내 필사를 하기도 합니다. 필사하기 좋게 짧은 글들을 뽑아 노트공간까지 마련된 책이죠. 그렇습니다. 딱 페이스북 쓰레드 정도의 그 분량이요. 이렇게 책으로 나오는 것들도 이 분량이라면 짧은 글에만 익숙한 사람이 저뿐만은 아니었던 거겠죠? 이제 그 이상의 분량을 소화하려면 새로운 연습이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선배가 브런치에 글을 써보라 하신 권유도 처음은 아니건만 이번엔 덥석 받아들인 것도 이런 생각에서입니다. ‘더 긴 글이 기본이 되는 곳에서 글을 써야겠다. 그래서 내 글을 길게 쓸 줄 알아야겠다.’
짧은 글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짧은 글 안에 촌철살인의 유머를 담아내고 잔잔한 감동을 담아내는 수많은 글쟁이들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댓글 몇 글자로 사람 뒤집어지도록 웃기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대단한지요. 저는 사실 그런 센스를 사랑해요. 억지로 양을 늘려놓은 글의 폐해도 있다고 생각해서요. 그렇지만 이제는 더 긴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주저리 주저리 무언가를 써봅니다.
문득 대학시절 레포트 분량을 맞추기 위해 밤을 새며 짜내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침대를 데굴데굴 구르는 첫째의 모습도 떠오릅니다. 맞습니다. 저에게도 아이들에게도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글을 쓰는 문화를 만들기도 어렵고 쉽게 잡히는 습관도 아니었습니다. 긴 글을 짜내어봐야 그 속에 더 깊은 논의를 담아볼 수 있는 듯합니다. 깊은 생각의 결과가 긴 글이 아니라, 긴 글을 써가며 생각이 깊어지나 봅니다. 긴 생각의 전개, 논리적인 흐름, 이런 생각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 글의 빈약한 깊이, 부족한 글솜씨를 애써 ‘흐린 눈’ 하고 못난 저를 견디며 이렇게 글을 짜내어봅니다.
파편화된 글을 계속 읽으며 짧은 댓글을 다는 저의 취미생활도 사실 글쓰기 면에서는 ‘쇼츠’에 가까울 수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너무 짧은 생각에만 익숙해 있었구나 깨닫습니다. 긴 호흡의 글을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써야겠습니다.